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스탑 매수 버튼 삭제 이유 ‘최대 고객’ 시타델 압박 추측됐지만…“증거금 탓” 더 유력
최근 로빈후드를 두고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나오는 얘기다. 로빈후드는 미국에서 가장 흔히 쓰는 주식 앱(애플리케이션)이자 미국 개미(개인투자자)들의 별명이기도 하다. 그런데 최근 로빈후드가 특정 종목에서 매수를 금지해 엄청난 논란이 일었다. 이 사건 배경은 게임스탑이란 주식에서 시작했다. 게임스탑은 최근 미국 주식에 관심이 있거나 심지어 전혀 없던 사람도 한 번쯤은 들어봤을 정도로 화제가 되고 있다(관련기사 “못 먹어도 홀딩” 개미 연합군 반란 ‘게임스탑’ 운명은…).
로빈후드가 게임스탑 주식 매수를 금지해 미국 개미들의 공분을 샀다. 사진=로빈후드 홈페이지 캡처
게임스탑이 화제의 중심이 된 이유는 개미들과 공매도 세력과의 전쟁에서 전장으로 지목됐기 때문이다. 멜빈 캐피털 등 헤지펀드가 게임스탑 주가 하락을 예측해 공매도를 하기 시작했다. 이에 반발한 개미들이 너도나도 게임스탑을 매수하면서 가격에 불이 붙기 시작했다.
미국 개인투자자들은 미국 최대 커뮤니티 레딧의 월스트리트베츠(WallStreetBets) 게시판에 모여 공매도와의 전쟁을 선포했고 ‘닥치고 매수’를 약속했다. 이들의 수는 끝없이 불어나 1월 초 200만 명대에서 2월 4일 기준 850만 명을 넘어섰다. 개미에서 군단이 된 이들은 주가가 떨어지면 ‘Hold the line!’(전선을 지켜라)을 외치며 떨어지는 족족 추가 매수를 독려했다. 이들은 무조건 게임스탑 주가를 끌어올리겠다면서 공매도 세력 죽이기에 나섰다.
게임스탑 주가는 1월 12일 19.95달러에 불과했지만 28일 500달러 근처까지 폭등했다. 약 40달러 주가에 게임스탑을 공매도 했던 세력의 손실은 주당 400달러까지 치솟았다. 공매도와의 전쟁은 게임스탑을 넘어 AMC 엔터테인먼트, 선다이얼 그로워스 등 다른 주식으로도 번지며 이들 주가도 덩달아 급등했다. 이 공매도 전쟁으로 몇몇 주식 가격이 미친 듯이 솟구칠 때 미국에선 엄청난 파장을 가져올 사건이 발생했다. 미국 개미의 상징인 로빈후드가 게임스탑, AMC 등의 매수 버튼을 삭제해버린 것이다.
개미군단은 매수가 불가능해졌지만 헤지펀드의 공매도는 계속 허용되는 상황이 됐다. 개미들은 ‘공매도 세력이 가격을 낮춰 살아나기 위해 월스트리트 카르텔이 담합을 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미국 정치권에서도 진보-보수 할 것 없이 즉각 분노를 표했다.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AOC) 민주당 하원의원, 테드 크루즈 공화당 상원의원은 ‘청문회를 지원하겠다’며 나섰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최고경영자)도 AOC 의견에 동의를 표했다.
로빈후드가 가장 중요한 고객인 개미투자자뿐만 아니라 정치권 공격까지 예상되는 이 같은 결정을 한 배경은 뭘까. 초기에는 로빈후드가 시타델의 압박을 받았다는 얘기가 나왔다. 게임스탑 공매도 세력 중 하나인 멜빈 캐피탈은 주가 상승으로 큰 손실을 보고 있었다. 이때 시타델이 지원 세력으로 등장해 20억 달러를 지원했다. 그런데 로빈후드와 시타델은 공생 관계다.
시타델 켄 그리핀 CEO(사진)는 로빈후드에서 주식 매매 정보를 받아 초단타로 돈을 번다. 로빈후드는 이런 사실을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아 지난해 12월 벌금을 내는 데 합의했다. 사진=CNBC 캡처
로빈후드는 비교적 증권수수료가 비싼 미국 시장에서 ‘수수료 공짜’를 마케팅 수단으로 들고 나왔다. 무료 증권앱인 로빈후드는 고객으로부터 수수료를 받지 않는 대신 고객들의 주식 주문 정보를 금융회사나 헤지펀드에 팔아 돈을 번다. 시타델은 로빈후드의 가장 큰 고객 가운데 하나다. 시타델은 초단타 매매(HFT)로 돈을 버는 대표적인 헤지펀드다. 최첨단 서버와 고성능 컴퓨터를 이용한 알고리즘 매매로 1초에 수천 번의 주문을 낼 수 있다. 시타델은 개인들의 매수세와 매도세를 로빈후드로부터 가져와 매수 주문이 몰리면 호가 단위 하나라도 싸게 사고, 매도가 몰리면 공매도를 통해 이익을 낸다.
로빈후드는 일종의 스파이 활동으로 개미들을 나쁜 가격에 주문이 체결되도록 유도한다. 2020년 12월 이런 사실이 공개되면서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로빈후드가 수수료가 공짜라고 했지만 어떤 식으로 수익을 창출하는지 제대로 공개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약 711억 원 벌금을 로빈후드와 합의해 내도록 했다. 한 달 전만 해도 합의 소식이나 드러난 수익모델은 별다른 반향을 불러일으키지 않았다. 하지만 매수 버튼을 삭제하면서 시타델과의 연결고리가 다시 부각되기 시작했다.
‘내일은 투자왕 김단테’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있는 김동주 이루다투자일임 대표는 “시타델이 자사 손실을 줄이기 위해 로빈후드에게 어떤 형태로든 압력을 가했다는 추측을 하게 되는 여지가 있다. 시타델은 이번 매수금지를 통해 이득을 볼 가능성이 높은 이 사건 이해관계자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로빈후드 이외에도 게임스탑을 매수 금지한 온라인 주식 중개회사가 위불(WeBull), M1 파이낸스 등 몇 군데 더 생기면서 다른 문제가 있는 게 아니냐는 얘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김동주 대표는 더 유력한 시나리오로 증거금 문제를 꼽았다.
“우리가 애플 주식을 팔면 그 주식이 판 순간에 바로 현금으로 들어오지 않는다. 보통 2영업일 정도 걸린다. 이렇게 오래 걸리는 이유는 정산을 실시간으로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만약에 주식을 살 때마다 실시간으로 정산을 한다면, 하루에 수억 번 계좌이체가 일어나야 하는데 현재 금융 시스템은 이를 감당할 수 없다. 전체 사고 판 주식을 일종의 체크만 해놓고 나중에 뒤에서 모여 서로 정산을 해서 나눠 가진다. 그런데 2일이라는 시차가 발생하면서 정산을 담당하는 중앙예탁기관(DTCC)이나 청산을 담당하는 미국 증권청산소(NSCC)는 리스크가 발생한다. 주식을 매수한 시점부터 정산할 때까지 자산의 가격이 변화할 수 있고 자산 가격이 지나치게 변하면 거래 상대방이 돈을 낼 수 없는 경우가 있다. 이를 카운터파티 리스크라고 한다. 이런 리스크가 있기 때문에 기관은 로빈후드를 비롯한 정산 중개회사들에게 담보금을 요구한다. 이때 증거금은 도드-프랭크 법 때문에 고객 돈이 아닌 로빈후드 같은 중개회사의 자본으로 해야 한다. 공매도는 무한대로 손실이 날 수 있어 카운터파티 리스크가 크다. 공매도를 쳤던 헤지펀드들이 파산 직전이란 얘기가 나오자 청산을 담당하는 NSCC에서는 큰일이 났다. 정산을 해야 하는데 상대방이 그만한 돈을 못 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만약 헤지펀드가 파산해 정산이 안 된다면 금융시스템 전체가 무너질 위기가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청산이 불가능할 정도로 위험해진 특정 주식에는 ‘NSCC가 책임을 질 수 없다’고 선언했다. NSCC는 중간 정산회사에게 ‘만약 게임스탑이나 AMC 같은 주식을 매수하고 싶다면 담보율을 10배로 늘려라’고 요구했다고 한다.”
김 대표의 설명처럼 담보율 폭증은 로빈후드 대표, 위불 대표의 말이 일치한다. 최근 유행하는 소셜미디어 앱 ‘클럽하우스’에서 일론 머스크와 블래드 테네브 로빈후드 공동창업자가 나눈 대화 내용이 유출됐다. 여기서 머스크는 테네브에게 매수 버튼을 왜 삭제했는지 물었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와 블래드 테네브 로빈후드 공동창업자가 클럽하우스라는 소셜미디어에서 만나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유출됐다. 사진=유튜브 유출본 화면 캡처
테네브는 “새벽 3시 30분에 NSCC로부터 ‘게임스탑 등 변동성이 큰 종목을 계속 거래하고 싶다면 증거금을 추가로 30억 달러를 납입하라’는 전화를 받았다. 로빈후드가 지금까지 받은 투자금이 20억 달러인데 30억 달러는 너무 큰 금액이었고 NSCC와 협상을 했지만 여전히 ‘14억 달러를 납입하라’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테네브는 “NSCC에게 그럼 특정 주식의 매수를 막으면 어떠냐고 제안하니 ‘그럼 7억 달러면 될 것 같다’는 답변을 들었다”고 설명했다.
머스크는 “증거금을 계산하는 식이 있냐”고 묻자 테네브는 “역으로 대략 계산은 가능하지만 공개되진 않았다. 최대예상손실액 지표와 주식의 변동성, 집중성 그리고 기관의 의견도 계산돼 결정된다”고 답했다. 로빈후드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은행에서 돈을 대출받았고 기존 투자자들에게 무려 34억 달러를 투자 받게 된다. 김 대표는 “일부 언론에서는 34억 달러 투자를 두고 대박이라고 얘기를 했지만 로빈후드는 상장 직전의 회사라서 오히려 엄청난 손해를 봤다고 볼 수 있다”면서 “특히 급하게 증거금을 확보하기 위해 기존 회사 가치보다 약 30% 가치로 투자받은 것을 볼 때 굉장히 다급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로빈후드 논란에 대해 김동주 대표는 “로빈후드가 시타델의 압박으로 매수를 금지한 게 맞다면 월가에서 일어난 또 하나의 충격적인 스캔들이다. 정말 큰 문제다. 그런데 증거금 부족 문제가 맞다고 해도 문제다. 현재 결제 시스템이 몇몇 주식의 폭등 이유만으로 흔들리면서 시장을 위협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이번 사건에 대해서는 개인투자자들이 납득할 수 있게 철저한 검증이 필요할 것이고, 후진적 결제 시스템을 고치기 위한 노력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평가했다.
로빈후드가 정말 시타델과 연결돼 매수 버튼을 삭제했는지 여부와 별개로 이후 개미군단의 진격 속에 공매도 세력은 대부분 손실을 확정 짓고 공매도 물량을 털고 나갔다. 공매도 잔량은 유통 주식수의 120%에서 40%까지 줄어들었다고 알려졌다. 월스트리트저널은 공매도 세력이었던 헤지펀드 멜빈 캐피털이 1달 동안 입은 손실은 52% 수준이라고 보도했다. 자산 절반 이상이 순식간에 날아간 셈이다. 또 다른 공매도 세력이었던 시트론 리서치는 공식 트위터 계정에 “더 이상 매도 보고서를 내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개미들의 승리라고 평가할 만하지만 모두가 웃을 수는 없었다. 게임스탑은 공매도 세력이 빠져나간 직후 폭락을 거듭하고 있다. 게임스탑은 1월 28일 500달러 돌파를 목전에 뒀다가 2월 1일 100달러대까지 하락세가 계속됐고 5일 기준 63달러에 거래되고 있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