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사에서 플랫폼사로 도약 ‘묘수’…넥슨은 디지털 금융 진출 가능성도
넥슨과 엔씨소프트 등 게임사들이 암호화폐 거래소 빗썸 인수 후보군으로 꼽히고 있다. 경기도 성남시 넥슨 판교본사 전경. 사진=일요신문DB
암호화폐 거래소 인수전에 유난히 게임사들이 많이 언급되는 까닭은 게임사들이 대부분 블록체인과 이를 기반으로 한 암호화폐에 관심이 많기 때문이다. 가장 대표적인 곳은 위메이드다. 위메이드는 블록체인 자회사 위메이드트리가 만든 자체 암호화폐 ‘위믹스 토큰’을 최근 암호화폐 거래소 빗썸과 비키에 연달아 상장시켰고, 지난 12월 블록체인 게임 1개를 해외 150여 개국에 출시했다. 카카오게임즈도 12월 블록체인 게임 개발업체 웨이투빗에 추가 투자해 최대주주가 됐다.
넷마블은 카카오의 블록체인 자회사 그라운드X가 개발한 블록체인 플랫폼 ‘클레이튼’에 대한 의사결정을 담당하는 ‘거버넌스 카운슬(거버넌스)’에 참여 중이며, 2018년 사업목적으로 블록체인과 관련 연구개발업을 추가했다. 클레이튼은 지난해 디지털 자산관리 지갑 ‘클립’을 선보였다. 클레이튼 거버넌스에는 넷마블 외에도 펄어비스와 카카오게임즈 등이 포함돼 있다.
다른 게임사들과 달리 넥슨은 아예 거래소 자체를 사들여 눈길을 끈다. 김정주 대표는 2017년 국내 최초 암호화폐 거래소 코빗, 2018년 유럽 암호화폐 거래소 비트스탬프를 인수했고, 지난해엔 디지털 자산거래 플랫폼 아퀴스도 설립했다. 이들 거래소와 관련해 아직 눈에 띄는 성과는 없지만, 거래량으로 국내 1위인 빗썸을 더하면 넥슨의 암호화폐 시장 장악력은 막강해질 수 있다.
게임업계의 이 같은 행보의 배경에는 디지털 자산의 급성장이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비대면 서비스가 급증하고 디지털이 선호되면서 기존 아날로그 금융에서 디지털 금융으로 변화 속도가 빨라졌다. 그러는 도중 실물경기 침체에도 각국 정부가 지원금을 주다 보니 자산 유동성이 늘면서 주식과 채권의 변동성이 커져 암호화폐가 오히려 안전성 있는 자산으로 떠올랐다. 아울러 게임에 블록체인과 이를 기반으로 한 암호화폐 기술을 접목하면 보안성과 가상자산에 대한 영속성을 확보할 수 있다. 단순 게임사가 아닌 게임 기반 플랫폼사로 성장할 수 있는 것이다.
최화인 블록체인 테크 에반젤리스트(기술 전파자)는 “코로나19 사태에서 전 세계 자산 유동성이 증가하는데 실질가치는 하락하니까 대체상품으로 투자 방향이 이동하고, 그중 하나로 암호화폐가 뜨고 있다”며 “게임사들이 암호화폐 거래소를 인수하려는 것은 단순 게임사에서 게임 기반 플랫폼으로 확장하려는 것으로 지금은 단순히 게임아이템 판매만 하지만 플랫폼 기업이 되면 코인을 발행해서 게임 관련 캐릭터상품 구매나 테마파크 이용, 프로게이머 사인회나 경기관람권 구매 및 예약을 비롯해 다양한 서비스 제공이 가능할 것”이라고 했다.
게임업계 관계자는 “게임서비스를 종료하면 보통 게임머니 등 디지털 자산이 없어지는데, 블록체인화하면 블록체인 지갑 안에 넣어 유지하거나 다른 게임에서 사용할 수 있다”며 “데이터가 손상돼도 빠르게 복구할 수 있고 해킹을 방지하는 등 보안성도 철저하다”고 전했다.
가장 유력한 인수후보로 꼽히는 넥슨에 대해서는 디지털 금융시장에 진출할 가능성도 언급된다. 최화인 에반젤리스트는 “넥슨이 코빗과 비트스탬프에 이어 빗썸에도 관심을 갖는 것은 게임플랫폼 내 거래에 디지털화폐를 쓰기 위해서만은 아닌 듯하다”며 “디지털 금융시장에서 다양한 시도를 하기 위한 계획 아래 진행되고 있다고 보는 게 더 정확하다. 예컨대 고가 게임아이템을 담보로 대출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게임사들의 암호화폐 행보에 대해 다양한 분석이 나온다. 게임 분야 접목, 캐시카우 확보, 디지털 금융 진출 등이다. 서울 강남구 소재 가상화폐 빗썸 거래소. 사진=일요신문DB
일부에서는 블록체인 사업 자체가 투자를 유치하거나 자사 주가를 끌어올리기 위한 용도로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게임업계가 개발 중인 블록체인 기술의 전문성과 활용도가 검증된 바 없다는 이유에서다.
최화인 에반젤리스트는 “게임업계가 블록체인과 암호화폐 기술에 기대하는 보안성이나 자산 영속성 등이 실제 서비스에도 적용할 수 있는 수준으로 기술이 발달하지 못했다”며 “블록체인을 도입하겠다는 게임사는 많은데 실제 얼마만큼의 기술을 확보했으며 활용하고 있는지 정확하게 파악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오히려 블록체인 기술을 도입하겠다는 계획이 하나의 투자 포인트나 주가를 끌어올리는 수단으로 활용될 가능성도 적지 않다”며 “암호화폐까지 내걸면 실질적으로 불록체인 기술과 아무 관련 없는 코인을 발행해 사기성 유사수신, 다단계를 판매하는 세력도 나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넥슨의 경우 빗썸을 인수하더라도 당장은 캐시카우에 그칠 것이란 의견이 있다. 한 증권사 게임담당 애널리스트는 “거래소는 블록체인 기술을 가진 기업이 아니기에 블록체인 기술업체를 인수하는 것과 암호화폐 거래소를 인수하는 건 다르다”며 “두나무가 업비트 개설 후 이익이 크게 늘었듯, 빗썸은 국내 1위 거래소이고 한국에서 비트코인 투자를 많이 하기에 캐시카우가 될 수 있다”고 했다.
반론도 있다. 최화인 에반젤리스트는 “실제로 수익이 나는 거래소는 많지 않다”며 “김정주 대표가 코빗과 비트스탬프 등 거래소들을 인수하는 이유는 당장의 수익성보다 디지털 자산을 다루는 노하우를 취득하려는 차원으로 보이며, 궁극적으로는 게임에 국한하지 않은 디지털 자산 플랫폼을 구상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NXC 측은 “빗썸 인수와 관련해 확인해드릴 내용이 없다”고 했다. 기존 코빗과 비트스탬프 인수에 대해서는 “미래 먹거리 산업이나 교육, 핀테크 등 다양하게 투자하고 있다”며 “암호화폐는 그중 하나로, 코빗이나 비트스탬프 인수는 가능성 있는 디지털 자산사업으로 투자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예린 기자 yeap1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