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적인 IPO 위해선 ESG 낮은 평가 극복해야…부진한 실적·더블 카운팅 우려도
이번에 IPO를 추진하는 현대중공업은 2019년 6월 옛 현대중공업으로부터 물적분할된 법인이다. 당시 현대중공업은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위한 중간지주회사 한국조선해양과 사업회사 현대중공업으로 회사를 분할했다. 현재 한국조선해양이 현대중공업 지분 100%를 갖고 있다.
현대중공업은 IPO를 통해 올해 안에 약 20% 규모의 신주를 발행·조달할 것이라고 밝혔다. 자금 조달의 주목적은 ESG 경영 강화다. 현대중공업 측은 “사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친환경 및 미래 선박 개발, 건조기술 개발, 친환경 생산설비 구축 등에 향후 5년간 최대 1조 원을 투자할 것”이라며 “연료전지 관련 기술을 보유한 기업의 M&A나 지분 매입을 포함한 기술 투자 등을 함께 추진하고, 친환경 선박 건조와 시설투자로 ESG 경영 기반도 마련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현대중공업 후계자로 꼽히는 정기선 현대중공업지주 부사장이 ESG 경영의 중심에 서있다. 실제 정 부사장은 2018년 1월 현대글로벌서비스 대표이사에 취임한 후 친환경 선박 제조에 집중하고 있다. 현대글로벌서비스는 선박 보수·수리업체로 이미 2018년 7월 친환경 선박개조 서비스 분야에서 수주액 1억 달러(약 1124억 원)를 돌파했다. 이 때문에 다가올 정기선 시대에는 ESG가 그룹 경영의 주요한 방향타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관련기사 요즘 대세는 ‘ESG’ 뿌린 경영? 재계는 긴장, 시장은 후끈).
정기선 현대중공업지주 부사장은 ESG 경영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2020년 3월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 19주기 제사에 참석한 정기선 부사장과 정몽준 아산사회복지재단 이사장. 사진=연합뉴스
현대중공업의 ESG 투자를 위해서는 IPO가 성공적으로 이뤄져야 하지만 최근 실적이 발목을 잡을 수 있다. 현대중공업은 2019년 889억 원의 적자를 거둔 데 이어 2020년 1~3분기에도 676억 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시장에서 현대중공업을 바라보는 시선도 긍정적이지만은 않다. 정동익 KB증권 연구원은 “현대중공업은 이번 IPO를 통해 1조 원을 조달하겠다는 계획인데 이는 100% 지분 기준 5조 원에 해당한다”며 “한국조선해양의 시가총액이 현재 7조 5000억 원 수준임을 감안하면 현대중공업의 가치를 5조 원으로 보는 것은 다소 높아 보일 수 있다”고 전했다.
또 현대중공업을 상장했다가 한국조선해양의 가치가 하락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김현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현대중공업지주-한국조선해양-현대중공업 연결고리에서 한국조선해양의 기업가치에 대한 할인 리스크가 존재한다”며 “현대중공업 상장 시 지주사의 더블 카운팅 우려가 발생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더블 카운팅이란 모회사와 자회사가 모두 상장하면 두 회사의 시가총액 가치가 중복으로 계산돼 모회사의 주가가 하락하는 현상을 뜻한다.
정작 현대중공업이 현재 ESG 부문에서 높은 평가를 받지 못하는 것도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최근 투자업계에서는 ESG를 투자의 주요 요소로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중공업은 ESG를 위해 IPO를 추진 중인 만큼 ESG에 대한 로드맵을 구체적으로 보여주지 못하면 투자 유치에 어려움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강봉주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미국, 유럽의 주요 연기금 및 운용사들은 ESG 등급을 포트폴리오 내 투자 비중 조절에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이에 관련한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도 강화하고 있다”며 “이는 ESG 이슈가 일반 투자자들의 관심 및 지지를 받고 있기 때문이며 환경, 사회적 가치 등 ESG의 핵심 철학이 글로벌 이슈로 공론화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현대중공업은 ESG를 위해 IPO를 추진 중인 만큼 ESG에 대한 로드맵을 구체적으로 보여주지 못하면 투자 유치에 어려움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 전경. 사진=현대중공업 제공
조선업계는 ESG 평가에서 상대적으로 낮은 점수를 받고 있다. 한국기업지배구조원(KCGS)이 평가한 한국조선해양의 ESG 등급은 B+다. 삼성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도 같은 B+ 등급을 받았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SK하이닉스 등 다수의 대기업이 A를 받은 것과 비교하면 한 단계 떨어지는 등급이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조선업 특성상 야외 작업이 많기에 공장 라인으로 운영되는 다른 업종에 비해 노동 환경이 열악한 건 사실”이라고 전했다.
KCGS는 한국조선해양의 환경과 사회 부문에 B+ 등급을 내렸고, 지배구조 부문은 A 등급으로 평가했다. 현대중공업이 친환경 투자에 나설 것이라고 밝힌 만큼 향후 환경 부문의 등급 상승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사회 부문에 대해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그룹 차원에서 동반성장 펀드를 조성해 협력회사에 이자 비용을 지원하는 등 자금 운용 어려움을 덜어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앞으로도 1%나눔재단을 통해 더욱 다양한 분야로 사회공헌 활동을 확대할 것”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사회 부문 평가에는 내부 노동 환경이 더 큰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가 나온다. 과거 KCGS는 한국조선해양의 사회 부문을 A 등급으로 측정했지만 2020년 1분기 평가에서 B+로 조정했다. 당시 KCGS의 조정 근거는 현대중공업 노동자의 사망 사고 및 불공정 하도급 관행으로 인한 공정거래위원회의 제재 등이었다. 실제 2020년에만 현대중공업 작업장에서 4명이 사고로 사망했다
지난 2월 5일에도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 대조립1공장에서 노동자가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전국금속노동조합 현대중공업지부(현대중공업 노조)에 따르면 사망 노동자는 작업을 위해 이동하던 중 옆에서 탑재 중이던 블록 철판이 흘러내려 사고를 당했다. 현대중공업 노조 관계자는 “철판이 흘러내릴 위험이 있음에도 출입금지 조치를 하지 않았고, 바로 옆에서 용접을 하는 노동자들이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는 통로도 확보되지 않은 상태였다”며 “중량물 취급 작업이었음에도 작업이 안전하게 이뤄지는지 관리감독해야 할 작업지휘자도 없었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 현대중공업 측은 “각 생산현장에서 토론을 통해 도출한 현장 안전의 문제점과 개선안을 바탕으로 표준작업지도서와 유해위험성평가서를 전면 재검토할 것”이라며 “공정별 특성에 맞춰 보완 및 재개정함으로써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작업 환경을 구축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현대중공업의 성공적인 IPO와 향후 투자 유치를 위해서는 ESG 부문의 강화가 필수적이다. 정기선 부사장은 현재 현대중공업그룹 미래위원회 위원장을 맡으면서 AI, 바이오, 수소·에너지 등 ESG를 포함한 신사업 분야의 사업모델을 모색하고 있다. 계획대로 투자를 받지 못하면 신사업에 차질이 생기고, 나아가 정 부사장의 입지에도 영향이 미칠 수 있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