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연소 감독 자리 오르니 어깨 무거워…오정아·이영구 대국장선 부부싸움 않겠죠”
안형준 컴투스타이젬 감독은 승부의 길을 걸으면서도 평범한 20대의 정서를 모두 흡수한 독특한 프로기사다. 사진=사이버오로 제공
신진서를 보유한 ‘셀트리온’, 박정환이 있는 ‘수려한합천’, 전기 우승전력을 통째로 보호한 ‘한국물가정보팀’은 가장 돋보이는 팀이다. 게임회사 컴투스가 인수한 인터넷 바둑업체 타이젬은 제8구단으로 새롭게 들어와 최연소 감독(안형준, 1989년생)을 선임해 관심을 모았다. 젊은 감독답게 개성 넘치는 선수선발로 팀을 꾸렸다. 리그 1지명 이영구 선수와 퓨처스 3지명 오정아는 부부다. 리그 3지명 한승주와 퓨처스 1지명 김진휘도 소문난 절친. 최정, 오유진, 오정아까지 여자리그를 휩쓸던 올스타 세 명도 팀으로 불렀다.
컴투스 감독 안형준은 프로 13년 차다. 승부에 전념했던 2013년 무렵엔 LG배 본선에서 스웨 9단을 꺾어 크게 화제가 되었다. 승부의 길을 걸으면서도 대학(한국외국어대학교 중국어과)을 졸업하고, 군대도 다녀오며 평범한 20대의 정서를 모두 흡수한 독특한 프로기사다. 최근 몇 년은 바둑방송 해설자, 여자리그 코치(부안 곰소소금) 등으로 활약했다. 날카로운 글솜씨로 바둑팬들과 소통하는 능력도 뛰어나다. 별명은 ‘안형’이다. 사실 감독이 되기 전까진 동생 안성준과 형제기사로 대중에게 더 알려졌다. 일요신문이 신생팀 사령탑으로 들어간 30대 감독의 각오를 들었다.
컴투스타이젬
감독: 안형준
바둑리그: 이영구(1지명), 나현(2지명), 한승주(3지명), 최정(4지명), 심재익(5지명)
퓨처스리그: 김진휘(1지명), 오유진(2지명), 오정아(3지명)
―‘최연소 감독’이란 타이틀을 달았다.
“어느 날 한국기원에서 전화가 왔다. 신생팀이 생기는데 감독을 맡을 의향이 있는지 물었다. 감독 후보는 여러 명이었다고 들었다. 이후 컴투스에서 직접 연락이 왔다. 바로 수락했다. 바둑리그 감독은 어린 시절부터 꿈이었다. 군 제대 후에 분위기를 보니 여자리그 감독 정도는 몇 년 지나면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하지만 KB리그 감독은 아주 먼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막상 자리가 다가오자 ‘무겁다’라는 느낌이다. 리그 감독직은 프로기사에게 아주 제한된 기회다. 노력만으로 생기는 일이 아니다. 아주 운이 좋았다.”
―감독으로 어떤 역할을 할 생각인가.
“잘되면 선수들의 능력이 좋은 거고, 안 되면 모두 감독 탓이다. 바둑판 앞 상황은 선수 자신이 감당할 몫이다. 스스로 알아서 해야 할 영역은 건드리지 않겠다. 대부분 자율에 맞길 생각이다. 우리팀 선수들은 대부분 리그 경험이 풍부해 감독이 세세한 걸 터치하는 게 우스울 정도다. 나는 선수들이 관심 갖기 어려운 주변을 살피며 이들이 바둑에만 전념하도록 편안한 환경을 조성하겠다.”
선수 선발식에 참가한 안형준 컴투스타이젬 감독. 사진=사이버오로 제공
―부부, 절친, 여자리그 라인이 살아있는 특색 있는 팀이다. 만약 동생(안성준 9단)까지 왔다면 진짜 가족팀이 될 뻔했다.
“동생이 팀에 있었다면 더 편했을 것 같다. 선발식에선 순번 바로 앞에서 김영환 감독이 데려갔다. 엄청나게 좋아하시길래 나도 기뻤다. 우리팀 이영구, 나현 선수가 워낙 좋은 선수라 딱히 아쉽진 않다. 3지명 한승주는 나의 페르소나다. 내 바둑의 약점과 강점을 고스란히 지닌 선수라 더 애정이 간다. 최정은 ‘보석’이다. 셀트리온에서 보호지명 하지 않아 정말 고마웠다. 약 3년 동안 여자리그 코치를 했기에 최정, 오유진, 오정아 선수의 본 실력을 잘 알고 신뢰한다. 염두에 두긴 했지만, 꼭 여자선수라서 뽑은 게 아니다. 어차피 선발전을 통과한 기사들이다. 실력에 맞는 지명순번에 뽑았다. 특히 오정아 선수에 관해선 미리 이영구 선수의 재가(?)를 미리 얻었다. 부부싸움을 하더라도 나와선 내색하지 않으리라고 믿는다(웃음). 오유진 선수는 2018년 2월에 여자리그에서 처음 만났고, 내년 4월 바둑리그가 마치는 시점까지 계산하면 4년 넘게 같은 팀이 된다.”
―이번 시즌에 참가하는 8개 팀 전력분석은 마쳤나.
“선수선발식에서 보니 감독들이 보는 기준이 대부분 비슷했다. 신진서, 박정환 선수가 있는 팀이 약간 돋보이지만, 전체적으로 바라보니 팀별로 밸런스가 잘 맞춰져 있다. 우리 팀이 아주 셀 줄 알았는데 다른 팀을 분석하니 모두 강팀이다. 대부분 전력이 고른 느낌이라 지난 여자리그 못지않은 혼전이 예상된다. 컴투스타이젬은 지난 시즌 우승팀 한국물가정보와 색깔이 가장 비슷하다.”
승부에 올인했던 시절의 안형준. 2013년 LG배 본선에서 스웨 9단을 꺾었다. 사진=사이버오로 제공
“올해 둔 공식대국이 다섯 판뿐이다. 내가 이겨 올라가도 어린 기사들에게 피해가 없는 기전만 참가했다. 한편으론 대의원 활동하고, 방송과 코치 업무로 바빠 대국할 겨를도 없었지만, 누군가에게 소중한 기회를 빼앗고 싶지 않았다. 이번 리그 선발전도 마찬가지였다. 참가 신청한 이들은 퓨처스라도 리그 소속원이 되는 자체가 소중하고, 앞으로 바둑리그 상위지명으로 올라가려는 마음이 간절한 기사들이다. 이기고 지는 걸 떠나서 나는 안 두는 게 예의라고 생각했다. 대신 최근엔 신진서 선수의 바둑을 보며 대리만족하고 있다. 내가 게을러 가지 못한 길, 하지만 알고 있던 프로의 자세를 그대로 실현하는 후배다. 성적을 떠나서 기술적인 면과 생활적인 면을 통틀어 내가 지향하는 바를 실제 이뤄낸 선수다. 내가 꿈꾸던 이상향의 바둑은 보는 쾌감을 준다. 진서의 바둑을 보면 승부에 대한 미련이 많이 사라진다.”
―팀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대국에 아주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내 역할은 충분하다. 우리 팀 색깔은 열정 넘치는 붉은색이다. 평균 나이가 아주 젊다. 서로 강력하게 단합한다면 이번 시즌 돌풍의 핵이 될 거다. 강한 상대를 만나도 흔들림 없이 자신의 바둑을 두길 바란다. 자신을 믿는 이상으로 신뢰하는 사람이 바로 옆에 있다는 걸 잊지 않길 바란다.”
박주성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