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꽃처럼 타오르다 나비처럼 사라지다
스페인계 영국인 아버지와 아시아인이었던 어머니(베트남과 중국의 혼혈) 사이에서 태어난 제인 마치의 오묘한 외모는 그녀를 자연스레 ‘화류계’로 이끌었다. 영국 런던에서 태어난 그녀는 14세 때 모델 콘테스트에서 입상했다. 160센티미터도 안 되는 자그마한 체구의 그녀가 감히(!) 모델에 도전한 건 복수심 때문이었다. 첫 남자친구에게 실연의 아픔을 겪은 14세의 제인 마치는 모델이 되어 이곳저곳에 자신의 사진이 붙어 있으면 자신을 떠난 남자친구가 보기 싫어도 자신을 볼 수밖에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어린 마음이었지만 간절했고 157센티미터의 그녀는 곧 톱 모델이 되어 정말로 수많은 지면의 광고를 장식한다.
<저스트 세븐틴(Just Seventeen)>이라는 잡지의 표지 모델이 된 그녀를 눈여겨 본 사람은 장 자크 아노 감독의 아내였다. 당시 아노 감독은 움베르토 에코의 베스트셀러 <장미의 이름>을 뛰어난 솜씨로 영화화해 명성을 떨치고 있었고, 이번엔 마그리트 뒤라스의 자전적 소설 <연인>에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주인공 소녀 역을 찾던 감독에게 아내는 제인 마치를 추천했고 17번째 생일에 오디션을 본 마치는 영화배우가 된다.
당시 A급 모델이었으며 35-22-34의 환상적 몸매를 지닌 제인 마치는 이 영화에서 파격적인 섹스 신을 보여준다. 총 5명의 대역을 쓰긴 했지만 그녀의 고감도 연기는 모든 장면을 직접 해낸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켰고 특히 양가휘와의 섹스 신은 매우 리얼했다. 급기야 그녀는 ‘실제 정사’의 소문에 시달리며 윤리적 단죄를 받아야 했다. 그녀가 런던 교외의 ‘피너’(Pinner) 지방에서 자랐다는 사실을 이용해 ‘피너에서 온 죄인’(The Sinner From Pinner)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였다. 촬영 당시 18세, 개봉 당시 19세였던 제인 마치는 이러한 혼란스러운 상황을 견디지 못해 신경쇠약에 시달렸고 결국은 섬에서 요양을 해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
하지만 장 자크 아노 감독은 침묵으로 일관했다. 그런 소문이 흥행에 도움을 줄 거라는 판단에서였다. 그의 생각처럼 영화는 흥행에 성공했지만 제인 마치와의 사이는 극도로 멀어졌다. 마치는 자신을 지켜주지 않았던 아노 감독과 10년 동안 연락을 끊고 지냈고, 2003년에 아노 감독이 공식적으로 사과한 후에야 관계가 회복되었다.
두 번째 영화인 <컬러 오브 나이트>(1994)는 시나리오는 전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당대 최고의 스타였던 브루스 윌리스의 상대역이라는 이유로 출연한 영화였다. 윌리스가 마치에게 쿤닐링구스(입술이나 혀로 여성의 성기를 애무하는 행위)를 하는 장면으로 유명한 이 영화는 그녀의 육체를 더욱 착취했다.
마치가 인터뷰에서 직접 “적어도 <연인>의 섹스 신은 영화의 주제나 이야기 전개에 연관되어 있었다. 하지만 <컬러 오브 나이트>의 섹스 신은 전혀 불필요한 것들”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하지만 마치는 이 영화의 프로듀서이자 윌리스와 함께 ‘플라잉 하트’라는 영화사를 이끌던 카민 조조라와 사랑에 빠졌고, 촬영 중에 8시간 정도 짬이 났을 때 제트기를 타고 타호 호수 근처의 교회로 날아가 결혼식을 올렸다. 결혼식 소요 시간은 총 11분. 윌리스와 데미 무어가 증인으로 참석했는데 당시 마치는 웨딩드레스도 없이 흰 티셔츠에 청바지 차림이었다. 결혼식을 마치고 20세의 신부와 35세의 신랑은 신혼여행도 없이 다시 현장으로 돌아와야 했다. 당시 마치의 아버지는 사윗감을 단 한 번도 본 적 없던 상태. 결혼 사실도 마치가 식을 올린 후 전화했을 때에야 알았다. 그렇지만 이처럼 불같은 사랑을 나눈 부부는 1997년부터 별거에 들어가 2001년에 이혼했다.
이후 그녀의 경력은 곤두박질쳤다. 두 편의 영화에서 너무 많은 것을 보여준 그녀는 연기력을 쌓을 시간도 없이 그저 그런 영화를 전전했고 그런 상태는 지금도 지속되고 있다. 최근 <타이탄>(2010)에 출연했으나 단역에 지나지 않았다. 한때 할리우드에서 가장 뜨거운 육체였던 제인 마치. 하지만 그 열기는 스무 살이 갓 넘었을 때 너무 빨리 식어 버렸다.
김형석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