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형’이 후배들을 ‘마루타’로…부작용 적잖아, 색소 문신은 제거도 불가 ‘주의’
이른바 ‘똥문신’에 대한 제보를 받고 있는 페이스북 ‘망한 문신 저장소’. 사진=페이스북 캡처
‘아는 선배’라 불리는 이는 19세였다. 문신사(타투이스트)라고 보긴 힘들었다. 피부에 주입된 색소잉크는 어디서 온 건지, 얼마나 된 건지 알 수 없었다. 시술 기계와 잉크는 모두 중고거래로 구매했다고 했다. 중고기계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지만 미성년자를 상대로 알음알음 시술을 하다보니 장소도 마땅치 않아 기계의 위생은 신경쓰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A 양 역시 시술 이후 피부염증이 생겨 피부과를 여러 차례 다녀왔다.
문신의 목적은 자기만족이 아니라 다른 데 있었다. A 양은 “일진이라는 말을 쓰지는 않는데, 선배가 인맥을 넓혀줄 테니 놀러오라고 했다. 문신을 하면 세 보이기도 하고 일단 선배들을 많이 알게 된다. 문신하러 갔을 때 선배의 친구들이 많이 와 있었는데 그때 많이 친해졌다. 그럼 다음부터 같이 만나서 놀기도 하고 그런다. 선배 인맥이 생기는 거다”고 말하면서도 “지금 문신은 나중에 돈 벌어서 커버업(기존의 문신을 다른 문신으로 덮는 시술)을 할 것”이라고 했다.
B 군(18)도 그랬다. B 군은 최근 학생들 사이에서 유명하다는 ‘이레즈미’ 문신을 했다. 이레즈미는 ‘넣다’와 ‘먹물’이 합쳐진 일본어로 일본식 문신을 뜻한다. 일반적으로 잉어, 용, 요괴 등이 이레즈미의 소재로 쓰인다. B 군은 올해 초 요괴 ‘한야’를 왼쪽 어깨부터 팔꿈치에 새겼다. “연습상대가 없으니 팔 좀 빌리자”는 ‘아는 형’의 부탁이었다. 한야의 특징은 날카로운 뿔에 부리부리한 눈매, 길게 찢어진 입매인데 B 군의 한야는 어쩐지 순한 인상을 풍겼다. 이마에 난 두 개의 뿔 크기는 달랐고 부리부리해야 할 눈은 양쪽 눈알의 위치가 다르게 찍혀 무섭기보다는 멍청해보였다. 문신의 선 굵기도 제각각이었다.
B 군은 “원래는 해골을 그려준다고 했는데 시술 도중에 한야로 바꼈다. 그때 망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중간에 그만두고 싶었는데 눈치도 보이고 해서 그런 말도 못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똥문신만 올라오는 사이트가 있는데 거기 가면 나보다 더한 사람도 많다”고 했다. 이후 B 군은 ‘아는 형’에게 80만 원을 빌려준 뒤 돌려받지 못했다. 사실상 무료도 아니었던 셈이다.
실제로 페이스북 ‘망한문신저장소’에는 망한 문신, 이른바 ‘똥문신’ 사진들이 올라와 있다. 어린아이의 낙서처럼 보이는 문신에서부터 한참을 들여다 봐야 정체를 알 수 있는 문신, ‘정말 자기 의지로 했을까’ 의심스러운 성적인 그림의 문신도 있었다. 피해자 다수는 가격이 싸다는 이유로 실력이 부족한 시술소에 갔다가 낭패를 본 미성년자였다.
미성년자의 문신 시술은 업계에서도 걱정하는 부분 가운데 하나다. 일반적인 문신사들은 미성년자에게 시술을 하지 않는다. 한번 새기면 쉽게 지워지지 않는 만큼 육체적‧정신적으로 미성숙한 미성년자에게는 좀 더 고민의 시간을 주자는 것이다. 법적으로 정해지진 않았지만 종사자들끼리 만든 일종의 약속이다.
현행법상 비의료인의 문신 시술은 불법이다. 사진=연합뉴스
한편 이런 문제를 업계에서 나서 바로잡기도 쉽지 않다. 일단 현직 문신사들조차 범법자인 까닭이다. 우리 법원은 1992년 문신 시술은 의료행위로 판단한 이후 이 결정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의사면허가 없는 일반인이 문신을 하는 것은 현행법상 비의료인의 의료행위로 불법이다. 한국타투협회가 추산한 문신 시술 종사자는 2019년 기준 22만 명에 달한다. 29년 전 판례가 22만 명의 문신 종사자를 거대한 불법시장에 가둔 셈이다. 대부분의 시술이 불법이다보니 소비자 역시 감염 등의 피해를 입어도 제대로 된 보상을 받기 어려울 가능성이 높다.
서울 홍대앞의 한 문신사는 12일 “대부분의 타투이스트는 (미성년자를) 돌려보낸다. 업계 불문율이다. 성장기에 새긴 타투는 신체가 변화하면 변형되기도 한다. 미성년자에게 무분별하게 타투를 해주는 곳은 돈에 혈안이 됐거나 실력 향상을 위해 아이들을 시험대상으로 쓰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부터 범법자다 보니 문제가 있는 타투이스트를 봐도 항의를 할 수가 없다. 같은 범법자끼리 누가 누굴 지적하나. 사실 미성년자는 문신을 하면 안 된다는 법도 없다”고 말했다.
이런 이유로 문신을 양지화하고 제대로 된 규정을 만들자는 목소리는 이미 수년 전부터 나오고 있지만 번번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한편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10월 28일 문신사법을 발의했다. 법안에는 문신사가 되기 위해서는 전문대학 이상 학력이 인정되는 기관을 졸업하고 국가기술자격법에 따른 문신사 자격을 취득해야 한다는 등의 내용이 담겼다. 아울러 미성년자의 문신행위도 금지된다.
정부와 국회가 외면하는 사이 미성년자의 문신 행위는 점점 더 음지의 음지로 빠지고 있다. 유튜브로 알음알음 기술을 배우고, 후배 몸에 연습한 실력으로 미성년 전용 시술소를 차리는 이들도 등장했다. 앞서의 B 군은 “유튜브에서 문신하는 법을 배우고, 중고기계로 후배들 문신을 해주면서 돈 버는 형들이 있다. 졸업하면 가게를 낸다고 하는데 그 전까지 얼마나 많은 마루타가 더 생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