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금법 시행 따라 실명계좌 발급 등 요건 갖춰야…‘중소형’ 직격탄 관측, 전문가 “신뢰도 확인 후 거래해야”
지난 1월 7일 가상화폐 대장 격인 비트코인이 사상 처음으로 개당 4천만원을 넘어섰다. 사진은 7일 오전 서울 빗썸 강남센터 암호화폐 시세 현황표. 사진=연합뉴스
특금법은 가상자산 사업자의 범위를 규정하고 자금세탁 방지 등의 의무를 부과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간 통신판매업자에 포함되던 암호화폐 거래소는 가상자산사업자로 분류된다. 암호화폐 거래소는 감독 대상에 포함되지 않아 별도의 허가 없이 운영되었으나, 특금법 시행 이후 오는 9월까지 가상자산사업자 신고를 해야 한다. 다만 이에 대해 금융위원회는 “가상자산사업자에게 자금세탁 방지 의무를 부과하는 것일 뿐, 제도화는 아니다”고 선을 긋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행이 CBDC(중앙은행 디지털화폐) 도입을 검토 중인데다, 오는 2022년부터는 가상자산에 대한 과세도 시행되면서 암호화폐의 제도권 편입은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암호화폐 거래를 통해 발생한 연 소득이 250만 원을 넘을 경우 그 초과분에 대해 20% 세율을 적용키로 했다. 2018년 대법원에서 비트코인을 ‘재산적 가치가 있는 무형의 자산’으로 인정하는 판결이 나온 데 이어 과세를 통해 암호화폐의 자산 가치가 법적으로 인정되는 셈이다.
이 같은 움직임 속에 암호화폐 가격은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까지 급등한 이후 등락을 반복 중이다. 대표적으로 비트코인은 지난 1월 8일 4800만 원까지 치솟았다가 지난 11일 3600만 원선까지 가격이 내려앉았다. 이후 가격을 회복하며 현재 4000만 원 안팎을 오가는 중이다. 알트코인(비트코인의 대안으로 도입된 암호화폐)의 대표주자인 이더리움도 지난해 말 이더리움 2.0 출시 이후 급등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 19일에는 장중 1439달러까지 오르며 역대 최고가(1448달러)에 근접하기도 했다.
#특금법발 시장 재편 가능성에 빗썸 몸값 올랐다
암호화폐 시장이 뜨거워지면서 주요 암호화폐 거래소의 몸값도 덩달아 올랐다. 최근 넥슨 지주사 NXC는 국내 거래량 1위 암호화폐 거래소 빗썸 인수를 추진 중이다. 빗썸은 2019년 매각 시도 당시 책정됐던 4000억 원(지분 65%)보다 1000억 원가량 몸값이 뛴 것으로 알려졌다. 빗썸은 김병건 SGBK 회장의 인수 시도 당시 불거진 BXA토큰 투자사기 등에 휘말리며 최대주주 이정훈 빗썸코리아 의장이 고소당하는 등 논란을 겪고 있다. 그럼에도 빗썸 몸값이 오른 까닭은 특금법 시행 이후 빗썸을 비롯한 대형사 4곳을 중심으로 암호화폐 거래소 시장 재편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특금법 개정안에 따르면 가상자산 사업자 신고를 위해서는 ISMS(정보보호관리체계) 인증과 실명확인 입출금 계좌 발급 등의 요건이 갖춰져야 한다. 가상자산 거래 시 실명확인 입출금 계정을 통해 금융거래를 진행해야 하고, 한국인터넷진흥원으로부터 정보보호관리체계 인증을 획득해야 하는 것. 중소형 가상화폐 거래소들은 이 두 가지 요건만으로도 존폐를 논하게 됐다.
블록체인 기술사 헥슬란트와 법무법인 태평양은 공동 발간한 보고서를 통해 “ISMS 최종 인증서 발급까지 12~13개월의 시간과 2억 원의 비용이 소요된다”고 분석했다. 이어 “ISMS 인증의 행정적, 재정상의 부담 때문에 한국에서 창업하거나 한국으로 사업을 이전하려는 기업들에게 큰 장애물이 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한국인터넷진흥원의 업무현황에 따르면 2019년 8월말 기준 ISMS 인증을 획득한 가상화폐 거래소는 △빗썸 △업비트 △코빗 △코인원 △고팍스 △한빗코 △JetFinex 등 7곳에 불과하다.
업계에서는 은행으로부터 실명 계좌를 발급받는 것에 대한 어려움도 호소한다. 은행이 주관적 판단에 따라 보수적으로 실명계좌를 발급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현재 은행과 계약을 맺고 실명계좌를 발급받은 거래소는 업비트와 빗썸, 코인원, 코빗 등 네 곳에 불과하다. 최지혜 헥슬란트 수석연구원은 “중소형 거래소라 하더라도 ISMS 인증을 받기 위해 신청해놨거나, 이미 인증을 받은 추세이지만 아직 실명계좌를 획득하지 못한 거래소가 많다”며 “특금법 시행령 수정안이 나온 이후 은행들이 어떻게 평가기준을 세울지 주목해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코인빗은 자체적으로 발행한 코인 ‘판테온’ 프로젝트가 논란에 휩싸이며 투자자들로부터 피소 당했다. 사진은 판테온 홈페이지 캡처
#거래소 옥석가리기 ‘현재진행형’
금융당국은 소비자 보호 차원에서 이 같은 규제를 강행하고 있다. 2017년 암호화폐 열풍으로 암호화폐공개(ICO) 붐이 일면서 금융당국이 정확한 숫자를 파악하기 어려울 정도로 암호화폐 거래소가 우후죽순 생겨난 탓이다.
이미 지난해까지 여러 중소형 암호화폐 거래소가 영업을 종료했고, 일부 거래소에서는 갑작스러운 영업 중단에 따라 투자자들이 투자금을 잃는 등 피해 사례도 발생했다. 코인제스트는 1년이 넘게 출금 정지·지연 문제가 불거지다 지난 8월부터 원화 출금이 중단됐고 이후 거래소 시스템 자체를 이용할 수 없게 됐다. 코인네스트의 경우 대표가 긴급 체포된 지 1년 2개월여 만인 2019년 6월 30일부로 서비스를 종료했다. 코인네스트 대표는 암호화폐 상장 대가로 비트코인 등을 받은 혐의로 지난 1월 14일 실형을 선고받았다.
거래소가 정상적으로 운영되고 있지만 투자자들과 갈등을 빚고 있는 거래소도 있다. 코인빗은 2019년 9월 자체적으로 발행한 코인 ‘판테온’ 프로젝트가 논란에 휩싸이며 투자자들로부터 피소 당했다. 투자자들에 따르면 코인빗은 판테온 투자유치를 위해 해외거래소 상장, 월간 이벤트 등을 약속했지만 상당수가 지켜지지 않았다. 반면 코인빗은 2020년 11월 21일 공지를 통해 “특금법 및 세법개정안에 따라 판테온 프로젝트 핵심인 배당을 지속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며 “새로운 판테온 프로젝트를 선보이기 위한 리메이크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처럼 혼탁한 암호화폐 거래소 시장의 ‘옥석가리기’는 본격화됐다. 올해 특금법 시행 전후로 중소형 거래소들의 폐업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일부 거래소는 특금법 시행을 앞두고 폐업 전 투자자보호에 대한 책임 없이 무분별하게 상장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어 투자자들의 유의도 필요하다.
앞서의 최지혜 수석연구원은 “거래소들이 오는 9월 유예기간까지 요건을 취득하려 노력 중”이라며 “실명계좌를 발급받지 못하는 소형 거래소의 경우 크립토 대 크립토 교환 등 교환소의 역할을 하는 방식으로 비즈니스 형태를 바꿀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이어 투자자들에 대해서는 “증권시장과 달리 거래소마다 상장·관리하는 프로젝트가 다르기 때문에 인지도 있는 신뢰할 만한 거래소에서 거래를 시작하는 것이 좋다”고 전했다.
여다정 기자 yrosad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