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한 상속녀 ‘의문의 수영장 사망’으로 재주목…교통사고·암살·약물중독·자살 등 불행 줄이어
벤자민 기네스의 외손녀 아너 울로스는 지난해 7월 자택 수영장에서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 사진=아너 울로스 페이스북
18세기 중반 ‘기네스’의 창립자인 아서 기네스가 처음 양조업을 시작한 이래 기네스 가문은 막대한 부를 축적해오면서 아일랜드 최대의 부자가 됐다. 현재 기네스 가문의 자산은 약 9억 600만 파운드(약 1조 3000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부만 쌓은 것이 아니었다. 기네스 가문의 여러 선조들은 생전에 귀족 칭호를 수여받기도 했으며, 아일랜드 사교계에서는 존경받는 명사들로 소문이 자자했다. 기네스 가문에 저주가 깃들었다는 괴소문이 더욱 호기심을 자극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에 대해 기네스 측은 “세상 그 어떤 가족에게도 저마다의 슬픔은 있다”고 말하면서 저주에 대한 소문을 일축했다. 그럼에도 비극적인 사고가 끊이지 않자 많은 이들은 기네스 가문에만 유독 줄을 잇는 괴이한 사건들이 과연 우연일까 의심하고 있다. 우연이라기엔 사건 사고가 너무 잦다는 것이다.
기네스 가문을 둘러싼 비극 가운데 가장 최근에 벌어진 사건은 지난해 7월 자택에서 발생한 사망 사고였다. 바로 1962년부터 1986년까지 ‘기네스’의 회장직을 맡았던 벤자민 기네스의 외손녀인 아너 울로스(19)가 의문의 사고를 당해 목숨을 잃은 것이다.
벤자민의 딸인 루이자 제인 기네스와 ‘컨트리 라이프’ 잡지사의 부편집장을 지낸 루퍼트 울로스의 장녀였던 아너는 밝고 활달한 성격의 소유자로, 당시 옥스퍼드 브룩스대학에서 예술사를 전공하던 대학생이었다. 사건이 일어났던 날 밤은 서섹스의 치체스터 항구가 내려다보이는 저택에서 바비큐 파티가 열리고 있었다. 모두 네 가족이 모였으며, 파티에 참석한 사람은 19명이었다.
그날 밤 아너는 술은 마시지 않았으며, 친구 두 명과 함께 야외 자쿠지 욕조에 몸을 담근 채 야경을 감상하고 있었다. 아너는 밤 11시쯤이 되자 홀로 수영장 쪽으로 향했고, 친구들은 수영장을 등진 채 자쿠지 안에 앉아 있었기 때문에 수영장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전혀 몰랐다.
‘창업주’ 아서 기네스는 생전에 스물한 명의 자녀를 두었지만 불행히도 이 가운데 열 명은 자신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얼마 후 아너의 동생인 루퍼스의 다급한 비명 소리가 저택 전체에 울려 퍼졌다. 수영장 옆을 지나가던 루퍼스가 수영장 바닥에 의식을 잃은 채 쓰러져 있는 누나를 발견하고 소리를 지른 것이다. 간신히 누나를 물 밖으로 끌어냈지만 이미 때는 늦은 뒤였다. 아너는 현장에서 구급대원들의 응급처치를 받고 간신히 목숨을 건졌지만 6일 후 병원에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사고 당시 충격으로 발생한 어깨와 뇌 손상 때문이었다.
경찰 조사 결과, 아너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목격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때문에 사인은 추측만 할 수 있을 뿐이었다. 경찰이 추측한 첫 번째 사인은 아너가 다이빙을 하듯이 수영장으로 뛰어들다가 수영장 바닥에 머리를 부딪쳤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아너가 물기 있는 바닥을 걷다가 미끄러져 수영장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쳤다는 것, 세 번째는 수영장에 뛰어들다가 그만 수영장 턱에 머리를 부딪쳤다는 추측이다. 뭐가 됐든 뜻하지 않은 사고로 목숨을 잃은 아너는 젊은 나이에 그렇게 황망하게 세상을 떠났다.
그런데 어쩌면 기네스 가문의 비극은 아서 기네스 때부터 시작됐는지도 모른다. 막대한 재산을 모았음에도 비극으로 얼룩진 삶을 살았던 그는 생전에 스물한 명의 자녀를 두었지만 불행히도 이 가운데 열 명은 자신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다. 다만 한 가지 고려해야 할 점은 당시는 기대수명이 훨씬 낮고 아동사망률이 높았던 18세기였다는 점이다. 19세기 이전에는 대부분의 어린이가 15세 이전에 사망했으며, 전 세계 청소년들의 사망률은 평균 46.2% 정도였다.
이 밖에도 훗날 아서의 후손들 가운데 상당수는 알코올중독에 시달리거나 몇몇은 심지어 정신병원에서 생을 마감하기도 했으며, 더러는 사업적 통찰력을 이어받지 못하고 사업에 실패해 가난에 찌들어 살다가 세상을 떠나기도 했다. 불의의 사고로 사망하거나 암살당하는 경우도 있었다.
‘모인 경’으로 잘 알려진 월터 에드워드 기네스는 이집트 카이로에서 테러단체에 의해 암살당했다.
일례로 ‘모인 경’으로 잘 알려진 월터 에드워드 기네스의 경우가 그랬다. 아서의 증손자이자 윈스턴 처칠의 친구이기도 했던 모인 경은 훗날 영국의 중동담당 장관을 맡으면서 국정에도 참여했던 인물이다. 하지만 1944년 그는 이집트 카이로에서 테러 단체인 ‘스턴 갱’으로부터 무차별 총격을 당해 사망하고 말았다. ‘스턴 갱’은 지하 테러조직인 ‘로하메이 헤루트 이스라엘(이스라엘의 자유를 위해 싸우는 전사들)’ 소속이었다.
당시 모인 경의 암살 사건은 정치·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이었으며, 기네스 가문을 둘러싼 첫 번째 비극이자 20세기에 잇따라 일어나게 될 저주의 시작이기도 했다.
1966년 12월 18일, 사우스 켄싱턴에서 푸른색 ‘로터스 엘런’ 스포츠카 한 대가 교차로에서 신호를 무시한 채 질주하다가 주차되어 있던 밴을 들이받는 대형 사고가 일어났다. 차 안에 타고 있던 21세 남성의 이름은 패트릭 타라 브라운이었으며,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결국 사망하고 말았다.
브라운은 기네스 가문의 상속녀이자 아서의 증손녀인 오노 기네스의 아들로, 1960년대 런던 사교계에서는 꽤나 유명한 인물이었다. 당시는 영국의 귀족들과 새롭게 부상한 유명 스타들이 자유롭게 어울리면서 계급 차별이 허물어지고 있던 시기였다. 때문에 브라운의 집은 늘 모든 분야의 예술가들이 모이는 핫스팟이 되었고, 이를 통해 브라운은 롤링 스톤스, 데이비드 보위, 지미 헨드릭스, 비틀스 등과 친구가 될 수 있었다.
오노 기네스의 아들인 타라 브라운은 비극적인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이 일은 비틀스의 노래 속에서도 등장한다.
비틀스의 ‘어 데이 인 더 라이프(A Day In The Life)’는 브라운의 비극적인 사고에서 영감을 얻어 만들어진 노래였다. 노래 가사 가운데 “오늘 신문을 읽었어요, 맙소사 / 성공한 운좋은 남자에 대한 소식이에요 / 그럼에도 그 뉴스는 슬펐고 / 난 그저 웃어야만 했어요 / 사진을 봤거든요 / 그는 차안에서 너무 흥분했었죠 / 신호가 바뀐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던 거에요”라는 부분은 바로 브라운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기네스 가문의 상속녀 가운데 한 명이었던 헨리에타 기네스는 1978년 35세의 젊은 나이에 이탈리아 움브리아에 있는 다리에서 스스로 목숨을 던졌다. 이유는 자동차 사고 후유증으로 인한 우울증 때문이었다. 프랑스 리비에라에서 당시 연인이 몰던 슈퍼카를 타고 있다가 추락 사고를 당했던 헨리에타는 평생 그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으며, 생전에 “차라리 내가 가난했더라면, 행복했을 텐데”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었다.
치명적인 자동차 사고로 목숨을 잃은 사고는 그게 끝이 아니었다. 특히 1978년은 기네스 가문에 비극적인 사고가 끊이지 않았던 ‘저주받은 해’였다. 같은 해 영국 외교관이었던 존 기네스와 그의 네 살배기 아들 피터 기네스는 차를 몰고 가던 중 사고를 당했으며, 당시 불행히도 운전을 했던 존은 목숨을 구했지만, 아들 피터는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1986년 ‘더블린 뱅크 기네스 앤 마혼’의 회장이었던 존 기네스는 아내 제니퍼가 납치되는 사고를 당했다. 당시 납치범들은 아내의 몸값으로 260만 달러를 요구했다. 다행히 존은 경찰에 신고한 지 8일 만에 아내를 무사히 구할 수 있었으며, 몸값도 지불하지 않았다. 불행히도 존 기네스 가족의 불행은 이 유괴 사건으로 끝나지 않았다. 불과 2년 후, 존은 북부 웨일스의 스노든 산에서 아내, 아들, 그리고 세 명의 친구들과 함께 등산을 하다가 추락해 사망하고 말았다.
35세의 나이에 스스로 목숨을 던진 헨리에타 기네스(왼쪽)와 아내 납치 사건 등 불행을 겪은 후 등산 중 사고로 사망한 존 기네스.
마약 및 약물 복용으로 사망한 경우도 많았다. 1986년 옥스퍼드 크라이스트처치 칼리지에 재학하고 있던 올리비아 채넌은 기말고사 쫑파티에서 그만 술에 취해 헤로인을 과다 복용한 상태로 숨지고 말았다. 채넌은 폴 채넌 무역산업부 장관의 딸이자 기네스 가문의 외손녀였다.
당시 올리비아는 기숙사 방 침대에서 알몸인 상태로 친구들에 의해 발견되었으며, 이 사건은 당시 마약에 찌든 부유층 및 권력층 자녀들의 방탕한 생활에 대해 경종을 울리는 사례가 됐었다.
이 밖에 3대 후손인 데니스 기네스 소령도 같은 해 햄프셔의 한 오두막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사인은 약물과다 복용이었으며, 당시 그가 총기 범죄 가능성에 대해 경찰 조사를 받고 있었던 터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아서의 증손녀 가운데 한 명인 모린 기네스는 당시 귀족 엘리트들 사이에서 ‘금수저 기네스 가문의 딸’로 유명했다. 허영심이 강했던 모린은 노년기에도 사교적인 활동에 집착했으며, 자신의 딸들을 홀대하면서 방치하곤 했다. 그런 환경에서 자란 탓인지 모린의 맏딸인 캐롤라인 블랙우드는 불안정한 삶을 살았다. 알코올 중독자였던 캐롤라인은 자신 역시 불안정한 가정을 꾸렸으며, 그의 딸인 나탈리아 시트코위츠는 결국 18세 때 헤로인을 복용한 채로 욕조에 부딪쳐 목욕물에 빠져 익사하고 말았다. 엄마에서 딸, 그리고 손녀까지 비극이 이어진 경우였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