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에게 비서가 된 당대 최고 여배우와 피아니스트…알려진 것과 전혀 다른 폭로에 관심 집중
2010년 칸 국제영화제에서 영화 ‘시’가 각본상을 수상한 뒤 귀국해 기자회견에 참석한 윤정희의 모습. 사진=임준선 기자
2010년에는 무려 15년 만에 영화계로 돌아와 이창동 감독의 영화 ‘시’에 출연했다. 이 영화로 윤정희는 제47회 대종상영화제와 31회 청룡영화상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으며 건재함을 과시했다. ‘시’는 제63회 칸 국제영화제에도 각본상을 수상했는데 당시 윤정희는 칸 영화제의 유력한 여우주연상 후보였다. 비록 여우주연상 수상을 불발됐지만 심사위원장이었던 팀 버튼 감독은 폐막식이 끝난 뒤 윤정희를 만난 자리에서 “내 마음을 움직이는 연기였다”며 극찬했다.
폐막식을 앞두고는 윤정희와 함께 유력한 여우주연상 후보였던 프랑스 국민배우 줄리엣 비노쉬를 만났다. 이 자리에서 줄리엣 비노쉬는 “여기저기서 당시에 대해 너무 많은 얘길 들어 꼭 한 번 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결국 그해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은 줄리엣 비노쉬에게 돌아갔다.
윤정희는 1976년 ‘건반 위의 구도자’로 불리는 백건우와 프랑스 파리에서 결혼했다. 이들이 처음 만난 것은 1972년 독일에서였다. 당시 윤정희는 신상옥 감독과 함께 독일 뮌헨문화올림픽에 ‘효녀 심청’을 들고 참석했고, 백건우는 고 윤이상 작곡가의 오페라 ‘심청’이 초연을 앞두고 있는 상황이라 독일을 찾았다.
MBC ‘무릎팍도사’에 출연했을 당시 윤정희는 “오페라 계단에 순수하게 생긴 한국 남자가 있었다. 당시 자리를 잘 몰라 그분에게 좌석을 물었더니 친절하게 안내해줬다. 오페라가 끝난 뒤 식사 자리에서 그 청년이 윤이상 선생님 옆에 앉았다. 윤이상 선생님이 훌륭한 피아니스트라고 소개해줘서 알게 됐다”라며 백건우와의 첫 만남을 회상했다.
본격적인 만남은 2년 뒤에 운명적으로 이어졌다. 당시 파리로 유학을 떠났던 윤정희는 친구와 영화를 본 뒤 짜장면이 먹고 싶어 식당에 갔는데 거기서 우연히 백건우를 만난다. 2년여 만에 우연히 백건우를 재회한 순간 윤정희는 천생연분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렇게 다시 인연이 이어진 두 사람은 몽마르트르 언덕에 집을 얻어 동거를 시작했다.
결혼식은 1976년 3월 재불 화가 이응로의 집에서 조촐하게 열렸다. 신랑 신부 모두 웨딩드레스와 양복 대신 한복을 입었고 예물도 백금 반지 한 쌍이 전부였다고 한다. 신혼 생활은 파리에서 시작했다.
이들 부부는 옛 유고슬라비아의 자그레브로 연주 여행을 떠났다가 납북될 위기를 겪기도 한다. 윤정희가 당시 공산권인 유고슬라비아 연주 여행까지 동행한 까닭은 결혼 이후 이들 부부가 늘 모든 공식석상에 함께했기 때문. 윤정희는 늘 백건우의 연주 여행에 동행했고 백건우 역시 윤정희의 영화 관련 행사에 늘 함께했다. 이처럼 매순간을 함께한 까닭에 휴대전화도 각자 쓰지 않고 한 대를 같이 썼다.
백건우에게 윤정희는 아내이자 비서였고, 윤정희에게 백건우는 남편이자 비서였다. 배우와 피아니스트로 각자의 영역에서 세계적인 위치에 올라설 만큼 열정적으로 일한 두 사람에게 배우자는 동료 예술가이자 최선을 다해 내조를 해주는 비서였다. 백건우의 공연이 있는 날이면 무대 뒤 대기실에서 남편의 구두를 닦고 연주용 연미복을 관리해주던 윤정희는 평소 “나 아니면 아무도 백건우 비서 노릇을 못할 거야”라는 말을 자주 하곤 했다.
2011년 윤정희가 프랑스 문화커뮤니케이션부에서 프레데릭 미테랑 문화부 장관으로부터 문화예술공로훈장 오피시에를 수상한 뒤 남편 백건우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두 사람의 동행은 윤정희가 알츠하이머 투병을 시작한 뒤에도 계속됐다. 이들의 딸인 백진희 씨는 2019년 모친 윤정희의 투병 사실을 공개했다. 당시 경향신문 인터뷰에서 백진희 씨는 “올해 초까지도 함께 지내셨는데, 그야말로 아빠가 버티신 거죠. 세계 곳곳을 다녀야 하는 피아니스트인데, 사실은 불가능한 상황을 인내하신 거죠”라며 “의사들도 그렇게 얘기해요. 어떻게 엄마와 동행하면서 연주를 다니셨냐고”라고 말했다.
윤정희의 알츠하이머 투병은 2009년 정도부터 시작됐다고 한다. 2010년 영화 ‘시’에서 알츠하이머 환자 역할을 연기해 세계적인 호평을 받았는데 이 영화를 촬영할 당시에 이미 알츠하이머 초기였다고 한다. 백건우는 “아마 촬영을 하면서는 이(창동) 감독도 아내 상태를 조금이나마 눈치 챘을 겁니다”라고 말한다. 그렇게 2009년 즈음부터 2019년 초까지 백건우는 윤정희의 좋은 비서이자 간병인 역할을 소화했다.
2019년부터 윤정희는 딸 진희 씨 아파트 바로 옆집에서 지내고 있다. 2019년 11월 경향신문 인터뷰에서 백진희 씨는 “파리 근교의 호숫가 마을에 엄마를 위한 집을 구했다”고 밝혔다. 간호사들이 돌아가며 24시간 돌보고 전문의들이 집을 방문해 치료해주고 있는데 하루 세 끼 식사는 진희 씨가 직접 챙기고 있다고 밝혔다. 딸과 함께 인터뷰에 응한 백건우는 “많이 허전하다. 40년 동안 매일 24시간씩을 거의 붙어있던 사람이 지금 곁에 없으니까”라며 “그저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정성을 다해 엄마를 보살피고 있는 딸한테 고마울 뿐이다”라고 밝혔다.
여기까지가 윤정희와 백건우가 직접 얘기한 40여 년 부부의 이야기다. 그리고 누군가가 윤정희가 아픈 뒤, 특히 최근 1~2년 사이의 일을 두고 알려진 것과는 전혀 다른 부부의 이야기를 폭로해 세간의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다.
이호연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