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담담하게 받아들여라
“나랑 만났던 3년 중에 정말 진실했던 순간이 있기는 했어?”
그녀에게 이렇게 소리치면서 K 씨는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 시간들을 떠올렸다.
K 씨에게 직장 후배였던 그녀는 입사했을 때부터 빛나는 존재였다. 유난히 결혼적령기 총각들이 많았던 그 부서에서 그녀를 두고 눈치작전이 벌어질 정도였다. 성격이 그다지 적극적이지 못했던 K 씨는 일찌감치 그녀를 포기했다. 더 멋지고 저돌적인 동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것이 오히려 그녀의 관심을 끌었다. 자신에게 눈독을 들이는 많은 남자들 사이에서 무덤덤한 그가 돋보였던 것이다!.
그녀는 집이 가깝다는 이유로 K 씨에게 카풀을 제안했고, 함께 출퇴근하면서 두 사람의 비밀 연애가 시작되었다. 여자 경험이 많지 않은 K 씨는 연애 숙맥이었다. 그녀는 그런 점을 답답해하면서도 다른 남자들에게서 느끼지 못하는 매력을 K 씨에게서 발견하곤 했다.
그녀에게서 이상한 조짐이 보이기 시작한 것은 연애 2년째 접어들면서부터였다. 못 보던 옷을 입거나 비싼 가방을 들고 다니기 시작한 것이다. K 씨가 물어보면 “아는 언니가 경제사정이 안 좋아서 싸게 팔았다”고 얼버무렸다. 어딘가 전화를 거는 일도 많아졌고 데이트 약속도 자주 어겼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그 무렵 차장이 새로 바뀌었던 것 같다.
그리고 몇 달 전이었다. 부서 회식 때 술이 거나하게 취한 K 씨가 화장실로 가다가 그녀와 차장이 부둥켜안고 있는 것을 보게 됐다. 하지만 소심한 K 씨로서는 상사에게 따질 용기가 없었다. 그렇다고 그녀에게 사실 확인을 할 수도 없었다. 혹시나 했던 일이 사실이 아니기를 바랄 뿐이었다.
두 사람을 몰래 살피던 K 씨는 마침내 그녀가 양다리를 걸치고 있다는 결론을 얻게 됐다. K 씨가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을 눈치 챈 그녀는 놀라울 정도로 태연했다. “그냥 모른 체했으면 계속 만나줬을 텐데…”라고까지 했다. 그녀는 헌신적인 K 씨를 만나 사랑받는 것도 좋았고, 차장을 만나 경제적인 풍요를 누리는 것도 좋았다고 했다.
♥ 미워하는 것도 괴롭고, 잊지 못해도 괴롭다.
3년간의 연애는 그렇게 끝났다. 상처를 많이 받은 K 씨는 아직도 그녀의 미니홈피에 들어가 근황을 살핀다. 헤어지자마자 자신과 함께 찍은 사진을 모두 삭제한 것을 보면 가슴이 서늘해진다. 처음에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지만 그 다음엔 ‘차였다’는 모멸감이 찾아왔고, 그리고는 ‘또 누군가를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에 괴로운 나날이 계속됐다.
지금 K 씨는 실연 후에 경험하게 되는 감정의 사이클 안에 들어와 있다. 어떤 이별이든 헤어지고 나면 상처가 남는다. 상대에 대한 분노는 결국 그런 사람을 만난, 혹은 그렇게 헤어질 수밖에 없었던 자신에게로 되돌아온다. 한때는 사랑했던 사람이니 미워하는 것도 괴롭다. 그건 그 사람을 사랑했던 자신을, 그리고 그런 시간들을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잊지 못하는 건 더 괴롭다.
이별 후 겪는 힘든 시간들은 나 자신으로 돌아가는 일종의 여행이다. 늘 누군가와 함께였고, 늘 누군가의 사랑과 관심을 받기 위해 애쓰던 나날로부터 해방되어 내가 나를 사랑해주고, 내가 내 삶의 주인공이 되는 그런 생활로 되돌아가는 중인 셈이다. 사랑한다고 저절로 행복해지는 건 아니다. 스스로 행복을 찾을 줄 아는 사람이 사랑을 해도 행복하다.
이웅진 좋은만남 선우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