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캄보디아 링딩동’에 웃기만 했지만…해외 K팝 팬들 국내 소속사에 앞서 집단 대응 나서
지난 10월 공개된 인도네시아 가수 비아 발렌의 뮤직비디오는 아이유의 ‘시간의 바깥’과 매우 유사하다는 비판을 받았다. 사진=유튜브 캡처
가장 최근 K팝 표절 논란이 불거진 것은 인도네시아의 가수 비아 발렌(Via Vallen)의 곡 ‘Kasih Dengarkanlah Aku’(사랑해, 내 얘길 들어봐) 뮤직비디오다. 지난 10월 공개된 이 뮤직비디오는 2019년 공개된 아이유의 ‘시간의 바깥’ 뮤직비디오의 주요 콘셉트와 전개 방식을 그대로 베꼈다가 해외 K팝 팬덤의 거센 비판을 받았다.
문제의 뮤직비디오에는 원곡 뮤직비디오 속 아이유의 헤어와 옷을 그대로 베낀 비아 발렌이 등장한다. 그와 듀엣한 남자 가수 역시 원곡 뮤직비디오에 출연한 남자 배우와 동일한 복장, 동일한 동작을 취하고 있다. 아이유가 들고 있는 집 모양의 작은 소품도 똑같이 비아 발렌의 뮤직비디오에서 사용됐다.
인도네시아 안에서도 그의 뮤직비디오는 논란거리였다. 인도네시아의 아이유 팬들은 비아 발렌과 그의 소속사인 아스카다 뮤직의 SNS와 공식 유튜브 계정에 항의 댓글을 달았다. “어떤 작품에서 모티브를 따와서 차용하는 것까진 좋다, 그런데 다 베끼지는 말아야 하는 거 아니냐” “한국 네티즌에게도 이 사실이 알려지면 나라 망신이다” “뮤직비디오 감독이 누구인지 알아야 한다. 가수는 죄가 없다”는 게 뿔난 팬들의 지적이었다. 이들은 직접 비아 발렌과 소속사, 뮤직비디오 제작진에 공식적으로 사과할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여론이 들끓자 비아 발렌은 지난 10월 24일 자신의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뮤직비디오 유사성을 인정하면서도 자신이 의도한 바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솔직히, 이 사실을 알고 너무 충격을 받았다. 비디오를 삭제해 달라고 요청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뮤직비디오 제작을 맡았던 감독 역시 아이유의 뮤직비디오를 표절한 사실을 인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의 뮤직비디오는 지난달 초순 삭제·교체된 상태다.
세르비아의 유명 가수 아사 루카스는 방탄소년단의 ‘Mic Drop’과 유사한 노래 ‘Veran’으로 표절 논란이 불거졌다. 사진=유튜브 캡처
이처럼 한국과 비교적 교류가 적은 나라에서 발생한 표절 논란이 국내 대중에게 알려진 것은 해외 K팝 팬들의 덕이다. 비아 발렌의 뮤직비디오가 공개된 직후부터 인도네시아를 비롯한 해외 K팝 팬들 사이에서 아이유 뮤직비디오와 유사성이 제기되기 시작했고, 이는 유튜브와 트위터, 해외 K팝 커뮤니티 등을 통해 급속도로 유포됐다. 오히려 한국에 알려진 것이 해외 팬들의 항의로 비아 발렌이 공식 사과한 다음의 일일 만큼 해외 팬들이 더 기민하게 움직인 것이다.
해외 K팝 팬들이 국내 대중 또는 국내 엔터업계보다 먼저 나서서 K팝 표절을 잡아내 시정하도록 한 것은 이번 사례뿐 아니다. 2018년 말 세르비아의 유명 가수인 아사 루카스(Aca Lukas)가 ‘Veran’(신실한)이라는 곡을 공개했는데, 이 노래가 방탄소년단(BTS)의 곡 ‘MIC Drop’(2017)과 유사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세르비아를 포함해 발칸반도의 BTS 팬들을 분노케 했다. 이 팬들은 아사 루카스의 인스타그램으로 몰려가 표절을 항의하는 한편, BTS의 소속사인 빅히트엔터테인먼트 측에 이를 신고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아사 루카스와 BTS 팬들 간의 SNS 설전이 벌어져 눈길을 끌었다. 아사 루카스는 자신보다 훨씬 어린 팬들을 상대로 욕설을 퍼붓거나 인종차별적인 발언을 해 논란을 낳았다. 문제의 곡은 그리스 작곡가에게 정당히 구매한 것이라며 계약서를 공개하면서 “나는 일본이나 중국 노래를 듣지 않는다. 대신 그리스의 노래는 듣는다”고 밝혀 BTS에 대해서도 인종차별 발언을 이어나갔다.
결과적으로 해외 팬덤의 신고를 받은 빅히트 측이 직접 나서면서 아사 루카스의 곡은 저작권 침해를 이유로 유튜브에서 삭제됐다. 더욱이 아사 루카스에게 곡을 판매한 작곡가가 BTS의 노래를 표절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사실상 아사 루카스도 피해자가 된 상황이다. 여기에 더해 이 작곡가가 만든 것으로 알려진 한 그리스 가수의 노래도 ‘MIC Drop’과 유사성이 확인돼 표절로 인한 피해가 더 있을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샤이니 ‘링딩동’을 표절한 이른바 ‘캄보디아 링딩동’은 하나의 유머 이슈였지만, 현재의 K팝 표절 논란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이야기다. 사진=유튜브 캡처
2000년대 중반부터 2010년대까지 K팝 한류를 이끌었던 SM, JYP, YG는 이 같은 해외 표절의 주된 표적이다. 작게는 지방의 한 소규모 밴드나 무명가수부터 크게는 국가적으로 밀어주는 거물급 가수들까지 이른바 ‘곡 빼먹기’를 15년 이상 이어오고 있는 상황이다.
예컨대 YG엔터테인먼트의 경우는 2NE1과 빅뱅이 단체곡부터 솔로곡, 뮤직비디오나 컴백 콘셉트 이미지까지 연이어 표절당하는 일이 잦았다. 빅뱅의 지드래곤, T.O.P, 태양은 각각 ‘Heartbreaker’(하트 브레이커), ‘Turn it Up’(턴 잇 업), ‘눈 코 입’이 동남아시아와 스페인, 러시아에서 2011년과 2017년에 표절당했다.
2NE1은 데뷔곡인 ‘Fire’(파이어)와 ‘내가 제일 잘나가’가 2010년, 2013년에 표절당해 팬들을 분노케 만들었다. 특히 ‘내가 제일 잘나가’는 도미니카공화국 출신의 가수 라 마테리알리스타의 ‘Chipi Cha Cha’(치피 차차)라는 곡으로 표절돼 해외 2NE1 팬들이 이를 YG엔터테인먼트 측에 신고하기도 했다. 2013년 당시 YG엔터테인먼트가 유튜브에 저작권 침해를 신고해 원본 뮤직비디오 영상은 삭제됐지만 2015년 다시 똑같은 영상이 공식 계정으로 게시된 상태다.
SM엔터테인먼트 소속 그룹 샤이니는 이른바 ‘캄보디아 링딩동’과 ‘세르비아 루시퍼’로 몇 차례 홍역을 치른 바 있다. 소녀시대와 슈퍼주니어도 표절 사례가 이따금 불거져 왔다. JYP는 원더걸스가 특히 표절 피해의 중심에 섰다.
엔터업계에서는 2010년대 중반부터 지속적으로 불거지고 있는 K팝 표절 사례에 대해 “이전보다 더 확실하게 모니터링, 대처하고 있다”며 ‘소속사가 대책 없이 손을 놓고 있다’는 팬들의 불만을 일축했다.
한 연예기획사 관계자는 “콘셉트 표절은 조금 모호할 수 있으나 음원 표절의 경우는 신고를 받는 즉시 유튜브 등 동영상 사이트와 음원사이트에 저작권 침해 사실을 공지하고 있다. 표절 가수들의 공식 뮤직비디오나 음원들이 곧바로 삭제되는 것도 그런 이유”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물론 실제 법적 분쟁으로 이어진다면 예나 지금이나 국내 소속사들에 큰 실익이 없는 것도 사실”이라며 “다만 요즘은 2010년대보다 해외 K팝 팬덤이 더욱 성장해 있고 일부 가수들의 경우 정말로 세계가 다 아는 위치에 있어 각 나라에서 발생하는 표절 등 이슈에 대해 내부적으로 집단 항의를 하거나 자체적으로 대응하는 사례도 많아지고 있다. 우리도 그 덕을 보고 있다고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