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 잔류 허경민, 정수빈에게 “같이 뛰자”…SK 9년 만에 FA 최주환 영입, 삼성 ‘천군만마’ 오재일 잡아
허경민은 4+3년 계약으로 FA 계약 역사에 새로운 기록을 남겼다. 사진=두산 베어스 홈페이지
모기업 재정난이 표면화돼 걱정을 산 두산 베어스가 대표적 사례다. 주전급 FA 7명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온 두산은 모기업과 상의한 끝에 내야의 핵 허경민(30)과 센터 라인의 중심인 중견수 정수빈(30)을 반드시 잡기로 계획했다. 결국 ‘장기 계약’ 카드를 내밀어 계약을 성사시켰다. 예상보다 큰 돈보따리를 풀어놓은 두산의 행보에 야구계가 깜짝 놀란 것은 물론이다.
#시장을 뒤흔든 허경민의 4+3년 초장기 계약
FA 시장의 포문은 ‘준척급’ FA들의 잔류 소식이 열었다. 내야수 김성현(33)이 12월 1일 원 소속구단 SK 와이번스와 1호 계약을 마쳤다. 계약 조건은 2+1년 최대 11억 원. 계약금 2억 원, 연봉 2억 5000만 원→2억 원→1억5000만 원, 옵션 3억 원을 포함한 금액이다. 2006년 SK에 입단한 뒤 한 팀에서만 뛴 김성현은 빠르게 팀 잔류를 택했다. SK는 “그동안 팀을 위해 헌신한 김성현과 가장 먼저 FA 협상을 했다. 김성현이 유격수와 2루수로 다양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판단해 계약했다”고 설명했다.
그 다음은 LG 트윈스 내부 FA인 내야수 김용의다. 김용의는 12월 3일 LG와 1년 총액 2억 원(계약금 1억 원·연봉 1억 원)에 사인했다. 차명석 LG 단장은 “김용의는 팀에 애정이 깊고 팀을 위해 헌신한 선수다. 팀 전력에 다양한 도움이 되는 선수라고 판단해 계약했다”고 했다. 1년 계약에 총액도 크지 않다. 그럼에도 김용의는 감격했다. “FA 자격을 얻은 것 자체가 내게 큰 의미였다. 처음부터 액수는 중요하지 않았다. 계약해 준 구단에 고맙다. 내년 시즌 더 좋은 성적을 올리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그 후 시장은 한동안 잠잠했다. 두산 출신 FA 중 허경민, 최주환, 오재일을 둘러싼 영입전이 치열하다는 소식만 끊임없이 들려왔다. “최주환은 SK, 오재일은 삼성과 이미 합의가 끝났다”는 소문이 파다했지만, 두 선수의 에이전트들은 원 소속구단 두산과 협상 중이라는 얘기만 반복했다.
가장 먼저 계약 소식을 전한 건 두산과 허경민이었다. 올해 최대어로 꼽히던 허경민은 12월 10일 KBO리그 역대 최장기간인 ‘7년’ 계약을 맺고 두산에 잔류해 야구계를 놀라게 했다. KBO리그에서 흔하지 않은 4+3년 계약. 금액은 최대 85억 원이었다. 2021~2024년 4년간은 계약금 25억 원, 연봉 40억 원 등 총액 65억 원을 받는다. 4년 계약이 끝난 뒤 허경민이 팀 잔류를 택하면 3년 20억 원에 재계약한다. 선수에게 4년 뒤 옵션 선택권까지 넘긴 파격 조건이다.
그동안 KBO리그 FA는 일반적으로 ‘4년’이 최장 계약 기준으로 통했다. 2004년 정수근이 롯데 자이언츠와 6년 최대 40억 6000만 원, 2018년 최정이 SK와 6년 최대 106억 원에 FA 계약을 한 게 이례적이다. 다른 선수는 거의 계약 기간 4년 이하를 보장받았다. 4년 뒤 한 번 더 FA 자격을 얻었을 때 다시 새로운 기회를 노려볼 수 있어서다. 두산이 사실상 7년을 보장해준 ‘4+3년 계약’은 KBO리그 사상 최장 기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허경민이 FA 시장에 나오자 두산을 포함한 복수의 구단이 영입 제의를 했다. 이 과정에서 지방의 B 구단이 두산보다 먼저 허경민에게 4+3년 계약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만큼 전력 보강을 위해 허경민을 잡겠다는 의지가 강했다. 그러나 “허경민을 1순위로 잡겠다”고 결심한 두산은 이 구단이 제시한 조건을 전해들은 뒤 같은 ‘7년’ 조건에 금액을 더 추가해 잔류를 이끌어냈다. 웬만하면 서울 구단에 남고 싶어 했던 허경민의 마음을 기어이 움직였다. 먼저 초장기 계약 아이디어를 냈던 B 구단이 허탈한 마음을 감추지 못한 것은 물론이다.
허경민은 계약 후 “생애 처음으로 FA 자격을 얻어 많이 고민했던 건 사실이다. 이제 후련하다. 7년 계약을 해준 구단에 정말 고맙다. 4년 동안 더 열심히 하고, 그 뒤에 3년을 구상할 수 있다”고 계약 기간에 만족해했다. 또 “마냥 기쁘기보다는 무한한 책임감을 느낀다. 매 경기 나 자신을 채찍질하며 뛰겠다”고 다짐했다.
SK의 최주환 영입은 9년 만의 외부 FA 영입이다. 사진=SK 와이번스 홈페이지
#소문대로 최주환은 SK, 오재일은 삼성 이적
허경민의 잔류 발표를 신호탄 삼아 그간 무성했던 두산발 A급 FA들의 이적설이 속속 사실로 드러났다. 내야수 최주환이 12월 11일 SK와 4년 최대 42억 원에 계약했다. 계약기간 4년에 계약금 12억 원, 연봉 합계 26억 원, 옵션 4억 원이 포함된 조건이다.
당초 옵션 2억 원을 더한 최대 총액 40억 원에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여러 구단 경쟁이 붙으면서 최종 사인을 앞두고 옵션 2억 원이 추가됐다. 최주환은 2021년 FA 중 처음으로 원 소속팀이 아닌 다른 구단과 계약했다. 2006년부터 두산에서 뛴 최주환은 생애 첫 FA 자격을 얻은 뒤 SK에 새 둥지를 틀었다.
SK에도 기념비적인 계약이다. SK가 외부 FA를 영입한 건 2011년 12월 투수 임경완과 포수 조인성 이후 9년 만이다. SK가 다른 팀에서 영입한 FA 중 최고액이다. 종전 SK의 외부 FA 최고액은 2004년 김재현의 4년 총액 20억 7000만 원이다. 최주환은 그 금액을 2배 넘게 올렸다. SK는 1루, 2루, 3루 수비가 모두 가능하고 장타력이 좋은 최주환이 홈플레이트와 외야 펜스 사이의 거리가 짧은 인천 SK행복드림구장에서 더 빛을 발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오랜 기간 SK 단장을 맡았던 민경삼 구단 대표이사가 직접 나서 최주환에게 공을 들였고, 결국 영입에 성공했다.
계약 소식을 접한 김원형 SK 신임 감독은 “팀에 꼭 필요한 선수를 구단에서 빠르게 영입해 주셔서 감사하다. 최주환은 두산 코치 시절부터 지켜본 선수다. 공격 쪽에서 활용도가 높아 팀 타선에 큰 활력소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최주환은 “그동안 프로야구 선수로서 성장에 도움을 주신 두산 구단 관계자 분들과 김태형 감독님, 항상 함께해주신 선수단과 팬 여러분께 감사하다. 팀을 이적하게 돼 죄송한 마음이 크다”고 미안한 마음을 전하면서 “SK 구단에서 2루수로서 가치를 인정해주셨다. 이적을 결심하는 데 가장 큰 요소였다. 내년 시즌 팀이 도약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삼성과 오재일도 더는 망설이지 않았다. 이틀 뒤인 12월 14일 4년 최대 50억 원(계약금 24억 원, 연봉 합계 22억 원, 옵션 4억 원)에 계약했다고 발표했다. 연봉은 2021∼2022년 6억 원씩, 2023∼2024년 5억 원씩으로 책정됐다. 인센티브는 해마다 1억 원씩 포함됐다. 삼성 역시 2017년 포수 강민호 이래 3년 만의 외부 FA 영입이다.
오재일은 왼손 거포가 필요한 삼성이 가장 원하던 선수다. 오재일은 두산에서 잠실구장을 홈으로 쓰면서도 2015년부터 6년 연속 두 자릿수 홈런을 쳤다. 잠실보다 훨씬 타자 친화적인 대구 삼성 라이온즈 파크에선 더 많은 홈런이 나올 것으로 기대된다. 장타력이 절실한 삼성에는 천군만마다.
오재일은 “내 가치를 높게 평가해주신 삼성 구단에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좋은 기억이 많은 대구에서 새로운 도전을 하게 돼 설렌다. 기대에 걸맞은 활약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최주환과 마찬가지로 오랜 시간 몸담은 두산 관계자들과 김태형 감독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함께 뛰었던 훌륭한 동료들과의 추억과 두산 팬들의 함성을 평생 잊지 않고 간직하겠다”고 덧붙였다.
삼성은 오재일을 두 팔 벌려 환영했다. 오재일이 아이폰 사용자라는 걸 들은 원기찬 삼성 라이온즈 대표이사는 새 식구가 된 오재일에게 삼성의 최신 휴대전화 갤럭시Z 폴드2를 선물하기도 했다.
#정수빈, 4년 40억 제안 뿌리치고 두산 6년 잔류
최주환과 오재일의 이적이 확정되자 두산은 정수빈 잔류에 온 힘을 쏟았다. 정수빈은 당초 허경민에 비해 다른 구단의 관심을 덜 받는 상황이라 상대적으로 여유를 두고 지켜보던 참이었다. 그러나 외야 주전 자리가 텅 빈 한화 이글스가 적극적으로 정수빈에게 손을 내밀었다. 외국인 감독을 미국에서 만나고 온 정민철 단장이 귀국 후 자가격리 2주간 정수빈과 에이전트에게 전화와 모바일 메시지로 꾸준한 연락을 취했다.
지갑도 두둑하게 준비했다. 정수빈에게 계약기간 4년에 옵션 없이 보장금액 40억 원을 제시했다. SK와 계약한 최주환보다 보장 금액은 더 많다. 정수빈 역시 계약 후 “한화의 제안으로 인해 정말 고민을 많이 했고, 그만큼 행복하기도 했다. 한화 구단, 특히 정민철 단장님이 야구선수로서 내 가치를 인정해 주셔서 매우 감사했다”고 말했을 정도다.
그러나 두산은 정수빈의 마음을 잡기 위해 다시 한 번 ‘6년 계약’ 카드를 꺼내 들었다. 4년 기준으로는 한화에 못 미치는 금액이지만, 계약 기간을 2년 더 늘려 ‘안정감’을 보장했다. 무엇보다 2009년부터 두산에서 뛴 정수빈의 팀에 대한 애정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먼저 장기 계약을 마친 허경민이 그림자처럼 정수빈에게 따라 붙어 “두산에서 함께 뛰자”고 설득했다.
결국 12월 16일 두산과 정수빈은 “6년 최대 56억 원(계약금 16억 원, 연봉 합계 36억 원, 인센티브 4억 원)에 계약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한화가 데드라인으로 제시한 15일 저녁까지 고민을 거듭한 정수빈 측은 결국 이날 오후 10시에 두산과 만나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정수빈은 “매우 좋은 조건을 제시해 준 구단에 감사드린다. 더 큰 책임감을 느끼고 예전보다 더 열심히 뛰어다니겠다. 은퇴할 때까지 ‘베어스맨’으로 뛸 수 있을 것 같아 영광”이라는 소감을 전했다.
배영은 중앙일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