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정 신호탄 쐈다” 대기업 뒤숭숭
▲ 비자금 의혹으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한화그룹 금융프라자(왼쪽)와 대검찰청 전경. |
수사를 지켜보는 다른 대기업들은 한화그룹 이후의 검찰 ‘스탠스’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분위기다. 이런 가운데 S 건설에 대한 수사 사실이 알려질 경우 기업들은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위기감을 느낄 것이라는 게 재계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대기업을 바짝 긴장시키고 있는 검찰의 또 다른 내사 움직임을 쫓아가봤다.
검찰 관계자 및 출입기자 등에 따르면 최근 서울동부지검이 중견건설업체인 S 건설에 대한 내사에 돌입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S 건설은 현 정권 핵심 실세인 A 씨와 유착관계에 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업체다. S 건설은 최근 몇 년간 급성장한 업체로 주로 종교 건물 등을 지으며 급속도로 외형을 불려나갔다.
이 업체에 대해서는 이미 2년 전부터 각종 의혹이 난무했으나 실제로 드러난 것은 하나도 없다. 경찰청 특수수사과에서도 관련 수사를 했다고 알려져 있으나 경찰 측에서 이를 공식적으로 인정한 적은 없다.
현재 검찰이 살펴보고 있는 내용은 크게 두세 가지 정도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중 하나는 S 건설이 참여정부 당시 대형 관급 공사를 유치하는 과정에서 건설사 순위에 앞서 있던 여러 경쟁 업체들을 제치고 공사를 따내는 과정에서 정치권에 막대한 로비자금을 뿌렸다는 의혹이다. 이와 관련 벌써부터 참여정부 당시 여당 인사들의 이름이 여럿 거론되고 있다. 이 부분은 얼마 전 논란이 됐던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에서도 들여다봤으나 A 씨가 연관되어 있다는 얘기가 나오면서 덮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A 씨와 관련해서는 S 건설이 서울 강북 지역의 한 대형교회를 재건축하면서 지역 주민들과 마찰을 빚을 당시 A 씨가 나서서 이를 무마하며 돈을 받았다는 의혹에 대해 검찰이 들여다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역시 이 부분에도 정권 최고위층이 연관됐다는 의혹이 제기된 바 있다. 그러나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정권실세가 연루됐기 때문에 검찰이 쉽사리 접근하지 못할 것이라는 예측도 나온다.
하지만 현 정권이 집권 후반기로 접어들었다는 시기적 특성과 언제 자객으로 변할지 모른다는 검찰 본래의 특성이 맞물려 의외의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관측에도 힘이 실리고 있는 형국이다.
이미 서울서부지검은 한화그룹 비자금 의혹에 대해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S 건설 수사는 서울 소재 다른 지방검찰청에서 진행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검찰 최고위 관계자 중 한 명은 최근 출입기자들과의 식사 자리에서 “대검찰청과 서울중앙지검은 해외 비자금 수사나 군납비리 등에 초점을 맞추고, 동부·서부·남부·북부지검은 대기업 수사에 초점을 맞출 것”이라고 언급했다고 한다. 김준규 검찰총장도 대기업 사정 수사를 통해 지방검찰청 간의 경쟁을 유도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실제로 검찰은 지난 정기인사에서 서울중앙지검을 비롯한 동부·남부·북부·서부지검에 특별수사로 잔뼈가 굵은 검사들을 전진 배치해 대대적인 사정 작업을 준비해 왔다.
결국 한화그룹 비자금 사건과 S 건설을 수사하고 있는 서울서부지검과 다른 지검을 제외한 나머지 두 곳의 서울 소재 지검도 어떤 형태로든 조만간 대형 대기업 사정 수사의 깃발을 올릴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이와 관련해 기업 사정에 밝은 한 인사는 “한화그룹과 S 건설 외에 두 기업 정도는 더 도마 위에 오를 것 같다. 당분간 문제가 될 만한 부분들을 자체적으로 스크린해서 대비해야 되지 않겠냐”고 말했다. 현재 검찰 주변에서 거론되는 대기업은 정권 실세에 비자금을 줬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B 기업, 공기업과 공모해 중소기업의 자금을 횡령한 의혹을 받고 있는 C 기업 등이다.
그동안 정치권 주변에서는 집권 후반기 대대적인 사정 분위기가 감지되어 왔으나 정작 정권이나 사정기관은 이를 부인해왔다. 대기업에서도 이를 곧이곧대로 믿지는 않았으나 검찰 인사 후 어느 정도 숨고르기를 한 뒤 수사가 시작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한화그룹 비자금 조성 의혹에 대한 수사가 시작되면서 기업들은 ‘올 것이 왔지만 너무 빨리 왔다’며 당황한 분위기가 역력하다. 일단 기업들은 정보팀을 풀가동해 검찰 경찰 국세청 공정위 등에 주파수를 맞추고 있다.
특히 한화그룹이 세종시 수정안 추진 때나 일자리 창출 등 이명박 정부에 가장 협조적인 기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뒤통수’를 맞은 것에 대해 기업들 사이에서는 ‘우리도 안심할 수 없다’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다.
추석 명절을 앞두고 이명박 대통령이 올해 말까지 각 대기업들의 일자리 창출 현황을 보고하라고 지시한 것도 기업들 입장에서는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 대목이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일자리 창출을 많이 한 기업에 상을 주겠다는 의도로 말했다고는 하지만 요즘 같은 분위기에서 ‘필벌’이 이뤄지지 않는다고 아무도 장담 못 하는 것 아니냐”며 “대통령이나 정치권 인사들의 한마디 한마디가 기업 입장에서는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고 말했다.
박혁진 기자 ph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