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력 용의자’ 동거남 집서 피해자 혈흔 발견…DNA 등 증거에도 범행 부인
12월 8일 오전 3시 무렵 양산 북부동 소재 재개발 구역의 한 교회 건물 주변에서 여성 시신이 발견됐다. 당시 시신은 교회 담벼락 쓰레기더미에서 불에 타고 있었다. 사진=연합뉴스
경찰은 누군가 여성을 살해한 뒤 사체를 훼손하고 불로 태워서 관련 흔적을 지우려 한 것으로 보고 긴급히 수사에 돌입했다. 쓰레기 더미에 훼손된 시신을 버리고 불을 붙인 곳은 교회 주변이었는데 그곳은 폐교회로 인적이 드문 공사부지였다. 다행히 그 시간 출장세차를 마치고 인근을 지나던 주민가 있어 119 신고가 이뤄졌다.
경남 양산경찰서는 8일 오후 4시 48분 주거지로 귀가하는 50대 남성 A 씨를 살인 혐의로 긴급체포했다. 경찰은 폐교회 부지가 인적이 매우 드문 곳으로 이런 특성을 알고 있는 인근 주민이 범인일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이를 바탕으로 주변 CCTV와 차량 블랙박스 등을 통해 A 씨를 용의자로 특정했다. 경찰이 추정한 최초 불이 난 시점은 8일 새벽 2시 36분 무렵이다. 폐교회 인근 건물 CCTV 등을 분석한 결과 A 씨가 불이 난 시점 전후로 그 인근을 걸어서 지나가는 모습이 발견됐다.
그렇지만 A 씨는 경찰 조사에서 관련 혐의를 강하게 부인했다. CCTV 등을 통해 용의자가 특정은 됐지만 직접적인 증거가 확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용의자가 혐의를 강하게 부인해 자칫 수사가 난항에 빠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렇지만 경찰 수사를 통해 증거가 하나둘 드러나기 시작했다. 우선 경찰은 A 씨의 집을 압수수색해 피해자의 것으로 추정되는 혈흔 일부를 발견했다. 게다가 피해자의 신원을 추정할 수 있는 결정적인 단서도 발견한다. 경찰 조사 결과 A 씨는 사건 현장에서 300m가량 떨어진 곳에 살았고 약 2년 전부터 한 여성과 동거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그리고 주민들을 통해 동거녀가 얼마 전부터 보이지 않는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동거녀의 가족에게도 비슷한 진술을 확보했다. 그렇다고 정식으로 실종 신고가 된 상태는 아니었다. 이에 대해 A 씨는 경찰 조사에서 “과거에도 한 번씩 집을 나가곤 했다”며 실종이 아니라는 주장을 펼친 것으로 전해진다.
동거녀의 실종이 중요한 까닭은 신원미상 피해자 시신과 DNA 대조로 동일인 여부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신 훼손 정도가 심한 데다 한쪽 팔과 양쪽 다리가 없는 상태라 시신만 갖고 신원을 확인하는 데에는 상당히 어려움이 따를 수밖에 없다. 피해자 신원이 확인되지 못할 경우 미제 사건이 될 가능성이 크다. 반면 실종된 동거녀와의 DNA 대조를 통해 동일인임이 밝혀지면 바로 신원이 확인된다.
경찰은 동거녀가 남긴 머리카락과 칫솔, 그리고 동거녀 가족의 DNA 등을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으로 보내 DNA 대조 분석을 긴급 의뢰했다. 이 즈음 경찰은 “A 씨의 자백이 없어도 혐의 입증에 큰 문제가 없다”며 자신감을 보이기 시작했다.
긴급 체포된 용의자 A 씨는 혐의를 적극 부인하고 있지만 시신 발견 현장과 A 씨 주거지 인근 CCTV에 범행을 입증할 증거들이 담겨 있었다. 이미지컷으로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없다. 사진=이종현 기자
12월 10일 양산경찰서는 국과수로부터 훼손된 시신의 DNA와 A 씨 동거녀의 DNA가 일치한다는 결과를 받고 바로 A 씨에 대해 살인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그렇다고 경찰이 국과수 결과만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A 씨를 용의자로 특정해 긴급체포한 뒤 경찰은 바로 A 씨 집 주변 CCTV 분석에 돌입했다.
이 과정에서 7일 밤 A 씨가 비닐봉지를 들고 주거지에서 나가는 모습을 포착한다. A 씨는 주거지에서 800m가량 떨어진 고속도로 지하 배수 통로 인근으로 향했고 비닐봉지가 사라진 채 빈손으로 돌아오는 모습이 CCTV에 담겨 있었다. 경찰은 고속도로 지하 배수 통로 인근에 대한 수색작업에 돌입해 여기서 피해자의 나머지 시신 대부분을 발견했다.
만약 8일 새벽 3시 무렵 쓰레기 더미에서 불이 난 모습을 목격한 이가 없었다면 자칫 미궁에 빠질 수 있었던 이번 사건은 CCTV 등을 통해 사건의 전말이 하나둘 밝혀졌다. 그럼에도 A 씨는 여전히 범행 일체를 부인하고 있다. 폐교회 인근을 간 적조차 없다는 주장을 되풀이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런 까닭에 정확한 범행 동기와 일시, 시신 훼손 과정 등은 여전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
경찰은 A 씨의 집에서 발견된 혈흔과 범행도구 추정 물건 등을 국과수에 감정을 의뢰했으며 계속 A 씨에 대한 조사를 이어가고 있다. 경찰은 추가 진술과 증거를 확보해 살인 혐의에 시신 훼손과 유기 등 다른 혐의도 추가할 계획이다.
전동선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