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검 승부수 안 먹히고 적폐수사 앞장 윤석열 급부상…내부총질하지만 김종인 외 대안 없어
10월 27일 국회에서 열린 국민의힘 의원총회에서 라임·옵티머스 특검 촉구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는 김종인 비대위원장과 주호영 원내대표 등 소속 의원들. 사진=박은숙 기자
#결기가 없다
국민의힘은 10월 22일 라임·옵티머스 사건 전반을 수사할 특별검사 도입법안을 발의했다. 국민의힘 소속 의원(103명)뿐 아니라 국민의당 의원(3명) 전원과 무소속 홍준표 윤상현 김태호 박덕흠 의원 등 모두 110명이 참여하면서 기세를 보였다.
국민의힘과 국민의당 두 야당은 이번 특검을 과거 ‘최순실 특검’의 1.5배로 꾸리자고 제안하며 ‘파괴력 있는 특검’을 공언했다. 주호영 원내대표는 특검법을 발의하며 ‘장외투쟁도 염두에 두고 있는가’라는 기자들의 질문에 “특검 법안을 관철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수단을 고려하고 있다”며 비장한 각오를 내비쳤다.
이어 국민의힘은 10월 27일 의원총회를 열고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직접 나서 라임·옵티머스 특검 수사를 위한 관련 법안 처리를 강하게 요구했다. 김 위원장은 “정권이 교체되고 사건이 또다시 반복된다면 우리 정치사에 비극이 될 것”이라는 등 높은 수위의 어휘를 쓰며 결기를 드러냈다. 거친 표현에 대한 절제감이 강한 김 위원장답지 않은 모습이었다는 평가까지 나왔다. 의원들도 ‘특검을 막는 자, 그 자가 범인’ 등의 문구가 적힌 손팻말을 들고 여당의 특검 법안 수용을 요구하는 구호를 외쳐댔다.
그러나 여기까지였다. 국민의힘은 다음 날 문재인 대통령의 국회 시정 연설을 앞두고 철야 릴레이 규탄 대회를 계획했다가 이를 철회했다. 대통령의 국회 시정연설 직전 관례적으로 해오던 사전 간담회를 김종인 위원장이 보이콧하는 방법으로 항의 표시도 했지만 파괴력은 적었다. 의원들의 시정연설 불참도 고려했지만 실행하지 않았다.
과거 드루킹 특검을 받아냈던 김성태 원내대표식의 단식 카드가 제시되지만 “하겠다”는 지도부는 없다. “그런 걸 왜 해야 하나”라는 반발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장외집회도 마찬가지다. 청와대를 정조준할 수 있는 운영위원회 국정감사가 아직 남아있는데 미리 힘 뺄 필요가 없다는 의견이 더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의힘 한 초선 의원이 결기가 부족한 내부사정을 솔직하게 털어놨다.
“초선들 사이에 ‘국회 안에서 싸워야 한다’는 주장이 적잖게 있긴 하다. 그렇다고 그것이 정답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절대 다수 의석을 여당인 민주당이 차지하면서 증인 채택도 가로막는 등 사실상 의사일정을 민주당 독단적으로 하고 있어 국회 안에서의 싸움도 한계가 있다. 그런데 지금 장외로 갈 수도 없다. 지방선거도 한참 남았는데 지금 국회의원들이 무슨 힘으로 인원동원을 하겠나. 또 코로나19까지 있다. 카드가 없으면 지도부가 결기라도 보여줘야 하는데 그런 파이팅도 없는 형편이다.”
#예측 불가능한 정당으로
1987년 평화적 정권교체가 이뤄진 이후 대한민국에서 ‘갑자기 툭 튀어나와’ 대통령이 된 사례는 없었다. 국회의원을 거치고 대선 재수를 하면서까지 혹독한 검증을 거친 인물만이 천신만고 끝에 청와대에 입성할 수 있었다.
하지만 2022년 수권정당을 향해 치열하게 몸부림쳐야 할 제1 야당 국민의힘은 의외의 인물로 인해 곤혹스런 입장이다. 당이 비틀대다보니 ‘인물’이 나오지 않는다. 결국 국민의힘을 향해 적폐 수사의 칼끝을 겨눴던 윤석열 검찰총장이 아이러니하게도 국민의힘 차기 대권주자로 급부상중이다.
윤석열 총장 이름은 국민의힘 차기 주자로 여러 차례 거론된 바 있다. 하지만 10월 22일 대검찰청에 대한 국회 국정감사 이후에는 ‘윤석열’ 이름이 압도적 기세를 보이고 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알앤써치가 데일리안 의뢰로 ‘차기 정치 지도자 적합도’를 조사한 결과 윤 총장이라고 응답한 비율은 15.1%로 집계됐다. 윤 총장이 무소속 홍준표 의원(6.8%),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5.8%), 국민의힘 오세훈 전 의원(3.1%), 유승민 전 의원(3.0%), 황교안 전 대표(2.5%) 등 야권 잠룡들의 선호도를 크게 앞선 것이다.
이 조사에서 적합도 1위는 이재명 경기지사(22.8%)였고, 2위는 민주당 이낙연 대표(21.6%)였다. 윤 총장이 ‘대세론’을 이끌고 있는 두 여당 후보들의 턱밑까지 따라간 것이다(알앤써치의 자세한 조사개요와 결과는 여론조사업체 홈페이지 및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고).
윤석열 총장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 여론조사에서 내 이름을 빼달라”는 말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지만, 대검 국감에서는 “어떻게 봉사할지 퇴임 후 방법을 천천히 생각해 보겠다”고 언급, ‘큰 꿈’ 논란을 일으켰다. 문제는 윤 총장이 실제 검찰총장 임기를 마친 뒤 국민의힘 대선 후보군으로 뛰어들었을 경우다. 당내 뚜렷한 인물이 없는 상황에서 최종적으로 윤 총장이 대선 후보 자리를 거머쥔다면 당내 혼란은 불 보듯 뻔하고, 대선 승리 역시 힘들다는 분석이 나온다.
법조인 출신 국민의힘 한 의원은 “불과 몇 년 전 일을 너무 쉽게 잊는 경향이 있는데 우리 당이 적폐 수사로 인해 얼마나 힘든 과정을 겪었나. 이제 와서 적의 적이 됐다고 해서 동지라고 받아들일 수 있나. 정당은 생각이 같은 사람끼리의 결사체인데 윤 총장의 생각이 국민의힘과 같다고 할 수 있을까. 당 내부의 많은 사람들이 혼란스러워한다”고 전했다.
‘정치사’를 들이밀며 윤 총장의 성공 가능성에 최저 점수를 주는 의견도 많다. 공무원을 하다 정치판으로 직행을 시도했던 고건 전 총리와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전례를 보면 결과는 볼 필요도 없다는 것이다. 국민의힘 한 다선 의원은 윤 총장이 거론되는 것 자체가 당의 실력 부족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고건 총리는 노무현 정부 말기 2년여 동안 여론조사 지지율 1위를 달렸다. 반기문 전 총장도 바른정당이 콕 찍어 모셔가려고 했을 만큼 지지율이 잘 나왔다. 그런데 신기루였다. 정치 경험이 없으면 외부에서 강펀치 몇 방만 연속으로 날려도 흔들린다. ‘지하철 타는 방법도 모른다’ ‘대중교통 요금도 모른다’ 등 하루에도 몇 방씩 집요하게 펀치가 날아드는데, 언론이 써대고 정치권이 융단폭격을 한다. 보통 맷집으로는 안 된다. 공무원 시절하고는 차원이 다른 판이다. 오죽하면 여당에서 ‘윤나땡(윤석열 나오면 땡큐)’이라고 하겠나. 우리 당이 준비한 사람을 내놔야지 건강한 정당이 된다.”
10월 22일 국회에서 열리는 국회 법사위의 대검찰청 국정감사에 출석하기 위해 승강기에 탑승한 윤석열 검찰총장. 사진=이종현 기자
#“김종인 외 대안 없다, 신발끈은 고쳐 매야”
지지율이 좀처럼 오르지 않고 당이 비틀대자 김종인 비대위 체제에 대한 비판은 상시화 됐다. 10월 중순 이후에는 ‘판갈이’ 말도 나왔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집단지도체제를 들고 나왔고, 홍준표 무소속 의원은 “친정이 엉망이 되고 있다”며 연일 “김종인 체제로는 어렵다”는 취지의 글을 올리고 있다.
김 위원장을 향해 내부 총질이 난무하지만 10월 말부터는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김 위원장 체제로 가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받기 시작했다. 대안이 없는데 ‘못 살겠다 갈아보자’만 외쳐선 안 된다는 것이다. 이런 의견은 정치판에서 산전수전을 겪은 다선 의원들이 주도하고 있다.
10월 27일 국민의힘 의총에서 주호영 원내대표는 김종인 비대위 조기 퇴진론과 관련해 “원내대표는 언제든 잘라도 되지만 당 지도부는 흔들지 말고, 임기를 보장해 연속성을 갖게 하자. 열린우리당(더불어민주당 전신) 때를 보면 당 대표를 맨날 바꿔서 당이 쪽박 찼다”고 지적했다.
주 원내대표 말처럼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역풍으로 열린우리당은 전폭적 지지 속에 과반 여당이 됐다. 하지만 몇 달짜리 지도부가 연이어 나타났고, 결과는 대선 참패로 이어졌다.
이날 의총 분위기에 대해 국민의힘 한 의원은 “자꾸 흔들면 한두 달짜리 시한부 지도부만 속출할 것이라는 주장도 일리가 있다. 이런 주장이 일단 먹히고 있다. 비대위 체제 해체론은 수면 아래로 완전히 가라앉는 것 같다”고 전했다.
조해진 의원 역시 10월 28일 TBS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비대위라고 완전체일 수는 없다. 비대위보다 나은 대안이 있다면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비대위가 잘되도록 힘을 실어주는 것밖에는 대안이 없지 않나”라고 주 원내대표의 의견에 힘을 싣는 발언을 했다.
평소 김종인 체제에 대해 쓴소리를 쏟아냈던 장제원 의원도 10월 29일 자신의 SNS를 통해 “우리가 스스로 총의를 모아 결정했던 비대위다. 잘못하는 것에 대해서는 엄중하게 비판하고, 잘하는 것에 대해서는 격려도 하면서 비대위가 올바르게 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이 성숙한 민주정당의 모습”이라고 적었다.
그러면서도 ‘쓴소리파’ 조해진 장제원 의원 등은 공통적으로 “비대위도 성찰하고 환골탈태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당 내부의 ‘성찰 촉구’는 김 위원장이 당 내부 구성원들과 좀 더 폭넓은 소통을 하면서 문제 해결 능력을 지금보다 더 키워야 한다는 의미로 읽힌다. 힘을 합치고 세력을 모으는 노력을 김 위원장이 직접 나서 보여줘야 결기가 만들어지고 특검 관철은 물론, 내년 재보궐 선거 승리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강민준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