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인턴십 서류 모두 허위, 과정 자세히 기술…재판부 “허위 경력 제외하면 무경력” 지적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2부(부장판사 임정엽·권성수·김선희)는 12월 23일 업무방해 등 15개 혐의로 기소된 정 교수에게 징역 4년에 벌금 5억 원을 선고하고 추징금 1억 3800여 만 원을 명령했다. 재판부는 정 교수의 자녀인 조 씨의 대학 및 의학전문대학원 진학을 위해 제출된 경력 사항이 모두 허위라고 판단했다. 정 교수 부부가 입시 자료 내용을 임의로 작성 및 위조하거나 그 명의인이 정 교수의 부탁을 받고 작성했다는 것이다.
판결문에 따르면 정 교수는 △단국대 의과학연구소 체험활동 △공주대 생명공학연구소 체험활동 △서울대 공익인권법센터 인턴십 △부산 아쿠아펠리스호텔 인턴십 △KIST 분자인식연구센터 인턴십 △동양대 총장 표창장 △동양대 어학교육원 보조연구원 활동 등 입시 비리와 관련된 7개의 혐의에서 모두 유죄를 받았다. 이 가운데 서울대 공익인권법센터 인턴십 확인서 허위 발급과 부산 아쿠아펠리스호텔 인턴십 확인서 허위 발급 및 위조에 대해서는 정 교수의 배우자인 조국 전 법무부 장관과 공모한 것으로 판시했다.
553장에 이르는 판결문에는 허위 서류 발급 및 위조 과정이 자세하게 기재됐는데 이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정 교수 부탁으로”
1심 선고를 위해 들어서는 정경심 교수. 사진=연합뉴스
판결문에 따르면 조 씨는 2007년 단국대 의과학연구소에서 2주 동안 체험활동을 했다. 조 씨는 이 활동을 근거로 대한병리학회지에 실린 의학논문에 제1저자로 등재되었는데 논문을 지도한 장영표 교수는 조 씨의 고교 동창생 장 아무개 씨의 아버지였다. 이후 장 씨는 조 전 장관으로부터 서울대 공익인권법센터 인턴십 확인서를 받았다. 법원은 정 교수가 조 전 장관과 공모해 장 교수의 아들에게 서울대 공익인권법센터 인턴십 확인서를 주고, 딸의 단국대 논문 1저자 등재를 약속해 이른바 ‘스펙 품앗이’를 한 것이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정 교수가 ‘체험 활동 확인서’ 내용을 임의로 수정 및 추가했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판시된 바에 따르면 정 교수는 2013년 6월 자택에서 2009년 발급 받은 단국대 의과학연구소의 ‘체험 활동확인서’ 제목을 ‘인턴십 확인서’로 임의로 변경했다. 뿐만 아니라 ‘활동기간’란에는 ‘96시간’을 추가하고 조 씨의 소속까지 수정했다. 이후 장 교수의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수정한 ‘인턴십 확인서’에 남편의 서명을 받아 달라고 부탁했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조 씨의 행위는 체험 활동일 뿐 인턴 활동을 한 것이 아니며 활동 시간은 많아야 70시간”이라며 인턴십 확인서 내용을 허위라고 판단했다.
공주대 생명공학연구소 체험활동도 정 교수의 부탁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인정됐다. 정 교수는 2008년 7월 대학 동기인 A 교수를 찾아가 조 씨가 논문을 작성할 수 있는지 문의했고 A 교수는 이를 거절했다. 대신 조 씨가 독후감 작성, 선인장, 구피, 장미 생육을 수행하면 이듬해 열리는 일본 학회에는 데려가 줄 수 있다고 답했다. 조 씨는 이 학회에 참석하고 국제조류학회 페이퍼 초록에 공동저자로 들어가게 되었는데, 실제로 한 일은 발표자가 발표 도중 생각나지 않는 영어 단어를 알려주거나 논문 내용을 영어로 설명해주는 것이었다.
법원에 증인으로 출석한 A 교수는 “전혀 기여한 바 없는 조 씨를 (제3저자로) 올려준 것은 입시 스펙을 위한 것이다. 대학 동창인 정경심 교수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한 것을 후회하는 것이 사실”이라고 증언했다.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여 “조 씨가 공주대에서 받은 4부의 체험 활동 확인서 모두 사실로 보기 힘들다”며 “정 교수가 체험 활동 내용이 허위임을 알면서도 이에 관여했다는 사실이 충분히 인정된다”고 했다.
KIST 분자인식연구센터에서의 인턴십 활동도 재판부는 정 교수의 친분을 이용해 실제보다 과장되거나 허위로 작성됐다고 판단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정 교수는 평소 친분이 있던 전 KIST 기술정책연구소장 B 씨에게 조 씨의 인턴 활동을 부탁했고 B 씨는 KIST 한 연구소에 조 씨를 소개했다. 재판부에 따르면 조 씨는 이 연구소에 2011년 7월 18일부터 같은 달 22일까지 총 5일을 출근하며 논문 읽기, 실험기구 세척 등의 업무를 수행했다. 이후 B 씨는 정 교수의 부탁에 따라 사실관계 확인 없이 ‘실험 및 자료조사 업무를 3주간 시행하였다’는 내용의 인턴십 확인서를 발급해주었다. 이는 실제보다 3배 정도 부풀려진 것이었다.
문제는 B 씨에게 인턴십 확인서 작성 권한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가 발급한 인턴십 확인서는 해당 연구소 교수의 허락 없이 만들어진 것으로 연구소 공식 서류가 아니었다. 이에 대해 법원은 정당한 권한이 없었던 B 씨가 인턴십 확인서를 발급하게 된 데에는 정 교수와의 친분이 작용했다고 봤다. 한편 정 교수는 B 씨에게 인턴십 확인서를 받은 뒤 이 확인서에 임의로 ‘성실하게 실험 및 자료조사 업무에 참여하였음’이라는 내용을 추가로 써 넣은 것으로 나타났다.
#조국 전 장관도 공모
1심 재판부는 조 씨의 허위 스펙에는 조 전 장관이 공모한 부분이 있다고 봤는데 법원이 조 전 장관을 공범으로 적시한 부분은 서울대 공익인권법센터와 부산 아쿠아펠리스 호텔 인턴십 두 가지다. 재판부는 “조 씨는 서울대 공익인권센터 측으로부터 인턴 활동을 허락받거나 세미나와 관련된 과제를 부여받은 적이 없다”며 인턴 활동을 허위로 판단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조 씨가 인턴활동을 했다고 주장한 기간은 AP시험(미국 대학 지원용) 일정과 중복돼 활동이 불가했던 시기로 나타났다. 또 정 교수 측은 조 씨가 동급생과 공익인권센터 인턴 활동을 위한 스터디를 한 사실이 있다고 주장했으나 이 동급생은 “관련 스터디를 한 적이 없다”고 진술해 이 역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인턴십 확인서가 만들어진 경위에 대해서 재판부는 “서울대 교수였던 조 전 장관은 공익인권법센터장의 직인을 보관하던 센터 사무국장의 도움을 받아 센터장 허락 없이 인턴십 확인서를 작성할 수 있었다”며 “정 교수도 딸이 공익인권법센터에서 인턴 활동을 하지 않은 사실을 알고 있는데도 허위내용이 기재된 인턴십 확인서를 발급받기로 조 전 장관과 공모하고, 이에 가담했다”며 공동정범으로 판시했다.
한편 사실여부를 다퉜던 세미나 동영상 속 여성은 조 씨로 보기 어렵다는 판결이 나왔다. 동영상 속 여성은 가슴 정도까지 오는 머리 길이에 검정색 재킷을 입고 있었는데 조 씨의 학교 교복은 회색으로 2009년 5월 당시 조 씨는 단발머리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당초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는 “두 인물이 동일인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내용의 감정결과를 내놓았으나 재판부는 이 감정결과의 주된 취지는 ‘판정불가’였다고 해석했다.
또한 조 씨는 검찰조사에서 “인권동아리 회원 5~10명과 함께 맨 뒷줄에 앉았다”고 진술했는데 동영상 속 여성은 중간 줄에 일행 1명과 앉아있는 것으로 확인된 것도 위와 같은 판단에 무게를 더 했다. 동영상 속 여성이 조 씨라고 진술한 사무국장은 조 씨를 2009년 한 번 본 이후 2019년까지 10년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조 씨는 2009년 8월과 10월 두 차례에 걸쳐 부산 아쿠아펠리스 호텔의 인턴십 확인서와 실습수료증을 발급받았다. 그러나 아쿠아펠리스 호텔 직원들은 공판에 출석해 조 씨가 인턴활동을 한 적이 없다고 증언했다. 이에 재판부는 조 전 장관의 PC에서 나온 디지털 증거들을 근거로 “확인서와 실습 수료증은 모두 조국 전 장관 임의로 내용을 작성한 후 호텔의 법인 인감을 날인 받은 것으로 판단된다”고 봤다. 앞서 검찰 수사에서는 조 전 장관이 2009년 7월 딸의 유학반 디렉터와 저녁식사를 했고, 그 다음날 연구실에서 호텔 인턴확인서가 인쇄된 정황이 드러났었다.
#표창장은 위조로 인정
취재에 응하는 동양대 진상조사단. 사진=연합뉴스
2019년 국감에서 논란이 됐던 동양대 표창장 위조 의혹에 대해서 재판부는 “정 교수가 위조한 것이 맞다”고 봤다. 검찰의 주장이 대부분 받아들여졌는데 △기존 동양대 총장 표창장의 일련번호 등 양식과 기재사항 △압수된 동양대 강사휴게실 PC에서 발견된 위조 관련 파일 △‘전자직인’을 사용하지 않던 시기에 프린터로 직인이 출력된 점 △최성해 동양대학교 총장 및 관계자들의 증언이 판단의 근거로 작용했다.
표창장에 기재된 내용도 허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판단됐다. 표창장에는 조 씨가 2012년 1월부터 2월까지 매주 토요일 영어에세이 쓰기 수업을 도왔다고 돼 있었다. 그러나 조 씨의 그 해 1~2월 카드내역을 조회한 결과, 수업이 있던 당일과 전후로 맥도날드 서울역점, 부산의 한 피부미용실, 방배동 칼국수집과 중식당 등에서 카드가 사용되었음이 확인됐다. 즉, 수업이 있던 날 조 씨의 카드가 경북 영주의 동양대가 아닌 서울과 부산 등에서 쓰였다는 것이다. 앞서 조 씨는 검찰조사에서 “튜터 활동을 하기 위해 동양대에 가면 최소한 하룻밤은 영주에서 잤다”고 진술한 바 있는데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허위 경력 제외하면…”
한편 재판부는 조 씨가 부산대 자기소개서를 언급하며 “허위 경력을 제외하면 (자기소개서의) ‘경력’은 공란이 되고 ‘경력 참조사항’란에는 단기 프로그램 수료내역만 남으며 ‘비교과영역 성취’란에는 논문 관련 기재가 없어지며, ‘수상경력’란에는 고교 졸업 이후의 수상경력이 없으며, ‘고등학교 졸업 이후의 교내외 활동’란에는 한 개의 활동만 남게 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정 교수의 입시 비리 관련 범행으로 (조 씨가) 서울대 의전원 1차, 부산대 의전원에 최종 합격했고, 불공정 결과가 발생했다”며 “정 교수의 입시 비리는 공정하게 경쟁하는 많은 사람에게 허탈감과 실망감을 야기하고 우리 사회가 입시 시스템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게 했다”고 지적했다.
다만 부산대 측은 대법원의 최종판결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부산대 측은 “법원의 최종 판결이 나오는 대로 자체 심의기구를 열어 학칙과 모집요강에 따라 처리한다는 것이 공식 입장”이라고 밝혔다.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