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미흡’ 조사 결과 불구 추모관 측 “자연재해” 주장…광주시 “사설업체라 개입 한계”
A 추모관 내부 모습. 지난 8월 기록적인 폭우로 지하 1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이 모두 침수됐다. 사진=침수원인조사보고서
광주광역시 북구에 있는 사설납골당, A 추모관에 물이 들어차기 시작한 것은 지난 8월 8일 새벽부터다. 당시 광주에는 유례없는 양의 폭우가 내렸는데 A 추모관은 강변제방 바로 안쪽에 위치하고 있어 일찍이 침수가 우려되던 곳이었다. 침수 하루 전에 추모관이 비 피해로부터 안전한지를 문의한 유족도 있었다.
8일 오전 6시 30분쯤부터 A 추모관 잔디밭 주차장 부지에 물이 차오르기 시작하더니 7시 45분쯤에는 지하 1층 신세계관 천장에서 물이 새기 시작했다. 조금씩 새던 물은 이내 쏟아졌다. 당시 CCTV 화면을 보면 임시로 가져다 놓은 파란색 물통이 빗물로 가득 찬 모습이 확인되기도 했다. 정오쯤에는 지하 1층이 완전히 침수됐다. 이로 인해 지하 1층에 안치되어 있던 유골함 1800여 기가 침수됐다. 여기에는 무연고자의 유골도 400여 구 있었다.
유족들은 분노했다. A 추모관이 12시간이 지나서야 피해 사실을 문자로 안내했기 때문이다. 이미 현장에는 SNS 등에서 소식을 듣고 달려온 유족들이 구름처럼 모여든 상태였다. 한 유족은 “인터넷에서 소식을 듣고 추모관으로 달려왔다. ‘어떻게 하나’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데 몇 시간 뒤에 휴대전화로 추모관 측 침수 안내 문자를 받았다. 유골함이 물에 잠긴 지 반나절이 지나서야 사태를 알린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추모관은 “침수로 인터넷이 끊기고 지하실이 단전되어 안내가 늦어졌다”고 해명한 바 있다.
침수된 유골함을 찾거나 이를 건조해 다시 화장하는 것은 유가족의 몫이었다. 주경재 침수사고대책위원회(사대위) 대표는 “물이 들어 찬 아버지 유골함을 집으로 가져가 베란다에 널어놓고 건조시켰다. 욕조에서 먼저 물을 빼냈는데 흡사 쌀뜨물 같은 진득한 물이 욕조 바닥에 흥건했다. 이게 유골 소실이 아니고 무엇이냐”고 되물었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이용섭 광주시장은 김종효 행정부시장을 단장으로 세워 ‘A 추모관 침수에 따른 합동원인조사단’을 구성해 원인 조사에 나섰다. 그러나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했다. 침수 90일이 넘었지만 일부 유골함은 여전히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뿔뿔이 흩어져있다.
지난 10월 18일 합동원인조사단과 한국수자원학회가 발표한 ‘A 추모관 침수 원인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침수사건의 원인에는 세 가지 요인이 있었다. 첫 번째는 이례적인 강수량이었다. 8월 8일 광주광역시에 내린 비의 양은 확률적으로 500년 빈도를 상회하는 강수량이었다.
현장조사 시 지정된 침수수위. 물은 환기구 구멍을 통해 들어갔다. 사진=침수원인조사보고서
두 번째는 A 추모관 위치다. 추모관이 위치한 곳은 영산강 제일 하류 방향으로 상대적으로 지반의 높이가 낮아 제내지 내에서 침수 발생 가능성이 가장 높은 지역이었다. 즉, 많은 양의 비가 올 경우 침수 위험이 가장 높은 곳에 납골당이 위치했던 것이다.
세 번째는 이런 위험에도 추모관 지하실에 적절한 수방조치나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원인보고서에 따르면 빗물은 건물 외벽에 뚫린 환기구를 통해 들어왔는데 당시 빗물을 막을 수 있는 수방 설비가 없었다. 물이 들어오면 지하실 천장으로 들어올 수밖에 없었다.
합동원인조사단은 “A 추모관은 자연재해가 불가항력적인 지점에 위치했고 침수원인 조사 결과 환기구가 지하실을 침수시킨 유일한 통로였다. 환기구에 대한 수방 설비 등의 관리가 적절하게 이뤄졌다면 지하실은 침수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밝혔다.
사대위는 A 추모관과 지자체의 적극적인 대처를 요구하고 있다. 침수 발생 90일이 넘도록 문제 해결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대위 관계자는 “‘추가비용을 내고 재안치 하라’는 추모관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은 유골함은 갈 곳을 잃었다. 광주시는 ‘추모관과 유족이 합의할 사항’이라며 여전히 소극적인 대응만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유족은 “광주광역시에서 직접 관리한다는 A 추모관의 말을 믿고 안치를 결정했는데 알고 보니 직접 관리도 아니었다”고 말했다.
광주시 관계자는 “행정적인 면에서는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광주시 복지건강국장은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시는 A 추모관의 법인 사무를 감독하고 있으나 운영은 민간이 하는 사설업체다. 이 때문에 시가 행사할 수 있는 권한에 한계가 있는 것이지 대응에 소극적이지는 않았다. 침수 피해에 대해서는 시장님도 꾸준히 관심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이용섭 광주시장은 침수 당시 “A 추모관 측은 모든 대응조치와 성의를 다해 고인들에 대한 예를 다하고 유족들의 아픔을 해소해 드려야 한다”며 “시와 북구는 유족들의 가슴에 한이 되지 않도록 유족들의 건의와 바람을 충분히 수렴해 반영하고 모든 지원과 협조를 해달라”고 당부한 바 있다.
A 추모관 측은 일요신문의 연락에 답변을 하지 않았다.
광주=최희주 기자 hjo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