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수사 후 백운규 영장 재청구 가능성 높아…이상현 부장검사 이동 여부 주목
곧바로 여권에서 “정부 정책에 대한 정치적 수사”라는 비판이 제기됐지만, 거꾸로 검찰은 ‘더 수사해 입증하겠다’며 칼을 갈고 있다. 검찰 중간간부 인사가 끝나면 백 전 장관 및 청와대 관계자들에 대한 소환조사 후 영장 재청구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다시 영장을 청구할 경우 청와대 핵심 관계자를 포함한 ‘여러 명’을 향한 일괄 영장 청구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월성 1호기 원전 경제성 평가 조작에 관여한 혐의 등으로 검찰이 구속영장을 청구한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2월 9일 오전 법원이 영장을 기각한 뒤 대전 유성구 대전교도소를 나서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영장 기각한 법원 판단 살펴보니
대전지검 형사5부는 백 전 장관이 원전 이용률의 BEP, 즉 손익분기점 조작을 지시했다고 판단했다. 이를 구체적으로 지휘한 책임이 있다고 보고,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하지만 법원은 검찰 주장에 대해 ‘입증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오세용 대전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백 전 장관 범죄 혐의에 대한 검찰 소명이 충분히 이뤄졌다고 보기 부족하다”며 검찰 수사가 다소 부족했음을 지적했다. 또 “범죄 혐의에 대해 다툼의 여지가 있어 보여 피의자에게 불구속 상태에서 방어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보장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최근 법원에서 ‘직권 남용’에 대해 엄격한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백운규 전 장관에게도 영향을 미쳤다는 평이다. 실제 오세용 부장판사는 “확정적이지 않은 개념을 요건으로 하는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를 해석·적용할 때에는 죄형법정주의에 따라 엄격해석 원칙과 최소 침해 원칙을 준수해야 한다”며 “백 전 장관이 원전 즉시 가동중단을 지시하거나 경제성 조작을 지시한 사실이 없다고 다투는 상황에서 검찰이 혐의를 모두 입증하지는 못했다”고 설명했다.
법원은 검찰의 영장 청구에 대해 통상 △범죄 혐의의 중대성 △증거인멸 및 도주 가능성을 고려해 발부 여부를 결정한다. 백 전 장관에 대해 법원이 ‘혐의는 다툼 여지가 있고, 증거인멸 우려도 없다’고 상세히 밝힌 기각 이유는 검찰 수사 비판으로 연결됐다.
청와대는 영장 기각 다음날인 2월 10일 “월성 원전 1호기 폐쇄가 사법적 판단의 대상이 되는 것을 납득할 수 없다”는 검찰 수사 직접 비판 입장을 내놓았다.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은 ‘월성 원전 수사’ 관련 서면브리핑을 통해 “청와대 지시 여부 등은 재판이 진행 중인 사안이어서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겠다”면서도 “월성 원전 1호기 폐쇄는 대통령 공약사항이고 정부의 주요 정책 과제로 선정돼 공개적으로 추진됐던 사안”이라며 검찰 수사가 ‘적절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SNS를 통해 “국가 정책의 방향성에 옳고 그름을 따지고, 법의 잣대를 들이대면 공직자는 소신을 갖고 일할 수 없다. 검찰은 검찰의 일을, 정부는 정부의 일을 해야 한다”고 비판했고, 이낙연 민주당 대표도 “정책 결정 과정까지도 검찰의 사법적인 관찰 대상으로 삼겠다는 것은 아니길 바란다”고 반발했다.
#여전히 수사팀 의지 상당, 윤석열 판단은?
그럼에도 대전지검 수사팀에서는 영장 재청구 필요성에 대한 목소리가 높다. 특히 검찰은 백 전 장관이 2018년 4월 이후 한국수력원자력 간부들을 상대로 “월성 1호기를 계속 가동하면 경제성을 보장하기 어렵고 이용률이 54.4% 미만으로 내려가면 손실이 난다”는 거짓 서류를 작성하도록 했다고 보고 있다.
검찰에 따르면 한수원은 월성 1호기의 경제성 등을 고려해 폐쇄 이후에도 2~3년 추가로 가동하는 안을 검토하고 있었는데 정작 한수원은 백 전 장관의 지시를 받은 뒤 허위 문건을 작성해 월성 1호기 조기 폐쇄로 방향을 바꿨다. 백 전 장관은 “허위 문건 작성과 거짓 증언을 지시한 적이 없다”는 입장이지만, 검찰 관계자는 “관련 진술들이 이미 어느 정도 확보됐다”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특히 검찰 수사 과정에서 증거인멸 및 자료조작 혐의를 일부 인정한 산업부 원전산업정책과 정 아무개 과장 등은 “지난해 감사원 감사 당시 백 전 장관 등으로부터 감사관에게 했던 이야기를 번복하라는 압박을 받았다”는 취지의 진술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선 검찰 관계자는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에 대해 검찰이 영장을 청구한다는 것은 무리하게 하는 게 아니라 ‘할 수밖에 없어서 하는 것’이라고 봐야 하지 않겠느냐”며 “수사팀에서는 영장 기각에 대해 ‘다시 청구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고 귀띔했다. 백 전 장관은 물론 당시 청와대 윗선으로의 수사를 진행하려던 수사팀이 ‘영장 기각’으로 잠시 주춤하고 있지만 다시 호흡을 가다듬고 수사를 재개할 것이라는 분석이 힘을 받는 대목이다.
특수통 검사 출신의 변호사는 “보통 영장이 기각된 뒤 무리한 수사라고 비판이 나올 경우, 수사팀은 사건 관련 ‘더 높은 윗선’을 수사한 뒤 관여된 위와 아래 관계자 모두를 상대로 영장을 청구해 ‘1명 이상’ 영장을 받아내는 전략을 쓰기도 한다”며 “1명이라도 영장이 나올 경우 비판을 잠재울 수 있기 때문인데, 나라면 사건 관련해 윗선을 모두 수사한 뒤 백 전 장관 등 여러 명에게 동시에 영장을 청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수사팀도 영장 기각 후 앞으로의 수사 방향 및 일정을 놓고 여러 방향을 재점검한 것으로 알려졌다.
월성 원전 수사 향방과 관련해 윤석열 검찰총장의 판단이 어떻게 나올지도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사진=박정훈 기자
사건을 챙겨 온 윤석열 검찰총장의 판단이 어떻게 나올지도 관심이 모아지는 대목이다. 앞서의 변호사는 “보통 첫 번째 영장 청구는 수사팀의 입장을 대검이 최대한 고려해 주는 게 일반적이고 윤석열 총장의 리더십 스타일이기도 하다”면서도 “한 번 기각이 나온, 또 정치적으로 얽혀 있는 사건에 대해서는 총장이 ‘고 또는 스톱’ 중 하나의 의견을 피력하고 수사팀도 이에 따라가는 게 통상적”이라고 말했다. 결국 두 번째 영장 청구는 윤석열 총장의 판단이라고 봐도 무방하다는 의미다.
#소폭 그친 인사 후 다시 속도전 가능성
변수는 인사다. 설 연휴 전 법무부는 검사장급 이상 검찰 고위간부 인사에서 단 네 명의 자리 이동으로 끝냈다. 대전지검 이두봉 지검장은 유임이 결정됐다. 하지만 임박한 것으로 알려진 차장·부장 교체에 대전지검 형사5부 이상현 부장검사가 이름을 올릴지 관심이 쏠린다. 실무자로 수사를 이끌어가는 이상현 형사5부 부장검사가 필수보직기간 1년을 채워 인사 대상에 해당한다. 다른 곳으로 발령이 나고, 신임 부장검사가 온다면 사건 파악 및 지휘에 있어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하다.
검찰 관계자는 “인사를 앞두고 자신이 맡았던 사건이 다른 후임에게 넘어갈 수 있다는 것은 수사를 적극적으로 할 수 없게 만드는 요소 가운데 하나다. 새로 부장검사로 올 경우 이런 큰 사건을 파악하는 데 일주일 정도 걸리고 사건 구조 설계를 손본다고 하면 2~3주의 시간이 필요하다”며 “지검장이 유임됐다고 하더라도, 수사 실무를 담당하는 부장검사가 전보될 경우 수사의 연속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서환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