전용기 세트 빌려 ‘가짜 여행사진’ 촬영…이용료 시간당 7만원, 일주일 내내 예약 꽉차
여행 금지령으로 소득이 크게 줄어든 업종은 레저 및 여행 산업뿐만이 아니다. 누리꾼들 사이에서 유명한 인플루언서들이나 여행 블로거들 역시 마찬가지다. 여행을 다니지 못하면서 콘텐츠 업로드에 차질이 생겼고, 이에 따라 광고 수익 등 소득이 크게 줄었다.
하지만 수요가 있으면 공급이 생기는 법. 궁지에 몰린 인플루언서들을 겨냥한 신사업이 최근 미국 LA에서 주목받고 있다. 마치 전용기를 타고 어딘가로 떠나는 듯한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종의 ‘관종 포토 스튜디오’다.
인플루언서들이 대중의 관심을 끌기 위해 가짜 여행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마치 개인 제트기에 탑승한 것처럼 SNS에 올린 이 사진들은 모두 스튜디오에서 찍은 ‘가짜’다.
코로나 대유행 전만 해도 SNS 인플루언서들의 피드에는 화려하고 호화로운 생활을 뽐내는 사진들이 종종 올라왔다. 하지만 코로나로 인해 상황이 백팔십도 바뀌었다. 특히 패션 및 여행 관련 콘텐츠를 올리던 인플루언서들은 예전처럼 사람들의 관심을 받을 수 없게 됐다.
대신 홈피트니스, 정원 가꾸기, 요리 등의 카테고리가 인기를 끌기 시작했고, 이에 따라 인플루언서들 역시 방향을 틀어야 했다. 코넬대학교의 부교수인 브룩 에린 더피는 코로나가 불러온 인플루언서 산업의 변화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가 인터뷰한 대부분의 인플루언서는 그들의 일이 코로나 이후 매우 불안정해졌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광고주, 팔로어, 소셜미디어 플랫폼의 알고리즘에 따라 변동성이 심해졌기 때문이다.”
또한 더피는 “코로나가 인플루언서 산업이 처한 문제들을 악화시켰고, 이에 일부 인플루언서들은 ‘자신만의 특별한 페르소나(다른 사람들 눈에 비치는 모습)’를 보여주는 또 다른 이미지를 개발해서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심지어 일부 인플루언서들은 대중들의 관심을 끌고자 가짜 여행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실제 여행을 간 건 아니지만 마치 여행을 간 듯 흉내를 내는 것이다. 이에 대해 더피는 “이 또한 위험하다. 가짜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상당수의 팬들(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수익)을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경고했다.
2017년 ‘보우와우’는 활주로에 있는 개인 전용기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하지만 이는 거짓이었다. 몇 분 후 여객기 이코노미석에 앉아있는 보우와우의 모습(오른쪽)이 SNS에 등장한 것이다.
2017년 누리꾼들 사이에서 유행한 ‘보우와우챌린지(#BowWowChallenge)’가 그 예다. 발단은 래퍼인 ‘보우와우’가 인스타그램에 올린 개인 전용기 사진이었다. ‘보우와우’는 활주로에 있는 개인 전용기 사진과 함께 “여행하는 날(Travel Day)” “가즈아(Lets gooo)”라는 글을 올렸다.
하지만 이는 거짓이었다. 몇 분 후, 어떤 사람이 일반 여객기 이코노미석에 앉아있는 ‘보우와우’의 모습을 찍어 SNS에 올린 것이다. 알고 보니 그가 올렸던 개인 전용기 사진은 ‘Ft. 로더데일 개인 리무진’ 회사의 홈피에서 가져온 사진이었다.
‘보우와우’의 허세를 조롱하는 ‘보우와우챌린지’. 한 누리꾼은 팔목에 종이 롤렉스시계를 차고, 운전대에 종이 벤츠 로고를 붙인 사진을 트위터에 올렸다.
한동안 누리꾼들 사이에서 유행했던 이런 조롱은 최근 가짜 전용기를 대여해 사진을 찍는 인플루언서들이 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다시 번지기 시작했다. 한 누리꾼(@maisonmelissa)은 트위터에서 “와~~~ LA 여자들이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올리기 위해서 전용 제트기처럼 꾸민 스튜디오 세트를 빌리고 있다더라”는 글을 올렸다.
이에 누리꾼 수사대들은 스튜디오 세트로 의심되는 전용기 사진을 찾아서 속속 고발(?)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찾아낸 사진 속의 인플루언서들은 동일한 흰색 가죽 의자와 적갈색 벽, 그리고 작고 동그란 유리창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개인 전용기 안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는 모두 가짜였다.
이에 대해 온라인 매체인 ‘덱서토’는 “틱톡과 인스타그램 인플루언서들이 가짜 개인 제트기 세트를 빌리고 있다는 사실이 들통났다”라고 보도했으며, 처음 이를 알아챈 누리꾼(@maisonmelissa)은 “당신이 보고 있는 것이 무엇이든 모두 가짜일 수 있다니 놀랍다”고 말했다.
수소문 결과 이 가짜 스튜디오는 LA에 위치한 ‘FD 포토 스튜디오’였다. LA 최초이자 유일한 가짜 전용기 세트를 갖춘 이 스튜디오는 2019년 12월 문을 열었으며, 러시아에서 캘리포니아로 이민 온 세르게이 코스티코프 소유다. 고객들 중 3분의 1만이 개인적인 용도로 스튜디오를 빌리고 있으며, 그 외의 사람들은 엔터테인먼트 산업 종사자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실제 스튜디오의 한 직원은 “가수들의 뮤직비디오 촬영 장소로도 종종 사용되고 있다”고 말했다. 가령 힙합 가수 ‘페이머스 덱스’의 ‘What I Like’ 뮤직비디오에 등장하는 제트기 장면도 여기에서 촬영한 것이었다.
가짜 전용기 세트를 갖춘 LA의 ‘FD 포토 스튜디오’. 시간당 이용료는 64달러(약 7만 원)다.
하지만 근래 들어서는 인스타그램이나 트위터 등 SNS에 사진을 올리기 위해 장소를 임대하는 인플루언서들이 증가하는 추세다. 매일 2~3회 예약이 이뤄지며, 이용료는 시간당 64달러(약 7만 원)다. 코스티코프는 “현재 개인 전용기 세트를 포함해 모두 다섯 가지 스튜디오 세트를 운영하고 있다. 인공비가 내리는 스튜디오, LED 터널로 구성된 스튜디오, 복싱 링, 대형 차고 스튜디오 등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 가운데 가장 인기가 있는 것은 전용기 스튜디오다. 실제 전용기를 본뜬 공간에는 회색 카펫이 깔려 있고, 의자 두 개와 테이블 한 개, 그리고 안락의자가 하나 놓여있다. 또한 터널 모양의 둥근 벽에는 둥근 유리창이 장식되어 있다.
현재 일주일 내내 예약이 꽉 찰 정도로 인기가 있는 이 사업에 대해 코스티코프는 “분명히 사람들은 비행기를 타고 떠나는 여행을 그리워하고 있다”라고 말하면서 “내년쯤에는 뉴욕과 시카고에 비슷한 개인 제트기 스튜디오를 더 오픈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염려스러운 부분도 있다. 모두 가짜라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때 느끼는 배신감이 그렇다. 또한 예전에는 사람들이 인플루언서들의 화려한 삶에 많은 관심을 가졌지만, 코로나19 여파로 출세지향적인 이미지와 부의 상징들에 대해 더 이상 관심을 갖지 않게 됐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