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적행위 수사 가능성 없다’ 중론…대전지검 기존 수사 몰아붙이는 동력 될 듯
국민의힘은 “극비리로 북한에 원전을 지어주는 방안을 추진했다”고 문재인 정부를 비난하고 나섰고, 이에 문재인 대통령은 직접 나서 “구시대 유물 정치”라고 반박했다. 하지만 여전히 야당에서는 특검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등 수사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법조계 반응은 냉정하다. ‘수사 가능성은 없다’는 게 중론이다. 야당이 언급하고 있는 이적행위로 보기에는 실제 정책 추진 등이 전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전지검 수사가 ‘적절했다’고 볼 명분이 하나가 추가됐을 뿐, 실질적으로 수사가 이뤄지기에는 범죄 혐의 구성이 부족하다는 분석이다.
국민의힘은 “극비리로 북한에 원전을 지어주는 방안을 추진했다”고 문재인 정부를 비난하고 나섰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 1월 31일 오후 국회에서 대북 원전 의혹 긴급 대책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박은숙 기자
#공소장 끝 삭제 목록 리스트에서 시작된 의혹
대전지검 등에 따르면 공용전자기록 등 손상·감사원법 위반·방실침입 혐의를 받는 산업부 공무원 3명이 감사원 감사 직전 삭제한 자료는 530건. 대부분 원전 관련 자료들이었는데, 이 안에는 북한 원전 관련 문건 파일도 포함돼 있었다. 북쪽이라는 뜻의 ‘뽀요이스’(pohjois)라는 핀란드어 명의 폴더나, ‘북한 원전 추진’ 줄임말로 추정되는 ‘북원추’ 명의 폴더 등에는 북한 전력 인프라 구축을 위한 단계적 협력과제나 북한 전력산업 현황과 독일 통합사례 파일 등이 들어 있었다(관련기사 ‘하필 1·2차 정상회담 사이에…’ 여의도 덮친 ‘북한 원전 파일’ 후폭풍).
공소장이 언론에 드러나면서 삭제됐던 파일 목록 리스트에서 시작된 이슈는 정치권으로 옮겨 붙으며 더 확산됐다. 산업부는 “2018년 4월 27일 제1차 남북정상회담 이후 남북 경협이 활성화될 경우를 대비해 부서별로 다양한 실무 정책 아이디어를 검토한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논란은 커졌고 결국 실제 문서까지 공개에 나섰다.
실제 산업부가 공개한 해당 문건에는 △북한 금호 지구에 건설하는 안 △DMZ에 건설하는 안 △경북 울진에 건설하고 북한에 전력을 전달하는 안 등 크게 3가지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원전 건설을 검토했다. 또, 원전 사용 후 핵연료 처분에 대해서 남한 측에서 처리하는 안도 언급하며 ‘국민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적시하기도 했다.
산업부는 “아이디어 차원이고 실제 진행된 것은 없다”고 해명하고 있지만, 야당에서는 ‘북한과의 정상회담 때 건네진 USB를 공개하라’고 주장하고 있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북한에 원전을 지어 주려 한 충격적인 이적행위”라고 주장했고,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특검을 요구하고 있다.
김민석 청와대 대변인은 곧바로 “북풍공작과도 다를 바 없는 무책임한 발언이며, 묵과할 수 없다. 김 위원장은 발언에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맞섰고, 문재인 대통령도 “가뜩이나 민생이 어려운 상황에서 버려야 할 구시대의 유물 같은 정치로 대립을 부추기며 정치를 후퇴시키지 말기를 바란다”고 반박하고 나섰다.
#수사 필요성? 법조계 “가능성 희박”
여야 정치권을 중심으로 공방이 계속되고 있는 만큼 검찰이 추후 이에 대한 직접 조사를 추가로 할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하지만 법조계는 ‘수사 가능성은 0%에 가깝다’고 설명한다.
검찰 관계자는 “월성 원전 의혹 수사의 핵심은 증거 인멸과 원전 관련 경제성 평가 조작”이라며 “이번 논란은 증거 인멸 중 삭제된 자료들의 제목 등을 나열하다가 언론과 정치권에서 관심을 가진 것일 뿐, 검찰 입장에서는 이번 수사 핵심과 완전 동떨어졌다. 수사를 할 이유가 없어 보인다”고 설명했다.
북한에 원전을 짓는 내용을 추진하는 것이 ‘이적행위’로 보기에도 애매하다는 설명도 나온다. 공안 수사 경험이 많은 법조인은 “이적행위로 보고 처벌을 하려면 국가보안법을 적용해야 할 텐데 딱히 적당한 혐의도 없을 뿐더러, 국보법에 자주 언급되는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점을 알면서도 저질렀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며 “북한과의 외교 정책 과정에서의 아이디어로 보는 게 적절하다”고 평가했다.
검사장 출신의 변호사도 “정권이 바뀐 뒤라면 모를까 지금은 검찰에서 쉽게 접근하기에는 법적으로 처벌할 여지도 많지 않고 나온 의혹들도 수사를 착수하기에 턱없이 부족한 이슈”라고 단언했다. 대검찰청 관계자 역시 “검찰이 그동안 수사 도중 드러난 다른 범죄에 대해 수사를 한 것을 놓고 ‘별건 수사’라고 비판을 받아왔는데, 본 의혹과 다른 내용이 나왔다고 해서 갑자기 수사를 한다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다”며 “야당에서 검찰 수사가 아니라 국정조사나 특검을 얘기하는 것도 이 같은 부분들을 알기 때문에 그런 것 아니겠느냐”고 반문했다.
다만 검찰이 북한 원전 관련 문건 파일이 삭제되는 것에 대해, 이미 기소된 산업부 공무원들 외에 윗선의 개입 여부는 확인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감사 전 자료를 삭제하는 과정에서 북한 원전 관련 파일들을 포함시키기 위한 지시 등이 있었는지 여부는 충분히 질문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또, 대전지검이 시작한 수사에 ‘동력’은 충분히 될 수 있다는 평이 나온다.
법조계에선 북한 원전 파일 논란이 대전지검 수사에 ‘동력’은 충분히 될 수 있다는 평이 나온다. 실제 검찰은 1월 25일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을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 조사한 뒤, 구속영장 청구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 사진=박은숙 기자
그동안 대전지검 형사5부가 원전 월성 1호기 경제성 조작 의혹을 수사하는 것을 놓고 정치적이라는 비판을 받았던 것에 대해 ‘수상한 부분들이 있었다’는 평가를 받아내기에는 충분했다는 설명이다. 앞선 변호사는 “검찰에 대한 비판적인 여론이 적지 않은 가운데, 검찰 수사가 ‘유의미한 사실’들을 찾아내며 권력을 견제하는 역할을 했다라고 평가받을 수 있다는 점은 수사팀 입장에서 훌륭한 동력이 된다”며 “이를 기회 삼아, 북한 원전 관련 수사를 전혀 진행하지 않되 기존 수사를 더 탄력적으로 몰아붙여 빠르게 마무리하려 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검찰은 1월 25일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을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 조사한 뒤, 구속영장 청구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 경제성 평가 조작 과정에서 백 전 장관의 지시가 있었다고 보고 있는 검찰은 영장 청구를 거의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백 전 장관 신병 결정 후에는 채희봉 청와대 당시 산업정책비서관도 소환해 ‘청와대 개입 여부’를 확인할 방침이다.
서환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