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아니어서 성폭력법 처벌 어려워…실제 모델인 멤버들 ‘모욕죄’ 등 고소 가능
신인 걸그룹 에스파의 멤버 지젤과 그의 아바타 아이-지젤. 사진=SM엔터테인먼트
SM이 10월 28일 걸그룹 에스파를 소개했다. 한국인 멤버 윈터와 카리나, 일본인 멤버 지젤과 중국인 멤버 닝닝으로 이뤄진 4인조 다국적 그룹이다. 이 그룹의 주요 콘셉트는 현실 세계와 가상 세계의 컬래버레이션이다. 그룹명 에스파도 ‘아바타 X 익스피리언스’(Avatar X Experience)를 표현한 ‘æ’와 양면이라는 뜻의 영단어 ‘aspect’(애스펙트)를 결합해 만든 이름이다.
‘각각의 멤버는 자신의 또 다른 자아인 아바타를 만나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게 된다’는 세계관을 기반으로 한다. 아바타는 각 멤버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가상 세계 속 캐릭터로 인간 멤버와 그의 아바타가 함께 아이돌 활동을 하게 된다. 공개된 아바타는 멤버 카리나의 아바타 아이-카리나(ae-KARINA)와 멤버 윈터의 아바타 아이-윈터(ae-WINTER), 멤버 지젤의 아바타 아이-지젤(ae-GISELLE)이다.
이수만 SM 총괄 프로듀서는 10월에 열린 ‘2020 제1회 세계문화산업포럼(WCIF)’에서 “에스파는 현실 세계 멤버와 가상 세계의 아바타 멤버가 함께 존재하고, 그 중간 세계인 디지털 세계를 통해 소통하고 교감하며 성장해 간다는 세계관을 갖고 있다”며 “셀러브리티와 아바타가 중심이 되는 미래 세상을 투영해, ‘현실세계’와 ‘가상세계’의 경계를 초월한 완전히 새롭고 혁신적인 개념의 그룹으로 탄생할 것”이라고 소개했다.
#아바타의 권리는 누구에게?
신인 걸그룹 에스파의 멤버 카리나가 자신의 아바타 아이-카리나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SM엔터테인먼트
주목할 점은 아바타가 단순 캐릭터가 아니라 실제 사람을 모델로 한다는 것이다. 지금껏 게임 캐릭터 아이돌 그룹 KDA 등 캐릭터만을 주요 멤버로 내세운 아이돌은 있었으나, 인간 멤버와 그를 모델로 한 아바타를 동시에 내놓는 사례는 국내 대형 기획사 가운데 SM이 거의 유일하다.
자신을 본뜬 아바타와 함께 활동하는 아이돌을 법은 어디까지 보호할까. 술렁인 곳은 다름 아닌 법조계다. 실제 인물과 그 초상인 아바타의 권리를 법적으로 얼마나 보호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아바타 자체가 완전한 창작물일 경우 저작권법만으로도 접근할 수 있지만, 에스파처럼 실제 모델과 그 아바타가 활동의 주체가 된다면 저작권과 초상권은 물론 유명인의 초상 등을 상업적으로 이용할 때 권리자에게 부여되는 퍼블리시티권과도 연결돼 복잡한 문제가 된다.
이에 대해 디케이엘파트너스 법률사무소의 권단 대표변호사는 “아바타가 시각적 캐릭터라면 아바타를 창작한 회사의 업무상 저작물로서 회사가 저작권을 가진다. 또한 아바타의 인공지능 즉, AI 프로그램은 별도의 프로그램 저작물이므로 이 프로그램 저작물을 업무상 창작한 주체 즉 회사가 그 프로그램 저작물에 대한 저작권을 가진다”고 말했다.
한국연예매니지먼트협회 고문변호사인 법무법인 율원의 강진석 대표변호사는 “기본적으로는 개인이 권리를 갖는 것이 원칙이겠지만 카리나와 소속사와의 계약에 의해 아바타 ‘아이-카리나‘에 대한 권리가 정해질 수도 있다. 전속계약 또는 이와 관련된 부속합의서에 의해 권리관계가 정해져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즉, 인간 멤버인 카리나는 아바타나 인공지능에 대해 회사와의 전속계약에 따른 수익배분 권리는 있겠지만 아바타 제작자나 창작자가 아닌 초상 이용 허락자에 불과하므로 아바타나 인공지능에 대한 소유권이나 저작권을 주장할 수는 없다. 다만 이렇게 만들어진 아바타 역시 인간 카리나의 초상, 특성 등 카리나와 동일시 할 수 있는 요소를 상업적으로 이용하여 만든 결과물이므로 국내 판례 기준으로는 인간 카리나의 인격권으로서의 초상에 대한 이용 허락이 전제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법조인들의 해석이다.
그렇다면 계약이 종료된 뒤에는 어떻게 될까. 탈퇴 멤버가 있거나 그룹이 해체하게 되면 멤버들의 초상, 성명 이용권은 즉시 소멸된다. 따라서 원칙적으로 회사는 멤버들의 아바타 또한 사용할 수 없다. 그러나 아바타의 이용을 초상권이나 퍼블리시티권으로 연결시키지 않고 콘텐츠로만 볼 경우 회사가 수익분배만 한다면 계약 종료 뒤에도 아바타들을 사용할 수 있다. 다만 아바타 캐릭터나 인공지능 프로그램 저작물에 대한 저작권은 회사에게 귀속된다.
#디지털성범죄에 노출된다면
신인 걸그룹 에스파의 멤버 윈터와 그의 아바타 아이-윈터. 사진=SM엔터테인먼트
문제는 인간의 분신 격인 아바타 멤버가 디지털성범죄 피해자가 되어도 이에 대한 강력한 처벌이 어렵다는 점이다. 딥페이크 성범죄 대상으로 개정된 성폭력범죄의처벌등에관한특례법 제14조의 2 제1항은 ‘사람’의 얼굴, 신체 또는 음성을 대상으로 한 촬영물, 영상물, 또는 음성물을 처벌 대상으로 한다. 즉 사람이 아닌 아바타는 피해자로 인정받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이에 대해 권단 변호사는 “‘아이-카리나’와 ‘아이-윈터’ 등의 아바타는 사람이 아니므로 구성요건을 충족하지 않아 딥페이크 성범죄 대상으로 개정된 성폭법상으로도 처벌은 어렵다”고 말했다.
다만 아바타의 모델이 된 실제 멤버들은 소극적으로나마 보호가 가능하다. 권단 변호사는 “아바타 딥페이크 촬영물로 실존 인물인 멤버를 협박한 경우에는 형법상 협박죄는 될 수 있지만 피해자에 대한 직접 행위가 연계되지 않은 경우 성범죄 고소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정신적 피해에 대한 위자료 청구 등 민사소송은 가능하다”고 답했다.
강진석 변호사는 “아바타 멤버는 처벌 법규상의 피해자가 될 수는 없을 것으로 보이지만 위 범죄행위가 실제 모델을 향한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에 이를 기준으로 범죄성립 여부를 판단할 수도 있다. 또한 해당 멤버가 피해자로서 모욕죄 등으로 가해자를 고소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인공지능 및 아바타 기술이 대중문화 속으로 스며들면서 이에 대한 사회적, 법적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한 지적재산권 전문 변호사는 “일본에서는 ‘버츄얼 유튜버’ 등 가상 세계를 바탕으로 한 콘텐츠가 발달해 일찍이 다양한 사회적 논의가 이뤄질 수 있었으나 국내의 경우 관련 콘텐츠가 이제 막 생산되는 단계”라며 “당사자 사이의 갈등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계약서에 아바타의 권리와 주체에 대한 조항을 포함시키고 계약 종료 후 권리 귀속에 대한 내용도 포함시켜 분쟁을 사전에 방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편 SM 측은 아바타 멤버의 법적 권리에 대해 “새로운 개념의 그룹이고 데뷔를 앞둔 티징 단계인 만큼, 세부 사항은 공개할 수 없다”면서도 “실제 멤버들의 명예 및 권리를 훼손하는 것뿐만 아니라 아바타 멤버, 콘텐츠에 대한 무단 사용이나 범죄 등 잘못된 형태로 소비되는 부분은 그에 상응하는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