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문제에 ‘군사 액션’ 보여 이란 자극…“국방-외교 투트랙 모색했으나 다소 성급” 지적
1월 9일 정부세종청사 공무원들이 호르무즈해협, 페르시아만에 있는 우리 선박들의 위치 등을 모니터링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최영함은 스텔스 기능이 적용된 최첨단 한국형 구축함이다. 4500톤급 구축함으로 2006년 10월 20일 진수됐고, 2008년 4월 취역했다. 최영함은 2011년 1월 21일 역사의 한 페이지에 이름을 남겼다. 소말리아 해적에 납치된 삼호주얼리호를 구출한 이른바 ‘아덴만의 여명 작전’에 참여한 까닭이었다. 최영함은 한국군이 공해상에서 벌인 사상 첫 군사작전을 성공으로 이끌었다. 같은 해 4월엔 한진텐진호 선원 구출 작전에도 참여했다.
10년이 지난 2021년 1월 최영함은 다시 언론에 등장했다. 한국케미호가 이란에 나포된 직후였다. 이란 혁명수비대는 1월 4일 오전(현지시간) “걸프 해역에서 해양 환경 규제를 반복적으로 위반한 한국 국적 선박 한국케미호를 나포했다”고 발표했다. 한국케미호엔 한국 선원 5명과 미얀마인 11명, 인도네시아인 2명, 베트남인 2명 총 20명 선원이 탑승해 있었다.
한국케미호 나포 소식이 알려지자마자 정부는 최영함을 호르무즈 해협으로 급파했다. 부승찬 국방부 대변인은 1월 5일 브리핑에서 “5일 새벽 최영함이 호르무즈 해협 인근에 도착했다”고 알렸다. 최영함이 적진 한가운데로 급파된 가운데, 외교부는 선박 조기 억류 해제를 위한 협상 준비에 돌입했다. 외교부 고경석 아프리카중동국장은 사이드 샤베스타리 주한 이란대사를 초치해 한국케미호에 대한 억류 해제를 요청했다.
최영함이 호르무즈 해협에 도착한 당일 이란 측은 한국케미호 나포와 관련된 입장을 밝혔다. 이란은 자국 해역에서의 해양 오염을 한국케미호 나포 주요 근거로 내세우면서 “우리 자금을 동결한 한국 정부가 인질범”이라고 덧붙였다. 한국 계좌에 묶인 이란 석유 판매 대금 70억 달러에 대한 불만을 표출한 셈이었다. 이 대금은 우리은행과 IBK기업은행에 대 이란 경제제재를 사유로 묶여있다.
1월 6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긴급 간담회에 출석한 최종건 외교부 1차관. 사진=박은숙 기자
이란은 1월 6일 한국 정부 대표단의 이란 방문에 대한 거부 의사를 밝혔다. 이란이 거부 의사를 밝혔지만 한국 정부 대표단은 1월 7일 이란 땅을 밟았다. 1월 10일엔 최종건 외교부 1차관이 이란에 합류해 본격적인 협상을 이어갔다. 협상엔 큰 성과가 없었다. 최 차관과 대표단은 1월 14일 귀국했다.
최 차관은 14일 오후 인천국제공항 제1터미널에서 취재진에 “우리가 해야 할 말을 엄중히 했고 그들의 좌절감을 경청하기도 했다”면서 “하지만 이번 방문에 조기 석방이라는 결과물을 도출하진 못했다”고 했다. 최 차관은 “한국과 이란 양국은 그 결과(조기 석방)를 위한 커다란 걸음을 함께 내디뎠다고 생각한다”면서 “선박과 선원에 대한 이란 정부 조치가 신속히 있을 것이라 믿고 있다”고 덧붙였다. 사실상 빈손 귀국을 인정한 모양새였다.
전직 외교부 관계자는 통화에서 “1월 6일 이란이 한국 정부대표단 방문을 거부했다”면서 “이런 경우엔 두 가지 뜻이 있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너희하고는 더 이상 할 얘기가 없다’는 뜻이거나 ‘얘기를 해봤자 합의를 도출할 여지가 없다’는 의미 둘 중 하나”라면서 “한국 외교부 입장에서는 대표단 파견을 무를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울며 겨자먹기로 이란에 다녀온 것”이라고 했다.
1월 6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이란을 출국한 정부대표단. 사진=연합뉴스
정보기관 한 소식통은 “국정원은 외교부에 이란 정부나 군이 영국·인도네시아 선박을 나포했던 것처럼 우리 선박 역시 나포될 가능성이 있다고 알렸다”면서 “12월부터 조심하라고 했는데 그 일이 진짜로 일어난 것”이라고 했다. 이 소식통은 “상황이 이렇게 되기까지 정부가 이란과 외교조치를 미리 해놓지 않았다”면서 “이번 사태를 둘러싼 정부와 외교부의 실책은 이런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한국과 이란 간 외교전이 활발히 진행되는 가운데 최영함은 호르무즈 해협을 살짝 빠져 나온 자리에서 대기를 이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우두커니 호르무즈 해협 위에 둥둥 떠 있던 최영함은 정부 대표단이 귀국한 지 나흘 뒤인 1월 18일 오만으로 철수했다. 전직 해군 고위 관계자와 안보 관계자들은 최영함 급파 이후 13일에 대해 ‘보여주기식 조치’라는 비판 목소리를 냈다.
익명을 요구한 안보 연구기관 소속 전문가는 “호르무즈 해협에 급파된 최영함이 할 수 있는 게 무엇이냐”고 반문했다. 이 전문가는 “호르무즈 해협은 넓고, 이란군 화력 범위 내에 있는 위험한 위치”라면서 “호르무즈 해협 위 최영함은 거리 위 낙엽 한 장과 다를 바 없다”고 했다. 그는 “혹시라도 이란군이 최영함을 타깃으로 삼을 경우 최영함은 꼼짝없이 당할 수밖에 없는 위치에서 대기를 하고 있었던 것”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결국 정부의 보여주기식 행정이 ‘최영함 급파’라는 웃지 못할 에피소드를 만든 것이다. 최영함을 급파했다고 하면 뭐라도 할 것 같은 뉘앙스를 국민에게 전달할 수 있지 않느냐. 겉보기라도 국민을 안심시키려는 조치로 최영함이 ‘호랑이 입’ 속에 들어갔다 나온 모양새다. 미국 함대도 이란 공격 범위인 호르무즈 해협 안에서 대기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2014년 베트남 호치민에 정박해 있던 최영함. 사진=연합뉴스
전직 해군 고위 관계자는 “사실 우리나라 상선이 타국 영해 안에 잡혀 들어간 것에 대해선 우리 해군이 할 수 있는 게 없다”면서 “그런데 여기서 딜레마인 것은 배가 잡혀갔는데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야 할 군이 아무것도 안하는 것도 애매한 포지션”이라고 했다. 이 관계자는 “정부와 국방부도 딜레마에 빠진 상황에서 일단 호르무즈 해협으로 최영함을 급파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여기서 문제는 굳이 우리 선박을 나포한 이란 쪽에 가서 그들을 자극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라면서 이렇게 말했다.
“2011년 아덴만의 여명 작전처럼 해적이 우리 선박을 납치했으면 가서 군사작전을 펼치면 된다. 그런데 이번 이란의 선박 나포 사건은 국가 대 국가 문제다. 외교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에 해군 전력이 한 척이라도 개입하는 액션이 보이면 이건 이란 입장에서 도발이나 자극으로 해석될 수 있다. 외교로 해결이 안되면 그 다음 군사적 조치가 나와야 하는데, 정부는 국방-외교 투트랙 전략으로 빠르게 사안을 해결하려 했던 흔적이 보인다. 다소 성급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한다.”
한국케미호가 나포된 뒤 한국 정부 대표단은 이란 땅을 밟았고, 해군 최정예인 청해부대 최영함은 이란 앞바다에서 우발 상황을 대비했다. 하지만 한국 정부대표단과 최영함은 모두 빈손으로 이란의 영역을 빠져나와야 했다. 그 가운데 최영함 철수는 외교부 요청에 의해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계 소식통에 따르면 이란은 최영함이 호르무즈 해협에 급파된 것에 대한 불만을 제기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는 호르무즈 해협에 급파된 최영함 존재가 향후 한국과 이란 사이 협상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란 판단 아래 최영함 철수를 결정한 것으로 추정된다. 부승찬 국방부 대변인은 1월 18일 정례 브리핑에서 최영함 작전 내용에 대해서 “공개가 제한된다”고 선을 그었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