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면제 정권’ 오명 가리기?
고위공직자들의 병역기피 의혹과 이에 대한 국민의 원성이 끊이지 않고 있는 가운데 최근 병무청의 ‘이상한’ 홈페이지 개편이 도마 위에 올랐다. 고위공직자들의 병역 사항을 한눈에 알 수 있게 되어 있었던 기존 시스템이 홈페이지 개편으로 인해 일반인들이 쉽게 알아볼 수 없도록 변경된 것이다. 그 내막을 들여다봤다.
병무청은 지난 1999년 10월 29일 ‘공직자 등의 병역사항신고 및 공개에 관한 법률’에 따라 1급 이상 고위 공무원과 선출직 공무원은 자신을 비롯해 직계비속까지 병역 이행 여부를 공개하고 있다. 2004년 12월부터는 공개 대상을 4급 이상 고위공직자로 확대·적용하고 있다. 공직을 이용한 부정한 병역 면탈을 방지하고 병역의무 자진이행 분위기를 조성하는 한편 병무행정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높이기 위함이라는 것이 병무청이 설명이었다.
그런데 지난 9월 중순 병무청은 이상한 홈페이지 개편을 단행했다. 병역이행 여부를 한눈에 식별할 수 있게 했던 병역 구분란을 아예 삭제시킨 것이다. 개편 전 병무청 홈페이지 고위공직자 병역조회란을 살펴보면 ‘군필’과 ‘면제’가 확실히 기재되어 있었다. 하지만 병무청은 은근슬쩍 이 구분란을 없애버렸다.
병역조회의 애초 목적이 군 면제 여부와 그 사유를 국민들이 알 수 있게 하기 위함이라는 점에서 병무청의 이번 홈페이지 개편은 여러 가지 의혹을 남기고 있다. 특히 이명박 대통령을 비롯해 상당수의 현 정권 고위공직자들이 군대 문제에 있어 의혹을 받았다는 사실과 맞물려 논란을 증폭시키고 있다.
실제로 주요 군면제 고위공직자들의 병역사항을 조회해본 결과 이들의 조회화면에 찍혀있던 ‘면제자’라는 꼬리표는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다. 이명박 대통령의 경우 과거 구분란에 ‘면제자’라고 명확히 기재되어 있었지만 이제는 그 기록이 사라지고 ‘1963년 입영 후 귀가(질병), 1964년 징병검사기피, 1964년 무종 재신체검사대상, 1965년 병종 제2국민역 질병(결핵폐활동성경도, 기관지확장증고도)’ 등 병역 관련 과정에 대해서만 나와 있다. 공개된 정보만 보고서는 군면제 사유 및 대상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하는 일반인들의 경우 군대를 다녀왔는지, 질병으로 인해 방위를 했는지, 병역면제를 받았는지를 구분하기 어렵게 된 것이다.
이 대통령의 형 이상득 의원의 아들 지형 씨도 과거 구분란에 ‘면제자’라고 적시되어 있었으나 현재는 ‘1988년 1급 현역병입영대상, 1989년 입영연기, 1989년 4급 병역처분변경원, 1989년 보충역, 1990년 입영후 귀가(질병), 1990년 5급 제2국민역 질병(수핵탈출증)’으로만 나와 있다.
한나라당 안상수 대표도 마찬가지로 ‘면제자’ 딱지를 뗐다. 안 대표는 1966∼1967년 징병검사 기피를 시작으로 1969년에는 질병으로 입영기일을 연기했다. 1970년 2급 입대 판정을 받았지만 응하지 않아 1971년에는 ‘입영기피’로 분류됐다. 그는 1973∼1974년 입영기일을 연기했는데 그 사유는 ‘행방불명’이었다. 이어 1975년 질병으로 입영기일을 다시 연기했고, 1977년 신체 결함에 따른 보충역 판정을 받았지만 1978년 ‘고령’으로 소집 면제됐다.
석연찮은 병역면제 의혹으로 곤욕을 치렀던 정운찬 전 국무총리 역시 마찬가지다. ‘이명박-정운찬-안상수’ 등 이른바 ‘병역면제 트리오’는 이들이 현 정권과 여당을 대표하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국민들에게 큰 허탈함을 안겨주었다.
현 정부에 몸담았거나 현직에서 활동하고 있는 고위공직자들의 군면제 실상은 더욱 참혹하다. 권력의 핵심이었던 정정길 전 대통령 비서실장과 국가안보를 책임지고 있는 원세훈 국정원장도 군 면제자다. 지난 10월 2일 이명박 정부 세 번째 국무총리로 공식 취임한 김황식 총리도 마찬가지다.
이유야 어찌됐든 정부 고위관료와 현 정권에서 활동하는 파워엘리트들 중에는 부자가 모두 병역을 면제받은 경우도 있다. 정종환 국토해양부 장관과 전광우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윤여표 전 식품의약품안전청장 등은 본인과 아들이 모두 군 면제를 받았다.
하지만 이번 병무청 홈페이지 개편으로 인해 이들은 대외적으로 ‘면제자’ 딱지를 떼고 일반인들이 자세히 따져보기 전에는 알 수 없는 애매모호한 병역사항만 공개되는 행운을 얻은 셈이다.
이번 병무청의 ‘병역 구분란’ 삭제 논란의 핵심은 윗선의 지시가 있었는지 여부다. 공직자들의 병역문제가 국민들의 큰 관심이 되고 있는 상황에서 병무청이 한 눈에 면제 여부를 알 수 있게 만든 란을 삭제했다는 게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특히 이 대통령을 비롯해 현 정권 수뇌부의 상당수가 군면제자로 국민들의 거센 비난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에서 병무청이 홈페이지를 개편한 배경에 강한 의구심이 제기되고 있는 형국이다.
더욱이 이는 애초 병무청이 공직자 병역사항 공개와 관련해 언급했던 본연의 알림 기능에도 맞지 않다는 비판도 가열되고 있다. 일반 국민들은 ‘군필’인지 ‘면제자’인지 여부에 관심이 있을 뿐 그들의 세세한 병역사항을 궁금해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병무청이 돌연 홈페이지에서 구분란을 없앤 이유는 무엇일까. 일각에서는 군 면제 고위공직자들이 진을 치고 있는 현 상황에서 병무청이 ‘윗선 눈치’를 보고 알아서 삭제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일부러 찾아서 따져보기 전에는 알 수 없게끔 애매모호하게 바꿔놓은 게 아니냐는 관측에 힘이 실리고 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청와대나 여권 실세 측에서 병무청에 외압을 행사한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이러한 의혹에 대해 병무청 측은 “다른 의도는 없다. 더구나 누군가의 지시에 의해 기존의 구분란을 삭제한 것은 절대 아니다”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병무청 관계자는 “홈페이지 조회란에서 구분란을 삭제한 것은 공직자 등의 병역사항 신고 및 공개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에 따른 것이다. 고위공직자 병역사항은 관보와 병무청 홈페이지에 동시에 공개하도록 되어 있다. 그런데 원래 병역사항 공개 시행규칙 서식에는 구분란이 없다. 관보에도 따로 면제자 구분란을 두지 않았었다. 따라서 이번 조치는 관보와 홈페이지 서식을 통일시키기 위함일 뿐 면제자 구분을 모호하게 하려는 등의 다른 불순한 의미는 전혀 없다. 윗선에서 그런 지시를 받은 바도 없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1999년 고위공직(후보)자와 그 직계비속에 대한 병역사항을 공개하기로 한 이후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구분란’이 있어왔다는 점에서 병무청의 설명은 뭔가 부족해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현 정부 고위 관료들의 병역기피 문제가 정권의 아킬레스건으로 끝없이 회자되고 있는 상황에서 병무청이 10여 년 만에 돌연 ‘병역 구분란’을 폐기한 배경을 둘러싼 국민들의 의구심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