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이 적극 개입 관리해야…‘박수받을 일’ 특별 취급은 되레 독”
논란이 커지자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은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대통령의 말씀 취지는 입양 활성화를 위한 사전위탁보호제를 말한 것”이라며 해명하기도 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사전위탁보호제가 아동쇼핑을 조장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입양은 한 아이의 인생을 결정하는 과정인 만큼 신중해야 한다. 이런 이유로 누군가는 ‘신중한 판단을 위해 입양 전 위탁제도가 필요하다’고 하고 누군가는 ‘입양이 취소되는 경우 아이가 상처를 받을 수 있다’는 이유로 조심해야 한다고 말한다. 독일 등 일부 유럽 국가에서는 “중단된 위탁이 좌초된 입양보다 낫다”는 인식 하에 시험 양육을 시행하고 있다.
입양 제도의 진짜 문제는 무엇일까. 입양과 아동복지 관련 분야를 오랜 시간 연구해 온 노혜련 숭실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일요신문 인터뷰에서 입양 전 위탁은 반드시 필요하지만 지금과 같아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보완이 필요한 것은 사전위탁보호제뿐만 아니라 입양 제도 전반이라는 날카로운 지적도 함께였다. 노혜련 교수와의 인터뷰는 지난 1월 4일, 19일, 21일 세 차례에 걸쳐 총 4시간 가까이 진행됐다. 답변은 발화자의 의미가 왜곡되지 않도록 일문일답의 형식으로 최대한 원문 그대로를 실었다.
아동인권단체와 미혼모·한부모단체, 입양인단체 등 시민단체 관계자들이 18일 오후 서울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입양 전 친생부모 상담과 아동보호를 입양기관에 맡기는 것을 반대하고 원가정 보호 원칙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대통령의 ‘입양아 교환 발언’, 무엇이 문제였나.
“그 반대로 말씀하셨어야 해요. ‘입양 아동이 입양 부모와 맞지 않을 경우’가 아니라, 입양을 희망하는 가정이 아이를 입양할 수 있는 환경이 되는지와 입양 부모는 사전에 이에 대한 교육을 제대로 받았는지가 입양 절차에서 고려되어야 할 중요 사항이죠. 입양에서 가장 중요한 건 아동이에요.”
―청와대는 ‘사전위탁보호제’ 등 입양 관련 제도를 보완하자는 취지의 발언이었다고 해명했는데.
“사전위탁보호제는 독일과 영국 등 이미 많은 국가에서 시행되고 있는 제도예요. 예비 입양 부모가 실제로 아이와 함께 지내보는, 입양의 가장 마지막 단계죠. 국내에서도 이미 하고 있어요. 차이점이 있다면 외국은 위탁 전에 이루어지는 예비 입양 부모에 대한 자격심사의 요건이 매우 엄격하고 이 결정을 대부분 정부나 공공기관에서 내린다는 겁니다. 우리나라는 달라요. 위탁 결정이 촘촘한 매뉴얼이나 적법한 승인절차 없이 관례적으로 이루어져 왔거든요. 가정법원에서 입양 허가가 나기까지 시간이 걸리니까 그동안 ‘아이를 키워보라’는 식으로 보내지는 일이 적지 않았어요. 실제 입양 가정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한 입양기관의 사회복지사가 ‘어머님 인상이 너무 좋으셔서 믿고 보낸다’며 아이를 보낸 사례도 있었어요. 이런 점들을 보면 지금 시행되고 있는 위탁제에 보완이 필요한 것은 맞습니다.”
―사전위탁보호제가 어떻게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나.
“사전위탁을 논하는 단계에 왔다면 이미 해당 가정에 대한 조사와 부모교육은 사전에 충분히 이뤄졌어야 해요. 위탁을 한다는 건 사실상 입양을 한다는 것과 크게 다를 바가 없거든요. 다음으로 위탁에 대한 절차를 공식적으로 밟고 승인하는 기구가 필요해요. 지금까지는 입양기관이 독단적으로 위탁을 결정해왔어요. 입양 건수에 따라 수수료를 받는 입양기관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가능하면 많은 아동을 입양 보내는 방향으로 일을 진행할 수밖에 없죠. 입양 과정에 기관의 이익이 결부되지 않도록 공공에서 관여를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설령 위탁 이후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이에 대해 제대로 책임지고 대책을 마련할 수 있도록이요. 지금은 문제가 발생해도 그 누구도 책임을 지려고 하지 않잖아요.”
실제로 독일의 경우 아동의 입양과 관련한 모든 서비스를 아동청과 아동청에 의해 설립된 공공 입양기관을 통해 일괄적이고 통일적으로 수행하도록 함으로써 정책의 혼선이나 업무의 분산 등으로 인한 문제가 발생할 여지를 사전에 차단, 아동의 복리보호를 두텁게 하고 있다. 영국에서도 입양은 공공기관이 주도하고 있으며 프랑스 역시 입양 부모의 자격과 관련한 조사는 각 지역의 심의회에 맡기고 있다.
―일각에선 ‘은비 사건’을 두고 사전위탁 기간에 아이가 학대의 사각에 방치될 가능성도 있다고 말하는데(은비는 2016년 대구의 한 가정에 사전위탁 방식으로 인도되었으나 입양 7개월 만에 아동학대로 사망했다).
“은비는 사전위탁제의 피해자가 아니라 애초에 자격이 없는 가정으로 간 것이 문제였어요. 철저한 검증 없이 관례적으로 진행한 사전위탁제도가 초래한 불행이죠. 은비는 4세의 나이에 두 번이나 ‘입양 전 위탁’이 됐고 두 번째 집에서 사망했어요. 위탁 결정 과정이 얼마나 허술했냐면 두 번째 집에는 은비 말고도 6개월 된 남자아이가 같이 갔어요. 입양 아동 두 명이 동시에 한 집으로 간 거예요. 전문적으로는 물론 상식적으로도 있어서는 안 되는 상황이었죠. 더 황당한 것은 은비가 입양 부모에게 학대를 당해 뇌사상태에 빠져 있는데 법원이 이 사실을 모르고 입양 허가를 냈다는 거예요. 기관이 은비 사실을 제대로 알리지 않았던 거죠. 결국 은비는 자신을 학대한 양부의 성으로 장례를 치렀어요. 은비 친모도 아이가 두 번이나 다른 가정에 위탁된 것은 물론 두 번이나 학대 신고를 받은 사실을 전혀 몰랐다고 해요. 아동의 입양을 의뢰하는 순간 친권이 제한되고 아동에 대한 권리는 모두 입양기관으로 이양되기 때문에 이후 아이의 소식은 기관에서 알려주지 않으면 알 도리가 없거든요. 만약 은비의 소식을 알았다면 친모는 어떻게 해서든 아이를 데려가서 키웠을 거라고 했어요.”
―입양을 보내기로 한 부모가 다시 아이를 찾는 경우가 있나.
“사건 이후에 은비랑 같이 입양이 됐던 남자아이는 친모가 다시 데려갔어요. 아이를 입양 보내면 자신이 직접 키우는 것보다 더 나은 환경에서 자랄 수 있을 거라고 믿었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을 깨달은 거죠. 은비 친모도 그랬지만 아이를 입양 보내는 부모들 가운데 상당수는 경제적 이유로 아이를 포기해요. 빈곤만 해결된다면 아이를 다시 키우고 싶어 하는 부모도 많아요. 입양에 앞서서 원가정 보호를 위한 좀 더 적극적인 상담과 지원이 있어야 해요. ‘유엔 아동권리협약’과 ‘국제입양에 관한 헤이그협약’은 모든 아동에게 출신 가정과 출신 국가에서 양육될 수 있는 기회를 최우선적으로 보장해야 한다고 선언하고 있어요. 양육시설이 아이 양육을 위해 국가에서 지원 받는 비용의 일부만이라도 친생부모에게 지원이 됐다면 이들이 아이를 포기했을까요? 어떻게 하면 아이가 부모와 함께 원가정을 유지하면서 살아갈 수 있을지 도움을 준 다음에 입양이라는 선택지를 줘야죠.”
―은비 사건을 보면 ‘사전위탁보호제도가 반드시 필요한가’라는 의문도 드는데.
“필요해요. 입양은 단순히 몇 마디 말로 정리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에요. 아이를 직접 낳은 엄마도 산후 우울증에 걸리는 경우가 있는데 입양은 어떨까요. 아무리 꼼꼼한 준비 과정을 거쳤어도 실제 아이를 키우는 것은 또 다릅니다. 입양 아동을 키우면서 직면하게 되는 이슈와 가족 전체가 경험하게 되는 감정은 너무나 다양해요. 입양 가정이 이러한 어려움을 어떻게 헤쳐 나가는지 적어도 6개월 정도는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면서 필요하면 상담 지원도 함께 해야 하지요. 그렇지만 단순히 ‘아이를 한 번 키워보라는 것’은 절대 아니에요. 사전위탁은 입양 직전의 가장 마지막 단계로 실제 양육을 하면서 겪게 될 문제를 경험하고 대처방법도 찾아가는 시간일 수 있어요. 그러니까 ‘키워봤는데 안되겠어요’가 아니라 ‘아이와 생활해보니 이런 문제가 생겼는데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까’라는 고민을 하는 시기란 말이죠. 직접 낳은 아이와는 다른 어려움을 겪으면서 성장하는 입양아동을 양육하기에 적합하지 못한 입양 부모는 이미 깊이 있는 가정조사와 교육 등을 통해 걸러졌어야 해요. 이 기간 동안 입양기관은 충분한 상담과 교육을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도와주면서 입양가정이 적절하게 대처하는지 살펴봐야 하고요.”
―그럼에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있다면 그땐 어떻게 해야 하나.
“아까 말했듯이 사전위탁은 입양의 가장 직전 단계예요. 사전에 촘촘한 검증과 절차를 밟아 왔다면 입양이 번복되는 일은 없는 것이 가장 좋아요. 아이를 맡았다는 것은 예비 입양 부모에 대한 자격 검증과 철저한 교육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전제로 하니까요. 그런데도 어떠한 이유들로 실제 양육 단계에서 문제가 발생했고, 교육과 상담을 통해서도 개선의 여지가 없다면 그때는 입양을 중단해야죠. 그것이 입양 가정을 위해서도, 아이를 위해서도 최선이에요. 아이를 키울 수 없는 가정인데 무리해서 입양을 진행하면 또 다른 학대 피해자를 낳을 수도 있어요. 가장 중요한 것은 입양 부모나 기관이 아니라 아동의 이익이에요.”
노혜련 숭실대 사회복지학부 교수. 사진=노혜련 교수 제공
―아동의 이익이 가장 중요하다는 건 너무 당연한 말 아닌가.
“그렇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을 때가 종종 있지요. 대통령 기자회견 이후에 사전위탁 보호제를 두고 ‘아동 쇼핑’이라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잖아요. 입양 부모가 그런 의도로 입양하는 것은 아니지만, 안타깝게도 지금의 국내 입양 현장에서는 시작부터 그렇게 보일 때도 있는 것 같아요. 입양기관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예비 입양 부모가 원하는 아이를 찾아 연결해 준다는 관점에서 일을 하는 경향이 있어요. 많은 분들이 ‘어린아이’ ‘건강한 아이’ ‘여자아이’를 원하죠. 민간 입양기관이 직접 친생부모 상담을 통해 입양아동을 인수하고 보호하다 보니 입양을 보내기 쉬운 어리고 건강한 아이만을 인수하게 돼요. 진짜 돌봄이 필요한 아이들은 아예 입양 과정에서부터 배제되는 거예요. 그런데 부부가 아이를 직접 임신하고 출산할 때, 아이의 성별이나 건강 상태에 대한 선택권이 있나요? 입양도 아이를 낳는 것과 같아요. 다만 맞이하는 방법이 다를 뿐이죠.”
―진짜 문제는 입양 절차의 전반에 있다는 뜻인가.
“우리나라는 과거부터 국내입양 활성화를 권장하면서 최대한 많은 아이를 빨리 입양 보내는 것을 우선으로 했어요. 이 때문에 부모의 적격성에 대해서는 철저히 검증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입양을 결정하게 된 동기가 아동 중심이 아닐 때는 그 이유를 듣고 생각을 바꿀 수 있도록 도와야 해요. 실제로 변화하는지 살펴봐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요. 단순히 종교인이라, 좋은 일을 하고 싶어서, 아이가 있으면 좋을 것 같아서 등의 이유로 입양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지요. 특히 난임 부부의 경우 ‘아이를 낳지 못한다’는 낙인감, 상실감이 해결되지 않은 채 입양을 진행하면 안돼요. 아이가 성장하면서 문제를 일으키거나 부모가 생각한 대로 크지 않으면 계속해서 자신이 ‘낳지 못한’ 이상적인 아이를 떠올리면서 비교를 하게 되거든요. ‘내가 낳은 아이는 이렇지 않을 텐데’와 같은 상상을 하게 되는 거예요. 입양기관이 진짜 해야 할 일은 난임 부부들에게 이러한 이슈를 짚어주고 해결한 뒤에 입양을 진행하는 거예요. 거듭 반복하지만 입양기관이나 사회복지사에 따라 차이가 있겠습니다만, 현재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아요. 예비 입양 부모 교육에도 이 부분이 빠져 있고요.”
―또 다른 문제가 있다면.
“입양 부모를 대단히 선한 혹은 박수 받아야 할 존재로만 바라보는 시선이 때로는 건강한 가족 관계 형성에 걸림돌이 되기도 해요. 입양 가정들이 많이 듣는 말 중에 하나가 ‘좋은 일 하셨다’ ‘대단하다’는 말인데요. 입양이 쉽지 않은 결정이라는 사실은 분명하죠. 그런데 이런 일방적인 시선은 실제 입양가정에서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오히려 이들을 숨게 만들기도 해요. ‘주변에서 나를 좋은 사람으로 알고 있는데 아이 때문에 힘들다’고 말하기 쉽지 않은 겁니다. 어떠한 말을 해도 그 이유가 ‘입양’으로 귀결되니까. 막상 고민을 들어보면 아이를 키우는 부모라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문제들이거든요. 당연한 문제를 터놓지 못하고 혼자서 해결하려고 하면 더 큰 문제가 발생할 수가 있는 거지요.”
―입양 가정이라고 해서 특별할 것이 없다는 뜻인가.
“입양 가정이기에 겪을 수 있는 일련의 문제들은 분명히 있죠. 다만 입양 가정이라는 이유로 매번 특별 취급을 받는 것이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는 말이에요. 입양 가정이라는 틀에 가둬버리면 이들 스스로도 무슨 일이 생길 때마다 ‘입양을 해서 그런가’라는 의심에 빠져버려요. 입양 가정도 일반 가정과 똑같아요. 부모와 자식 사이에 갈등을 겪을 수 있고 화해하고 성장해요.”
노혜련 교수는 ‘입양 가족이 상처받을 수도 있다’며 인터뷰 내내 단어 하나하나를 조심스럽게 선택하고 말했다. 그러나 입양 절차에 전문성과 책임을 키워야 한다고 할 때는 단호했다. 현장에는 아동의 이익, 아동의 행복과는 동떨어진 입양이 많이 진행되고 있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너무 많은 절차가 국내 입양을 부진하게 만들지는 않을지 물었다.
“출생률은 최저를 향해 달리고 있고 아이 한 명 한 명이 소중한 시국이에요. 통계적으로도 입양을 기다리는 아동은 과거에 비해 많이 줄었어요. 빠르게 많이 입양을 보내는 것보다 좋은 가정에 제대로 보내서 다시는 이런 (정인이와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해야죠.”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