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신강림’ 훠궈 PPL 등 중국 자본 이미 깊숙이 개입…넷플릭스 이어 애플·디즈니 한류 콘텐츠 확보전
올해는 이런 분위기가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한류 콘텐츠에 외국 자본이 들어오고, 아예 한국에 터를 잡으려는 온라인 동영상 스트리밍서비스(Over The Top·OTT) 업체들의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 상황 속에서 과연 한류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까.
2020년 초 영화 ‘사냥의 시간’이 극장이 아닌 넷플릭스 최초 공개를 결정한 이후, 배우 박신혜 주연작인 ‘콜’도 결국 넷플릭스 행을 택했다. 여기에 200억 원이 넘는 제작비가 투입된 대작인 송중기 주연 ‘승리호’마저 넷플릭스 공개를 결정했다. 사진=영화 ‘사냥의 시간’ 홍보 스틸 컷
#한류, 돈에 팔린다?
‘메이드 인 코리아’라는 의미를 포함한다고 해서 한류 콘텐츠를 애국주의적 관점으로 바라봐서는 안 된다. 이는 명백히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들이 산파 역할을 하는 콘텐츠이기 때문에 상업논리에 좌지우지될 수밖에 없다.
2020년 코로나19의 가장 큰 타격을 입은 업계는 충무로였다. 한 자리에 많은 인원이 몰리는 것을 꺼리는 이들이 극장을 기피했고, 이런 흐름 속에 신작 개봉도 미뤄졌다. 이로 인해 돈 주고 볼만한 영화가 없으니 관객이 더욱 줄어드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출구는 넷플릭스였다. 2020년 초 영화 ‘사냥의 시간’이 극장이 아닌 넷플릭스 최초 공개를 결정한 이후, 배우 박신혜 주연작인 ‘콜’도 결국 넷플릭스 행을 택했다. 여기에 200억 원이 넘는 제작비가 투입된 대작인 송중기 주연 ‘승리호’마저 넷플릭스 공개로 방향을 급선회하며 극장가는 큰 충격에 빠졌다. 이 영화는 2월 5일 넷플릭스 이용자들과 만난다. 이 콘텐츠 수급이 성공을 거두면 넷플릭스는 향후 더욱 공격적으로 한류 콘텐츠를 흡수할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 자본을 뜻하는 ‘차이나 머니’도 한류 콘텐츠 깊숙이 들어오고 있다. 단순히 한류 콘텐츠를 수입하고 제작비를 보태 지분을 챙기는 수준을 넘어 PPL(제품간접광고)로도 중국 제품들이 배치되는 모양새다.
1월 6일 방송된 케이블채널 tvN 드라마 ‘여신강림’에는 주연 배우들이 중국산 훠궈를 먹는 장면이 삽입됐다. 중국어가 표기된 제품이 노출된 터라 시청자들이 이질감을 느낄 법한 장면이었다. 특히 한국의 고등학생들이 한국 편의점에서 중국의 인스턴트 훠궈를 먹는 모습이 현실과는 동떨어지기 때문. 이는 중국 식품 브랜드와 전자상거래 업체 등이 이 드라마에 투자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업체들이 이런 식으로 차이나 머니를 활용하는 이유는 ‘한한령’(한류수입제한령) 때문이다. 한한령 이후 여전히 중국 방송에서는 한국 드라마를 틀지 못하고 있다. 결국 유명 한류스타들이 출연하는 드라마에 간접광고를 넣은 뒤 이 드라마가 넷플릭스 등을 통해 세계 전역에 공개되면 이로 인한 홍보 효과를 노리겠다는 계산이다.
한 중견 드라마 제작사 대표는 “코로나19로 인해 국내 기업들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그만큼 홍보·마케팅 비용을 줄였기 때문에 국내에서 PPL 수급하는 게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며 “결국 한류 콘텐츠에 관심이 많은 외국 자본을 적극적으로 유치할 수밖에 없는데, 중국어권에서 한류 소비량이 높은 만큼 차이나 머니가 많이 유입되고 있고, 제작사 입장에서는 이를 거절할 수도 없고 거절할 이유도 없다”고 말했다.
넷플릭스는 배우 주지훈과 현빈, 박서준이 각각 출연한 ‘킹덤’과 ‘사랑의 불시착’(사진), ‘이태원 클라쓰’ 등 K-콘텐츠 효과를 톡톡히 봤다. 사진=tvN ‘사랑의 불시착’ 홈페이지
#한국, 공룡 OTT의 격전지?
넷플릭스는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던 2020년 가장 큰 성장세를 보인 기업으로 손꼽힌다. 특히 넷플릭스는 배우 주지훈, 현빈, 박서준이 각각 출연한 ‘킹덤’, ‘사랑의 불시착’, ‘이태원 클라쓰’ 등 K-콘텐츠 효과를 톡톡히 봤다. ‘킹덤’은 전 세계에 K-좀비 열풍을 일으켰고, ‘사랑의 불시착’은 한국이 아닌 일본 넷플릭스에서도 2020년 가장 많이 본 콘텐츠 1위에 오를 정도로 높은 인기를 구가했다.
그동안 한국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에 약 7700억 원을 투자한 넷플릭스는 올해 더 기운을 쏟는다. 경기 파주시 및 연천군에 있는 콘텐츠 스튜디오와 임대차 계약을 체결했다. 1만 6000㎡(약 4840평) 규모로 9곳의 촬영장이 위치하고 있다. 한국에서 리메이크되는 넷플릭스 히트작 ‘종이의 집’의 한국판도 이곳에서 촬영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넷플릭스 측은 “스튜디오 임대차 계약은 K 콘텐츠 투자의 연장선이고, 한국 창작 생태계와 장기적인 파트너십을 지속한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밝혔다.
올해는 넷플릭스의 대항마가 될 거대 OTT인 애플TV플러스와 디즈니플러스가 한국 시장에 첫 발을 내디딘다. 애플TV플러스의 경우 대표적 한류스타인 이민호와 정은채, 윤여정 등이 참여하는 드라마 ‘파친코’(Pachinko)를 선보인다. 한국계 미국 작가 이민진이 쓴 동명 소설을 바탕으로 한 드라마를 만들며, 이민호 등을 섭외한 것은 애플TV플러스가 한국 및 아시아 시장에 연착륙하기 위한 복안으로 읽힌다.
‘어벤져스’를 비롯해 ‘겨울왕국’ ‘알라딘’ 등 한국 시장에서 큰 성공을 거둔 콘텐츠로 중무장한 디즈니플러스 역시 현지화 전략의 일환으로 한류 콘텐츠 확보를 위해 팔을 걷어붙일 것으로 예상된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중국산 넷플릭스’라 불리는 아이치이의 저력도 무시할 수 없다. 자본력만 따지고 보면 서양 OTT에 결코 밀리지 않기 때문이다. 아이치이는 이미 배우 전지현 주지훈이 출연하고 ‘킹덤’으로 유명한 김은희 작가가 집필하는 신작 ‘지리산’의 해외 판권을 구매했다. 이 드라마의 제작사는 아이치이에서 받은 판권료만으로 총 제작비 320억 원 가운데 70% 이상을 이미 조달했다고 업계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한 지상파 드라마국 관계자는 “향후 한류스타가 출연하는 오리지널 콘텐츠를 제작하고 확보하려는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이라며 “상대적으로 제작비 한계에 봉착한 올드 매체인 방송사들의 어려움은 더 커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김소리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