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급이 수요에 못 미치지는 ‘울트라 사이클’ 전망…외인의 삼성전자 매수 재개시 코스피 상승 기대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딜라이트 홍보관에서 한 관람객이 웨이퍼 등 반도체 관련 전시물들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반도체 시장의 절대 강자는 개발과 생산을 동시에 수행하는 인텔이었다. ‘펜티엄’ ‘셀러론’ ‘듀얼-쿼드코어’ 등과 같은 표준 CPU 칩으로 세계 시장을 휩쓸었다. 그런데 IT 기술의 발달로 맞춤형 칩의 시대가 열렸다.
애플을 제외한 스마트폰 두뇌(AP) 시장은 퀄컴이 장악했다. 클라우드(Cloud) 서비스 세계 1위 아마존은 자체 서버 칩 그라비톤(Graviton)을 내세웠다. 클라우드 컴퓨팅 서버에 최적화된 설계로 인텔 칩보다 ‘가성비’가 좋다. 아마존은 AI(인공지능) 기술에 최적화된 ‘인퍼런시아’라는 새로운 칩도 설계해 사용하기 시작했다.
구글은 AI 연산에 최적화된 TPU 시스템을 판다. 인텔을 제치고 미국 내 반도체 기업 시가총액 1위에 등극한 NVIDIA는 그래픽카드 회사에서 ‘연산과 그래픽 처리’에 강한 AI 시대 선두기업이 됐다. 칩 설계업체 ARM까지 인수한 NVIDIA는 CPU 중심의 인텔 체계를 벗어나 GPU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표준을 구축하려 한다. 한마디로 빅테크 회사들은 이제 각자 필요에 맞게 칩을 직접 설계해서 쓰는 시대가 됐다. 조만간 MS(마이크로소프트)마저 인텔과 결별하고 자체 칩을 시도할 거란 얘기가 나온다.
인텔은 생산부분에서도 경쟁에 뒤처졌다. 삼성전자나 대만 TSMC가 이미 상용화한 7나노 양산 체제로의 진입에도 어려움을 겪을 정도다. 한때 경쟁상대로도 여기지 않던 AMD에도 뒤지는 상황이 되면서 ‘외주 확대’ 선언까지 했다. 현재 10나노 이하의 미세공정이 가능한 곳은 삼성전자와 대만 TSMC다.
개인용 컴퓨터(PC)에서 개인용 통신기기와 클라우드 시대로 넘어오면서 반도체 수요는 급증한다. 수요를 공급이 따라가지 못하는 슈퍼사이클(Super Cycle)이 발생하는 이유다. 낸드는 지난해부터, D램은 올해부터 공급이 수요에 못 미치게 된다. 이번에 다가올 사이클은 슈퍼를 넘어 울트라(Ultra) 급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통신 혁명인 5G는 기존 LTE 대비 20배 이상의 속도를 자랑한다. 데이터 유통량 증가에 따라 서버용 D랩 수요도 크게 늘어날 수밖에 없다. 자율주행차는 3단계에 1대당 반도체 1000개, 4단계 이상에서는 최소 1500개 이상이 필요하다. 반도체를 확보할 수 없다면 미래 기술 구현이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반도체를 원자재로 분류하기도 한다. 실제 대만 증시에서는 반도체가 원자재성 선물로 거래된다. 미국에서는 필라델피아 반도체 지수로 업황 자체가 거래 대상이기도 하다. 한일 갈등으로 일본이 핵심부품 대한(對韓) 수출을 금지했을 때, 전 세계가 긴장한 이유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반도체 생산 차질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 경제에 타격을 주기 위해 반도체 기술개발 및 생산설비 확보를 막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어느새 반도체는 산업을 넘어 국가 안보 전략의 주요 무기가 되는 모습이다. 미국은 TSMC와 삼성전자 등에 자국 내에 생산시설을 짓도록 압력을 가했고, 최근에는 유럽연합(EU)까지 반도체 주권 확보를 위해 이에 가세하고 있다. TSMC가 절대강자인 차량용 반도체는 공급난으로 글로벌 자동차업체의 생산이 중단되는 초유의 사태까지 벌어지고 있다. 공급이 부족하면 개발자가 아니라 생산자가 갑(甲)이 된다.
필라델피아 반도체 지수의 최근 3년간 상승폭을 보면 2019년 60%, 지난해 51%, 올해 들어서는 한 달도 채 안돼 10.15%가 올랐다. 특히 대만 TSMC는 2019년 46.8%, 지난해 60.1%, 올해 16.4% 오르며 필라델피아 반도체 지수를 앞섰다. 이 덕분에 글로벌 시가총액 10위에 올랐다. TSMC는 애플용 칩의 전속 생산기업이다. TSMC는 올해 시설 투자 전망치를 250억~280억 달러로 제시했다. 지난해 맥북에 5나노 공정을 적용한 데 이어 2년 뒤 출시될 아이폰14에 쓰일 3나노 공정 A16 칩까지 생산을 준비 중이다.
물론 TSMC만 잘나가는 것은 아니다. 인텔이 위탁생산을 확대하기로 하면서 삼성전자가 미국 오스틴 공장에 100억 달러를 투자해 증설에 나설 것이란 소문이 파다하다. 2023년부터 3나노 시스템 반도체를 양산할 것이란 관측이다.
반도체 수요가 계속 늘어나도 현재 상태로는 파운드리를 계속 확대하기 어렵다. 반도체 생산은 한국과 대만 기업이 주도하고 있지만, 핵심 설계 기술과 장비 제조는 여전히 미국, 유럽, 일본이 우세하다. 충분한 장비가 공급되어야만 파운드리 생산 확대가 가능하다. 일례로 7나노급 이상 반도체를 생산하려면 극자외선(EUV) 장비가 필수인데, 이를 생산하는 곳은 네덜란드 ASML뿐이다. 지난해 연간 판매대수가 31대 수준인데 삼성전자는 2025년까지 100대를 확보할 계획이다. TSMC와 경쟁이 치열하다. 대만의 EUV 점유율이 삼성보다 높은데, 올해부터는 SK하이닉스까지 물량 확보에 뛰어들 계획이다. 계속 공급이 달리면 가격이 올라갈 수밖에 없다.
TSMC 비중이 절대적인 대만 가권지수는 2019년 23.3%, 2020년 22.8% 급등한 데 이어 올해도 벌써 6% 이상 상승했다. 2018년 말 9400으로 1만도 안 되던 지수가 지금은 1만 6000선을 넘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비중이 절대적인 코스피는 2019년 7.7%, 2020년 30.8%, 올해 8.7%의 상승률을 보이고 있다. 2018년 말 2041이던 코스피는 현재 3100선으로 가권지수보다 덜 올랐다. 이 기간 TSMC가 2.7배 오를 때 삼성전자는 2.2배, SK하이닉스는 2.1배 오른 차이가 전체 지수 상승률에도 반영됐다.
최근 반도체 업계에서는 TSMC에 대한 의존도가 너무 높아지는 데 대한 경계심이 커지고 있다. 이는 TSMC와 기술력 차이가 별로 없는 삼성전자를 주목할 이유가 된다. 최근 인텔이 삼성전자에 외주 생산을 맡기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역시 같은 맥락으로 봐야한다.
올해 들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주가 상승률이 모두 코스피를 밑돈다. 코스피가 3000~3200선에서 횡보하는 이유다. 특히 삼성전자는 외국인 매도가 집중됐다. 반대로 TSMC는 1월에만 16% 넘는 상승률을 기록 중이다. 글로벌 자금 입장에서는 반도체, 특히 파운드리에 투자한다면 TSMC를 핵심 포트폴리오로 가져가기 위해 삼성전자 비중을 줄일 법도 하다. TSMC의 경쟁력이 높아도 시장을 독점할 수는 없다. 지난 4분기 TSMC의 실적을 견인했던 아이폰12의 기록적 판매도 시간이 갈수록 둔화될 가능성이 크다. 글로벌 자금의 삼성전자 매수가 재개된다면 코스피도 함께 오를 가능성이 크다.
삼성전자와 달리 반도체에만 집중하는 SK하이닉스도 올해 10나노 양산에 성공한다면 시장점유율을 크게 높일 수 있다. 현재 SK텔레콤 자회사인 지배구조에서 지주사인 SK의 자회사로 지배구조 변경 가능성도 점쳐진다. 이뤄진다면 기업가치에 긍정적 재료라는 평가가 많다.
최열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