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지-설기현 주고 받은 동해안 더비…서정원 수원 이적에 ‘유니폼 화형식’
지난 1년간 울산 주장을 맡은 신진호(왼쪽)는 이번 시즌을 앞두고 라이벌팀 포항 유니폼을 입게 됐다.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신진호 이적으로 더욱 뜨거워질 동해안 더비
신진호는 포항 유스팀에서 성장, 포항에서 프로 무대에 데뷔한 선수다. 이번 이적이 ‘친정 복귀’로 불리기도 했다. 그럼에도 팀의 주장이 최대 라이벌팀 유니폼을 입는 모습에 다수 울산팬은 분노를 표현했다. 선수를 받는 입장인 포항팬들도 언짢은 기분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만큼 동해안 더비는 오랜 기간에 걸쳐 숱한 명경기를 만들어내며 두 팀의 라이벌 의식을 키워왔던 것이다.
영남지역에 자리 잡은 두 구단 간 미묘한 감정이 생기기 시작한 것은 1998시즌 플레이오프다. 포항이 1차전에서 승리를 거두고 2차전 스코어 1-1에서 울산의 프리킥 때 울산 골키퍼 김병지가 공격에 가담, 골을 넣었다. 이어진 승부차기에서 울산이 승리하며 다음 라운드로 진출했다. 이때 플레이오프는 김병지의 극적인 골뿐 아니라 포항이 3-2로 승리한 1차전 역시 명승부를 펼쳐 많은 이들의 머릿속에 강한 인상을 남겼다.
이후 2013시즌 양팀은 또 다시 중요한 길목에서 만났다. 리그 최종전에서 상대한 이들은 반드시 승리가 필요했다. 근소한 차이로 리그 1, 2위에 올라 승리하는 팀이 리그 우승을 가져갈 수 있기 때문이다. 당시 울산이 앞서가다 후반 추가시간 터진 골로 포항이 극적으로 우승컵을 가져갔다. 다잡은 우승을 눈앞에서 놓친 울산팬들은 관중석에서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유사한 상황이 2019년에도 반복됐다. 2013년과 마찬가지로 리그 최종전, 이번 역시 울산이 리그 선두를 달리며 경쟁자 전북 현대를 따돌리고 우승이 유력한 상황이었다. 최종전에서 포항을 만난 울산은 비기기만 해도 우승을 거머쥘 수 있었지만 1-4 대패를 당하며 다시 한 번 무너졌다. 울산과 포항은 이처럼 뜨거운 스토리를 만들어온 라이벌이었다.
그러나 두 팀 사이에서 선수 이적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라이벌 의식에 불을 지핀 김병지는 1998년의 골 이후 2001시즌을 앞두고 포항 유니폼을 입었다. 김병지를 보낸 울산은 이후 한동안 포항을 상대로 좀처럼 승리하지 못하며 ‘김병지의 저주’에 걸렸다는 말이 흘러나오기도 했다.
반대로 설기현은 포항에서 울산으로 이적한 스타다. 오랜 해외생활 끝에 포항 품에 안기며 K리그에 첫 선을 보였던 설기현은 불과 1년 만에 울산으로 떠났다. 이 같은 행보에 포항팬들은 선수단에서 열어줬던 설기현의 생일파티 비용까지 포함된 대형 ‘대금 청구서’를 경기장에 보란 듯이 내걸기도 했다.
2021시즌 동해안 더비에 더욱 눈길이 가는 이유는 선수 이적 때문만이 아니다. 이번 시즌을 앞두고 울산 지휘봉을 잡은 사람이 ‘포항 레전드’로 불리는 홍명보 감독이기 때문이다. 홍 감독은 선수 시절 포항에서 프로 선수로 데뷔, K리그에서는 포항 한 팀에서만 활약했다. K리그 우승, MVP 수상 등 화려한 이력을 남겼다. 하지만 K리그 사령탑 데뷔는 울산에서 해 이목을 끈다.
FC 서울의 상징과 같던 데얀은 2018시즌 수원 삼성으로 이적하며 팬들에게 충격을 안겼다.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선수 이적이 적대심에 불 지핀 ‘슈퍼매치’
라이벌팀 간 이적은 축구계에서 종종 발생하는 일이다. 대표적인 예로 2018년 1월 외국인 공격수 데얀의 이적은 큰 파장을 일으켰다. ‘슈퍼매치’로 불리는 경쟁자 관계를 형성한 FC 서울과 수원 삼성 사이의 이적이었기 때문이다.
데얀은 서울에서 8시즌을 활약한 팀의 상징과 같은 선수였다. 리그 내 정상급 활약으로 2013시즌 이후 거액의 연봉을 보장받고 중국으로 떠났지만 2016시즌을 앞두고 서울로 돌아오는 ‘의리’를 보였다. 복귀 이후에도 변함없는 기량을 과시하던 데얀은 돌연 수원행을 선택했다. 서울팬들이 서운한 감정을 표출한 것은 당연했다.
데얀의 이적에 1년 앞서 미드필더 이상호는 수원에서 서울로 이적해 라이벌 관계를 뜨겁게 만들었다. 이상호는 수원 시절 온라인상에서 서울에 대한 과격한 언사로 서울팬들로부터 미움을 받던 인물이었기에 이적 당시 환영조차 받지 못했다. 하지만 이적 이후 첫 경기, 거짓말처럼 친정팀 수원을 상대했고 골까지 기록해 반전을 만들었다.
불꽃 튀는 서울-수원의 특별한 관계의 시작이 다름 아닌 선수 이적이었다. 서울의 전신 안양에서 활약하던 서정원이 프랑스 무대에 진출했다가 복귀 팀으로 안양이 아닌 수원을 선택한 것이다. 당시 안양팬들은 서정원의 유니폼을 불태우며 분노를 표출했다. 이후부터 양팀 간 라이벌 의식이 성장해왔다.
토트넘은 크리스마스에도 붉은색 옷을 입지 않을 정도로 아스널에 적대심을 가지고 있다. 과거 토트넘 출신 솔 캠벨의 아스널 이적은 팬들에게 큰 상처를 안겼다. 사진=토트넘 페이스북
축구의 본고장 유럽에서도 신진호, 데얀과 같은 사례가 적지 않다. 신진호는 이번 이적으로 일부에서 ‘신멜스’로 불리고 있다. 독일 수비수 마츠 훔멜스의 이름을 본따 별명을 만든 것이다.
훔멜스는 ‘데어 클라시커’로 불리는 바이에른 뮌헨과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의 유니폼을 각각 2회씩 바꿔 입어 화제를 모았다. 뮌헨 아카데미를 거친 훔멜스는 1군에서 자리를 잡지 못했고 도르트문트 이적 이후 세계적 선수로 성장했다. 도르트문트에서 주장까지 맡았지만 더 많은 우승을 경험할 수 있는 뮌헨으로 떠났다. 뮌헨에서 3년간 활약한 훔멜스는 또 다시 도르트문트로 옮겨 지금까지 활약하고 있다. 이적설이 오가던 당시 도르트문트 구단은 그를 ‘배신자’로 부르는 팬들의 격렬한 반대에 부딪혀야 했다.
잉글랜드 수비수 솔 캠벨은 일부에서 심지어 예수를 팔아넘겨 ’배신의 대명사‘로 불리는 ‘유다’로 지탄받기도 했다. 토트넘 홋스퍼에서 어린 시절부터 축구를 시작한 캠벨은 성장을 거듭해 팀의 주장까지 맡았다. 당연히 팬들이 가장 사랑하는 선수 중 한 명이었다. 국가대표를 오가는 기량을 자랑했던 캠벨은 10위권을 오가는 2000년 전후의 토트넘의 성적에 만족하지 못했고 결국 아스널로 이적을 선택했다.
토트넘은 크리스마스에도 빨간색(아스널 상징 색) 산타모자를 쓰지 않을 정도로 양 구단은 원수지간이다. 특히 캠벨의 이적은 단 한 푼의 이적료도 발생하지 않는 자유계약(FA)이었기에 토트넘 팬들을 더욱 분노케 했다. 그는 아스널 이적 이후 원하던 우승컵을 들었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라이벌 간 이적 선수는 루이스 피구다. 피구는 2000년 7월 바르셀로나에서 레알 마드리드로 유니폼을 갈아입었다. 바르셀로나와 레알의 맞대결은 ‘엘 클라시코’라 불릴 만큼 세계 축구에서 가장 치열한 라이벌로 꼽히는 두 팀 간 이적은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당시 세계 최고 기록인 6000만 유로(약 800억 원)의 이적료가 발생한 대형 이적이었다. 바르셀로나 팬들은 자신들의 홈구장을 찾은 피구에게 돼지 머리까지 내던지며 증오감을 표현했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