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곳 없는 떠돌이 부자 받아줬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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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을 남성들로부터 상습 성폭행을 당한 정신지체 소녀가 살던 충남 공주의 한 마을 입구.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
호우주의보가 발효된 7월 23일, 피해자 A 양(14)이 살고 있는 마을을 찾아갔다. 마을은 A 양이 다니는 중학교로부터 도보로 45분가량 걸리는 곳에 있었다. 마을로 가는 길은 낮시간인 데도 인적이 드물었고, 특히 가로등 하나 없어 밤엔 매우 어두울 것으로 보였다. A 양은 이 길을 평소에 혼자 걸어 다녔다고 한다.
차로 10분 정도 달리자 A 양이 사는 마을이 나타났다. 일부러 찾지 않으면 무심코 지나치기 쉬울 만큼 아주 작은 마을이었다. 마을 어귀에 들어서자 1983년부터 충청남도로부터 수상해 온 ‘범죄 없는 마을’이라는 현판 여섯 개가 나란히 걸려 있었다. 그 뒤편에는 깔끔하게 정돈된 시골길과 오밀조밀하게 붙었는 초가가 몇 채 보였다.
취재차량이 마을 어귀로 접근하자 주민 한 사람이 카메라를 막아서기 시작했다. 그는 “마을에 사람 하나를 잘못 들여와 이런 사단이 벌어진 것이다”며 “이 곳은 원주민들이 자부심 하나로 평생 농사를 일구며 살아온 마을이다. 제발 먹칠을 하지 말아 달라”고 취재를 만류했다. 그러면서 이 마을과 A 양의 등하교 길 가운데에 있는 산 중턱을 가리키며 “저기 빈 집에 들어온 부자(父子)가 마을에 먹구름을 몰고 왔다”고 말했다.
과연 이 조용한 마을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그는 B 씨와 이 마을의 악연에 대해 상세히 털어놨다.
B 씨는 8년 전 외부인의 출입이 전혀 없던 이 마을에 아들을 데리고 나타났다. 그는 “사업이 망해 갈 곳이 없어 떠돌던 중 발길이 이곳으로 닿았다”고 말하며 잠시 묵을 곳을 찾고 있다고 주민들에게 호소했다. 이들 부자의 딱한 사정에 마음이 흔들린 마을 사람들은 산 중턱에 있는 빈집을 내줬고 먹을 음식을 갖다 주는 등 친절을 베풀었다. 또 소일거리를 주기 위해 산에 시제(時祭)를 지내는 일을 맡기기도 했고, 농번기에는 농사일을 도우라고 하는 등 인정을 베풀었다. 그는 붙임성이 좋아 마을 사람들과도 쉽게 동화됐다. 항상 마을 어귀 정자 밑에 앉아 있다가 동네사람들에게 깍듯이 인사를 했다. 그는 “사위가 목사이고 자신도 매우 신실한 기독교인이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몇 년 전에는 장애인 C 씨를 마을로 데려와 함께 지내게 해달라고 사정했다. 그는 “아무도 돌보지 않는 사람이다. 사정이 딱해 마을로 데려 왔다”며 “자신이 평생 이 친구를 돌볼 테니 빈집에서 함께 살게 해 달라”고 말했다. 마을 사람들은 자신도 힘든 처지에 불우한 사람을 돌보겠다는 그의 말을 듣고 흔쾌히 허락했고 이후로 그의 인품을 더욱 믿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마을사람들이 상상할 수조차 없는 이중성을 가지고 있었다는 게 마을 사람들의 주장이다. 2008년부터 마을의 여중생 A 양을 자신은 물론 아들과 자신이 데려온 장애인 C 씨까지 성폭행해 온 것이다. 마을 사람들은 A 양을 성폭행한 9명 중 아버지와 아들이 바로 B 씨 부자라고 전하며 B 씨 때문에 나머지 7명도 쇠고랑을 차게 됐다고 주장했다. 마을회관에 모여 있던 주민들은 “평소에 A 양이 그렇게 ‘아저씨’ ‘오빠’하면서 친근해 했는데 뒤에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인근 파출소 관계자에 따르면 그는 이 마을 사람 이외에도 A 양의 중학교 부근의 마을 주민들과도 친하게 지냈다. 수사가 진행되며 성폭행 가해자로 발각된 7명 역시 그와 평소에 친분이 있던 사람들이라고 한다. A 양의 중학교 인근 마을 주민들은 “B 씨가 이 마을로 와 A 양을 성폭행한 이야기를 하자 솔깃한 다른 남자들이 같은 방식으로 A 양을 성폭행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전했다. 이들은 갓길에 차를 세워두고 차 안에서 A 양을 성폭행하는가 하면 집으로 데려가 몹쓸짓을 하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마을 주민은 “이번에 구속된 가해자 중에는 마을 조합장을 지내고 이번 지방선거에서는 시의원으로 출마한 이도 있어 마을 사람들이 경악을 금치 못했다”고 주장했다.
B 씨가 마을에 등장하기 전까지만 해도 마을은 아무 문제가 없었다고 한다. 주민들은 A 양의 지체장애를 의식조차 하지 않고 살아왔다고 주장했다. 어머니는 지체장애자였고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자여서 A 양을 잘 돌볼 수 없었지만 워낙 작은 마을이다 보니 모두가 A 양을 제 식구처럼 어릴 적부터 돌봐왔다는 것이다. 마을 주민들은 B 씨와 그의 아들이 살았던 빈집을 바라보며 “양의 탈을 쓴 악마가 작정하고 달려들어 우리도 속을 수밖에 없었다. 하물며 어린 A 양은 속절없이 당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며 “마을의 남자들이 몇 달 전부터 하나 둘씩 조사 받으러 불려가는 통에 분위기가 뒤숭숭하다”고 탄식했다.
손지원 기자 snorkle@ilyo.co.kr
B 씨 부자 살던 빈집에 들어가보니
십자가 아래서 어린 양을…
A 양이 상습적으로 성폭행을 당한 장소인 B 씨 부자가 살았던 ‘빈집’을 찾아갔다. 그 집은 A 양이 사는 마을 어귀로 들어서기 직전 반대편 사이길로 걸어 들어가야 하는 외딴 곳에 있었다. B 씨가 살던 빈집 주변에는 수풀이 우거져 밖에서는 집안이 잘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안으로 들어서자 방 안은 깔끔하게 정리돼 있어 얼마 전까지 사람이 살았던 흔적이 역력했다.
집 안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큰 십자가였다. 침대 옆에는 ‘하루에 행복을 찾아 사는 자는 영원한 행복을 누리는 것이다’는 붓글씨가 액자에 전시돼 걸려 있었다.
이밖에도 집안 곳곳에는 ‘은혜를 아는 자, 소중한 인연을 지키는 자’라는 글귀들이 눈에 띄었다. 현장만 봐서는 B 씨가 인면수심의 몹쓸짓을 자행했다고는 생각할 수조차 없는 분위기였다. 마을 주민의 표현처럼 그는 과연 양의 탈을 쓴 악마인 것인가.
십자가 아래서 어린 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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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의자 B 씨 부자가 구속 전까지 살던 집. |
집 안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큰 십자가였다. 침대 옆에는 ‘하루에 행복을 찾아 사는 자는 영원한 행복을 누리는 것이다’는 붓글씨가 액자에 전시돼 걸려 있었다.
이밖에도 집안 곳곳에는 ‘은혜를 아는 자, 소중한 인연을 지키는 자’라는 글귀들이 눈에 띄었다. 현장만 봐서는 B 씨가 인면수심의 몹쓸짓을 자행했다고는 생각할 수조차 없는 분위기였다. 마을 주민의 표현처럼 그는 과연 양의 탈을 쓴 악마인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