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주요 주주사 입김 작용 등 추측 무성…인터넷은행 삼파전 예고 속 경영 공백 우려
이문환 케이뱅크 행장이 지난 7일 갑작스럽게 사의를 표하면서 케이뱅크 안팎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이문환 케이뱅크 행장이 지난 2020년 6월 8일 오후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디지털&비대면 활용, 스마트 보증 도입을 위한 인터넷은행-신용보증재단중앙회 업무협약식에서 인사말을 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그러나 케이뱅크는 갈 길이 멀다. 추가 증자와 손익분기점 달성 등이 당면 과제다. 케이뱅크는 지난 12월 투자 유치 주관사를 선정하고 추가 투자 유치에 고삐를 죄던 상황이다. 수장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케이뱅크 측은 이문환 행장 사임에 대해 “일신상의 이유”라며 말을 아끼고 있다. 케이뱅크 직원들 사이에서도 풍문만 무성할 뿐 정확한 이유가 알려지지 않았다.
업계에서는 이 행장의 사임을 두고 다양한 추측이 나온다. 가장 크게 힘을 얻고 있는 것은 구현모 KT 대표의 의중이 반영됐다는 분석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업계에서는 케이뱅크 행장을 KT 경영진과 합이 잘 맞는 사람으로 바꾸려고 한다는 이야기가 있다”며 “이 행장과 KT에서 넘어온 임원들 간 작은 마찰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고 전했다.
이 행장은 1989년 KT에 입사해 BC카드 대표이사 사장을 지내고 케이뱅크 행장으로 취임한 ‘KT맨’이다. 그는 지난해 3월 구현모 대표와 같은 시기 행장에 올랐다. 앞서 구 대표가 내정된 상황이긴 했지만 황창규 전 KT 회장의 의중이 담긴 인사였을 가능성이 높다. 실제 이 행장은 황창규 회장의 신임을 업고 승진가도를 달려 BC카드에 부임할 당시 ‘황 회장의 특사’로 불린 데다, 2019년 말에는 KT 차기 최고경영자 인선 레이스에서 구 대표와 함께 사내후보자로 거론되기도 했다.
반면 일각에서는 KT나 BC카드 이외에 다른 주주의 입김으로 이 행장이 ‘컷’ 됐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케이뱅크는 최대주주인 BC카드 외에도 우리은행(26.2%)과 NH투자증권(10%) 등의 주요주주와 GS리테일, 다날, KG이니시스 등 주주 구성이 다양하다. 우리은행 등은 경영에 참여하지 않는 재무적 투자자로서 이사회에 들어가 있지 않지만, 현재 이문환 행장의 공백은 우리은행 출신 정운기 케이뱅크 부행장이 메우고 있다. 케이뱅크의 이사회에는 이 행장과 정운기 부행장, 박대영 NH투자증권 인재원장이 사내이사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사외이사로는 윤보현 전 KG이니시스 대표와 최승남 전 우리금융지주 부사장 등 7인이 있다.
주주사들은 지난해 이문환 행장 취임 당시 연이은 KT 출신 인사에 따른 불만을 표출한 바 있다. 전문성이 부족한 KT 측 인사 탓에 케이뱅크가 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불만이었다. 더구나 이 행장은 앞서 몸담았던 BC카드에서 ‘구원투수’로 등판했지만 실적 부진을 해소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BC카드는 2018년 영업이익 1457억 원으로 전년 대비 29.5% 감소했고, 2019년 상반기에도 영업이익 858억 원으로 전년 대비 8.53% 감소했다. 2019년 상반기 당기순이익은 11% 가량 늘었으나 이는 해외법인 지분 매각에 따른 일회성 요인이 작용한 탓이다.
그러나 이문환 행장이 케이뱅크에서 성과를 보인 만큼, 실적 부진에 따른 사임이라는 추측은 무리가 있어 보인다. 실제 BC카드를 중심으로 한 유상증자가 완료되면서 회사가 안정화됐기 때문이다. 이 행장은 지난해 8월 취임 후 첫 기자간담회에 “지난 3년 여간 이뤄온 주요 성과를 연말까지 두 배 이상 성장시키겠다”며 자신감을 보이기도 했다.
케이뱅크는 당장 올해 하반기 예상되는 인터넷전문은행 삼파전에서 생존 방안을 마련해야 하는 만큼, 발 빠르게 경영 공백을 채워야 한다. 사진=연합뉴스
케이뱅크는 발 빠르게 경영 공백을 채워야 하는 숙제를 안게 됐다. 당장 올해 하반기 예상되는 인터넷전문은행 삼파전에서 생존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오는 7월 출범을 앞둔 토스뱅크의 경우, 신용카드업 진출을 함께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방안이 순조롭게 진행된다면 최초의 신용카드 겸업 인터넷전문은행으로 출범과 동시에 존재감을 굳히게 된다. 금융위원회가 지난 12월 여신전문금융업법 시행령 개정안 입법예고를 통해 ‘은행 등 신용카드 겸영 시 허가 요건 합리화’를 위해 대주주 요건을 완화하겠다고 밝힌 것도 토스뱅크의 신용카드업 진출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토스뱅크 관계자는 “1월 중순 본인가 신청을 할 예정”이라며 “신용카드업은 여러 사업 아이템 중 하나로 검토 중이고, 아직 정해진 바는 없다”고 전했다.
반면 케이뱅크의 스텝은 더디다. KT의 2020년 3분기 IR자료를 보면 케이뱅크 중장기 로드맵으로 오는 2022년 흑자전환, 2023년 IPO가 계획된 상황이다. 지난해 3분기 기준 당기순손실 703억 원을 기록, 전년 동기(742억 원)와 비교해 손실이 39억 원 감소하는 수준에 그쳤다.
지난해 8월 공개했던 청사진이 이문환 행장 중심으로 추진됐다는 점에서 자칫 추진 동력 상실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당시 이 행장은 “플랫폼을 중심으로 한 카카오뱅크와는 달리 다양한 주주사와의 시너지를 통해 경쟁력을 확대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다수 주주사들은 이 행장의 사임 소식마저 사전에 파악하지 못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케이뱅크 관계자는 “지난 8일부터 임원후보추천위원회를 본격 가동하고 있고, 차기 행장 선임 작업을 신속하게 진행하고 있어 빠르면 이달 내로 선임할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정운기 부행장 대행체제로 전환해 정상적으로 운영되고 있고, 중장기 로드맵 또한 차질이 없을 것”이라며 경영 공백에 대한 일각의 우려를 불식했다.
여다정 기자 yrosad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