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검 장악’ 관심과 아이돌급 인기…선수들 불화설 왕따설에 SNS 댓글로 고통받아
수년째 흥행 상승곡선을 이어온 여자배구는 겨울 스포츠 ‘킬러 콘텐츠’로 자리 잡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사진=연합뉴스
#겨울 스포츠의 메인
온라인에서도 여자배구의 인기와 위상을 실감할 수 있다. 유튜브에서는 배구나 스포츠를 다루지 않는 채널에서도 종종 여자배구를 ‘이슈’로 선정해 다룬다. 국가대표급이나 팀의 에이스가 아닌 선수임에도 불구하고 인상적인 장면만 연출한다면 경기 후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에 이름이 오르내리기도 한다.
‘여제’ 김연경의 국내 무대 복귀는 여자배구 인기 상승세에 기름을 부었다. 여전히 세계 최고 기량을 자랑하는 김연경이 11년 만에 V리그로 돌아오자 더 많은 시선이 쏠렸다. 김연경을 비롯해 스타 선수들이 즐비한 흥국생명은 결과에 상관없이 매 경기 화제를 낳았다.
나날이 높아지는 관심 속에 선수들은 ‘아이돌’과 같은 인기를 누리게 됐다. 팬들은 이들의 경기장 위 작은 행동에 반응하고 온라인상 움직임에도 관심을 가진다. 선수가 생일이나 특별한 기록을 세운 날이면 열성팬들의 선물이 쏟아지기도 한다. 인기선수에게는 수만 명의 소셜미디어 팔로어가 있다.
이번 시즌 여자배구의 폭발적 인기는 국가대표 경기가 없는 상황에서도 이어진 일이라 더욱 의미가 있다. 수년간 이어져 온 여자배구에 대한 관심은 국가대표팀의 활약에서 비롯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여자배구 국가대표팀은 역사적으로 올림픽에 비교적 꾸준히 출전해왔고 아시안게임에는 메달권 내에 안착하는 강팀이다. 월드컵 등 세계대회에서도 10위권 순위를 기록해왔다.
2012 런던올림픽이 결정적 계기가 됐다. 김연경을 필두로 김사니, 한송이, 황연주, 양효진 등이 나선 이 대회에서 대표팀은 4강에 진출하는 기염을 토했다. 김연경은 대회 MVP에 선정됐다. 이후 대표팀은 꾸준히 호성적을 냈고 이는 V리그 인기로 이어졌다.
좋지 않은 상황에서 맞이한 이번 시즌에도 여자배구 인기는 시들지 않았다.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의 세계적 대유행으로 국제대회가 열리지 못했고 2019-2020 V리그는 플레이오프를 치르지 못하고 비정상적으로 시즌을 마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시즌 V리그 여자부는 어느 때보다 높은 관심을 받고 있다. 무관중 경기를 강요하는 코로나19도 이들의 흥행에 걸림돌이 되지 못했다.
김연경의 흥국생명 입단은 여자배구 흥행의 기폭제가 됐다. 사진=박정훈 기자
#불화·왕따…크고 작은 설설설
빛이 강하면 그림자도 짙은 것일까. 선수들의 일거수일투족이 지대한 관심을 받으면서 여자배구 내에 크고 작은 구설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이번 시즌 배구계를 가장 크게 뒤흔든 사건은 유력한 우승 후보로 꼽히는 흥국생명의 불화설이었다. 주전 세터 이다영이 누군가를 겨냥한 듯한 글을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반복적으로 게시, 팬들의 궁금증을 자아냈다. 이와 함께 들쑥날쑥한 경기력에 질타가 쏟아졌다. 필요 이상으로 불화설이 확대 재생산되기도 했다.
결국 갈등의 대상은 김연경으로 밝혀졌다. 배구 전문 매체 ‘더 스파이크’는 한 관계자가 “(이다영이) 날을 세운 상대가 김연경이었다”고 한 말을 보도했다. 둘의 인스타그램 팔로어만 모두 100만 명에 육박한다. V리그 최고의 이슈메이커 2명의 충돌에 시선이 쏠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다만 갈등설이 불거지는 과정에서 대중의 과도한 관심은 선수들에게 부담으로 작용했다.
최근에는 또 다른 구단이 ‘왕따설’에 휩싸이기도 했다. 경기 중 코트 위 세리머니나 웜업존에서 벌어지는 응원전에서 A 선수가 배제되는 듯한 모습이 포착됐기 때문이다. 팬들은 즉각 왕따설을 제기했다. 동료들이 ‘왕따’로 지목된 선수의 소셜미디어에서 팔로를 끊거나 차단했다는 사실이 증거로 제시됐다.
온라인에서 이 같은 왕따설이 불거지자 일부 선수들은 그 선수와 다시 친구를 맺는 움직임을 보이기도 했다. 논란이 이어졌지만 A 선수는 경기가 끝난 후 “승리해서 좋다. 최선을 다하겠다”는 덤덤한 인터뷰를 남겼다. 부정적 이슈의 확대 재생산을 막은 것이다. 구단은 ‘연패 기간 선수 간 논쟁이 있었지만 승리 이후 분위기가 돌아왔다’고 해명했다.
지난해 12월에는 ‘국셔틀’ 논란이 일기도 했다. 한국배구연맹(KOVO)은 영상 콘텐츠를 제작하며 한 구단의 식사 장면을 공개했다. 선배 선수가 식사하는 도중 후배 선수가 국을 떠다 주는 장면이 공개돼 논란을 낳았다. 후배가 선배의 식사를 일일이 준비해주는 것이 ‘후진적 문화’라는 지적이 나왔다. KOVO 측이 “의도와 다르게 선수들과 팬들에게 걱정을 끼쳤다”고 사과하면서 사건은 일단락됐다.
전성시대를 구가하고 있는 여자배구에 밝은 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사진=한국프로배구연맹 페이스북
이들 사건 모두 악의적인 댓글 공격이라는 공통분모가 있다. 이전부터 악성 댓글로 인한 고통을 호소하던 선수들은 더 많은 진통에 시달리고 있다. 수년 전부터 선수들이 이따금씩 고통을 호소했지만 상황은 더욱 악화하고 있다. 과거 경기 결과를 놓고 벌어지는 질타가 주된 내용이었다면 최근에는 여자배구 인기 상승과 함께 선수들의 작은 움직임에도 반응이 실시간으로 전달되고 있다.
이번 시즌 개막에 앞서 배구계는 한 선수가 유명을 달리하는 충격적인 사건을 겪었다. 이 사건을 기점으로 포털사이트 스포츠 섹션의 댓글이 폐지됐지만 악성 댓글은 근절되지 않고 있다. 소셜미디어 댓글이나 다이렉트 메시지 등 더욱 은밀한 곳으로 파고들었다. 선수들의 소셜미디어는 하루가 멀다 하고 ‘마녀사냥’이 벌어지는 광장이 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해설위원은 “배구 인기가 높아졌다. 과거와는 상황이 다르다. 스포츠 구단도 다른 집단과 마찬가지로 갈등이 일어날 수도 있는 것이다. 특히 감수성이 예민한 젊은 선수들이 모여 생활한다. 조용히 넘어갈 수 있던 과거와 달리 요즘은 작은 일도 크게 확대가 되는 상황이다”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달라진 환경만큼 선수들도 더욱 프로페셔널한 태도를 보일 필요가 있다. 팬분들도 조금은 너그러운 마음으로 넘어가 주셨으면 한다. 무심코 단 댓글에 상처받는 선수가 많다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난 7일, ‘여자배구 스타’로 표현된 한 선수가 구단 숙소에서 쓰러져 병원으로 후송됐다는 소식이 전해져 충격을 줬다. 최초 신고 당시 팀 동료가 ‘극단적 선택을 한 것 같다’는 말을 전해 파장이 커졌다. 소식이 전해진 직후부터 팬들 사이에서는 억측과 과한 해석이 난무했다. 일부 콘텐츠 크리에이터들은 기회가 왔다는 듯 선수를 지목하며 마치 사실인 양 콘텐츠를 제작했다.
다행히 선수는 의식을 찾았고 구단 측은 “복통이 심했다. 극단적 선택은 없었다”고 해명했다. 다만 곧 입장을 정리해 밝히겠다는 예고와 달리 8일 오후가 지나도록 아무런 말이 없다. 겨울 스포츠의 ‘이슈 메이커’ 여자배구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기대보다 우려가 짙어진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