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부 지원 ‘빵빵’, 최근엔 스크롤 웹툰도 주목…일본에 도래할 때마다 진화하며 타깃층 넓혀
일본 매체 ‘포브스재팬’은 이렇게 평가했다. 연초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일본 내 흥행 돌풍을 일으켰고, 이어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이 대히트, 그리고 연말에는 한일 프로젝트 걸그룹 니쥬(NiziU)가 NHK ‘홍백가합전’을 화려하게 장식했다. 그야말로 ‘한류 붐이 열도에 도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기 비결을 분석하는 현지 매체 기사들도 쏟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도래할 때마다 거세지는 한류 전략을 배워야 한다”며 자성의 목소리도 들린다.
JYP엔터테인먼트가 육성한 걸그룹 니쥬의 성공과 관련해 일본에선 케이팝이 현지 특성에 맞춘 전략으로 진화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사진=니쥬 공식페이스북
#열도 휩쓴 ‘니쥬’ ‘박진영 어록’도 화제
저널리스트 하세가와 도모코는 “한류 붐이 비단 일본만의 현상은 아니다”고 말했다. “세계적으로 ‘한국 엔터테인먼트’라는 장르가 부각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특히 ‘한류가 각 나라의 시장상황에 맞게 트렌드를 만들어낸다’는 점에 주목했다. 어떻게 하면 그 나라에서 히트할 수 있을지 전략을 잘 짠다는 얘기다.
가령 일본 시장의 경우 JYP엔터테인먼트가 육성한 걸그룹 니쥬를 꼽을 수 있다. 니쥬는 JYP가 소니뮤직과 합작한 오디션프로그램 ‘니지 프로젝트’를 통해 탄생했다. 멤버 9명 전원이 일본인이며, 한국식 트레이닝 과정을 거친 것이 특징이다. 12월 2일 정식 데뷔한 니쥬는 단 29일 만에 일본의 대표적 연말 프로그램 ‘홍백가합전’에 입성, 역대 최단기 출연기록을 세웠다. 이 외에도 일본 여가수 최초 1억 스트리밍 돌파, 일본 걸그룹 사상 ‘데뷔 싱글 첫 주 매출’ 역대 2위 등 각종 기록을 새로 쓰고 있는 중이다.
하세가와 저널리스트는 니쥬의 성공을 예로 들며 “케이팝이 현지 특성에 맞춘 전략으로 한층 진화해가고 있다”고 언급했다. “케이팝의 프로듀싱 능력과 일본인 멤버가 결합해 지금까지 일본에 없었던 ‘새로운 차원의 엔터테인먼트 콘텐츠’를 만들어냈다”는 평가다.
흥미롭게도 니쥬를 발굴한 JYP의 수장 박진영도 일본 내 인기가 치솟았다. 그가 오디션에서 건넨 조언들이 ‘명언’으로 화제를 모은 것. 이를 테면 “과정이 결과를 만든다” “태도가 성과를 낳는다” 등이 회자됐다. 일본 경제지 ‘동양경제온라인’은 박진영을 ‘이상적인 상사’라고 칭하며, 그의 리더십을 상세히 파헤치는 기사를 싣기도 했다.
일본 매체 동양경제온라인은 박진영을 이상적인 상사로 보고 그의 리더십을 분석하는 기사를 실었다.
#일본 화제작 TOP10 순위 살펴보니…
한국 드라마의 활약도 빼놓을 수 없다. 특히 ‘사랑의 불시착’은 2020년 일본 유행어 대상 후보에 오를 만큼 신드롬을 일으켰다. 얼마 전 넷플릭스 일본법인은 2020년 일본에서 가장 화제가 됐던 작품 TOP10을 발표했다. 사랑의 불시착과 이태원 클라쓰가 각각 1, 2위를 차지했으며, 사이코지만 괜찮아(6위), 청춘기록(8위), 김비서가 왜 그럴까(9위)도 순위에 올랐다. TOP10 절반을 무려 한국 드라마가 차지한 것이다. 반면 일본 드라마는 한 편도 들지 못했다.
현지 매체 ‘닛케이크로스트렌드’는 “밀레니엄 세대가 선호하는 넷플릭스라는 플랫폼을 통해 한국 드라마 팬층이 넓어졌다”고 분석했다. ‘겨울연가’로 대표되는 제1차 한류 붐 때는 중장년층 여성이 중심이었지만, 지금은 젊은 층을 비롯해 남성들까지도 한국 드라마를 시청한다. 자료에 의하면, 2020년 일본 넷플릭스 한국 드라마 시청률은 전년도에 비해 6배 이상 성장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류 잡지 수석 편집자 다카하시 나오코는 “넷플릭스가 한국 드라마에 날개를 달아줬다”고 표현했다. 물론 작품 자체의 퀄리티도 뛰어나지만, “코로나19 대유행에 따른 외출 자제로 넷플릭스 가입자가 급증한 것이 컸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사랑의 불시착과 이태원 클라쓰가 일본에서 본격적으로 히트하기 시작한 것은 일본 정부가 긴급사태를 선언한 4월 중순이었다. 당시 SNS에는 “코로나 블루(우울증)를 한국 드라마를 보며 이겨내고 있다”는 글들이 많이 올라왔다.
#한류 콘텐츠 으뜸패는 ‘기생충’
하세가와 저널리스트는 “한류 콘텐츠가 세계적으로 평가받는 데는 영화 ‘기생충’이 결정적인 한 수였다”고 말한다. 기생충은 2020년 아카데미에서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국제장편영화상’ 등 4관왕을 석권했다. 하세가와 저널리스트는 “기생충을 계기로 한류 콘텐츠를 접하고, 한국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 늘어났다”고 덧붙였다.
일본 내 기생충의 흥행 수입은 45억 엔(약 476억 원)을 넘어서며, 역대 한국영화 최고기록을 갈아치웠다. 미국 박스오피스모조(Box Office Mojo) 조사에 의하면 “기생충의 글로벌 수익은 2억 5737만 달러(약 2800억 원)에 이른다”고 한다.
영화 ‘기생충 열풍’은 즉각 긍정적인 효과를 불러왔다. 넷플릭스 아시아·태평양지역 부사장 토니 자메츠코프스키는 “기생충이 성공함에 따라 아시아 콘텐츠에 대한 수요가 매우 높아지고 있다”고 전했다. 아울러 “넷플릭스가 아시아 지역에서만 200편의 오리지널 작품을 투자했으며, 그중 70편은 한국어 타이틀”이라는 사실도 밝혔다.
일본에서 2020년 넷플릭스 화제작 1위에 오른 ‘사랑의 불시착’.
#한국 드라마 수출은 일본의 8배
최근 도쿄신문은 ‘한류 마케팅 전략에 주목하자’는 취지의 사설을 실었다. 신문은 “한국 드라마 제작사들은 넷플릭스와 장기 계약해 오리지널 드라마를 제작할 뿐 아니라 자국에서 방송 직후 곧바로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에 방영한다”면서 이러한 마케팅 전략을 높이 샀다.
또한 “빈부격차, 성차별 등 사회 문제를 과감하게 도입함으로써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고, 정부 산하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매년 극본 공모를 실시해 거국적으로 신인 발굴에 노력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 결과 “한국 드라마의 수출 실적은 2018년 연간 2억 4000만 달러(약 2608억 원)가 돼 일본의 8배로 성장했다”는 것이다. 신문은 “일본 역시 콘텐츠를 세계에 확산시키기 위해 더 노력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일본의 유명 극작가 히라타 오리자는 “한국 영화와 드라마의 특징은 조연까지도 연기를 두루두루 잘한다”는 점을 꼽았다. 그는 “한국의 경우 국가차원에서도 문화예술을 적극 후원하고 있다”며 “GDP(국내총생산) 대비 문화예산이 일본의 약 10배”라고 했다. “예산 면에서는 한국이 프랑스를 제치고 세계 제일의 문화대국”이라는 설명이다.
‘닛케이크로스트렌드’는 “한국에서 탄생한 세로 스크롤 방식의 ‘웹툰’도 주목할 만하다”고 소개했다. “위에서 아래로 스크롤을 내려가며 보는 웹툰은 스마트폰에 최적화된 데다 가독성이 높아 일본에서도 한국의 웹툰 인기가 상승하고 있다”는 것이다. 매체는 “한류 붐은 일본에 도래할 때마다 한층 진화하고 타깃층을 넓혀가고 있다”면서 “당분간 한국 엔터테인먼트 총공세가 멈추지 않을 것 같다”고 전망했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