팜므파탈에게 비비안 리의 향기가…
잠시 1980년대 후반의 동시 상영관으로 가보자. 킴 베이싱어와 실비아 크리스텔의 시대는 지났고 샤론 스톤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그 시기. 극장가를 휩쓸던 영화는 단연 <투 문 정션>(1988)이었고 셰릴린 펜은 단번에 섹시 스타로 떠올랐다. 잘만 킹 감독 특유의 ‘야성 vs 문명’이라는 이분법 속에서 양가집 규수인 에이프릴 역을 맡은 펜은 거친 부랑자의 근육질 속에서 조금씩 무너지고 극도의 오르가슴 속에서 눈물을 흘린다.
하지만 셰릴린 펜은 이 시기의 ‘벗었던’ 영화들에 대해 극도의 거부감을 지니고 있다. 어쩌면 이것은 타고난 외모의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전형적인 역할에 전전했던 신인 시절에 대한 안타까움이기도 하다. 이후 그녀는 데이비드 린치의 TV 시리즈 <트윈 픽스>(1990~91) 이후 지명도를 얻으면서 더 이상 ‘타의에 의해 벗는 영화’에 출연하지 않았다.
셰릴린 펜은 1965년에 디트로이트의 뮤지션 집안에서 태어났다. 어머니는 키보디스트였고 이모는 가수였으며 외할아버지는 재즈 뮤지션이었다(아버지는 매니저였다). 이탈리아와 헝가리 혈통을 이어받은 어머니와 아일랜드와 프랑스 혈통을 지닌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셰릴린 펜의 외모는 이국적이면서도 강렬한 그 무엇을 지니고 있었다. 아치형의 눈썹, 왼쪽 눈 옆의 작은 점 그리고 도자기 같은 피부. 짙은 검은색의 머리카락에선 동양적인 그 무엇도 느낄 수 있었다(<투 문 정션>의 금발은 염색한 것이다).
17세에 연기를 시작해 1980년대에 저예산 호러와 판타지를 전전하던 그녀에게 허락된 역할은 주로 섹슈얼한 캐릭터였다. 그녀는 누군가를 사랑하기보다는 유혹했고 정신적이기보다는 육체적인 관계를 맺었다. 할리우드의 장사꾼들이 그녀의 육체를 탐냈던 건 당연한 일. 그들은 계약서에 도장을 찍은 후에야 노출 장면이 있다는 걸 알려주었고 셰릴린 펜은 자신도 모르는 순간에 섹스 심벌이 되어 있었다.
첫 주연작인 <투 문 정션>은 그녀에게 끔찍한 기억이었다. “난 이 영화가 나에게 흥미로운 일을 안겨주고 날 성장시켜 줄 거라고 생각했다. 흥미로운 일이 일어나긴 했다. 나는 모든 섹스 신이 끝날 때마다 울고 있었으니까.”
이 영화 이후 그녀는 1년 동안 칩거하며 지냈고 이후 생계를 위해 몇 편의 영화에 출연했지만 그저 그런 영화에서 약간의 노출을 해야 했다.
이때 구세주와도 같은 작품이 나타났다. 바로 TV 시리즈 <트윈 픽스>. 팜므 파탈 틴에이저인 오드리 역을 맡은 그녀는 새들 슈즈, 플레이드 스커트, 타이트한 스웨터 같은 1950년대 스타일로 등장해 FBI 요원 데일 쿠퍼(카일 맥라클랜 분)을 유혹했다. 붉은 체리를 입에 물고 춤을 추는 장면은 그녀를 컬트적인 위치에 올려놓았고, 이 작품 이후 셰릴린 펜은 전형적인 이미지를 벗고 좀 더 넓은 스펙트럼의 캐릭터를 만날 수 있었다.
그러면서 그녀의 이미지는 점점 클래식 스타 이미지와 겹치기 시작했다. ‘돌체 앤 가바나’ 광고를 찍을 땐 팜므 파탈 스타일이 되었고 1992년엔 1930년대 여배우 스타일로 인상적인 화보를 남겼다. TV 시리즈에선 험프리 보가트의 애인 역할을 맡기도 했고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전기 영화에 출연하기도 했다. ‘마릴린 먼로의 부활’이라는 수식어부터 시작해 혹자는 그녀에게서 에바 가드너를 느꼈고, 비비안 리와의 유사성을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었다. 남자 친구가 촬영한 <플레이보이> 화보는 그녀의 클래식한 이미지를 더욱 확고히 했다.
데이비드 린치의 딸인 제니퍼 린치 감독의 <남자가 여자를 사랑할 때>(1995) 이후 그녀는 영화에서 단 한 번도 노출 연기를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할리우드 사교계와도 멀어졌고 대신 TV와 인디펜던트 영화 쪽에서 좀 더 의미 있는 작품에 전력하고 있는 상황. 한때 온갖 남성지와 연예지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인물’ 혹은 ‘세상에서 가장 섹시한 여배우’ 리스트에 단골로 오르내리던 그녀는 자신을 카테고리 안에 넣으려는 그 어떤 시도에도 굴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가고 있는 셈이다.
김형석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