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사회, 성비위 수차례 지적에도 ‘2차 가해’에 속수무책…사측 “2차 가해 가중해 중징계인 정직 처분”
#한국마사회에서 불거진 성추행 사건…피해자도 다수
한국마사회 감사실이 올해 1월 한국마사회에 제출한 특정감사 결과에 따르면 A 씨는 다수의 여성 직원들에게 밀착해 팔짱을 끼거나 어깨를 주무르는 등 부적절한 신체접촉을 했다. 피해자들은 A 씨가 여럿이 있는 자리에서 성적수치심을 느끼게 하는 언행까지 했다고 주장했다. A 씨는 2018년 경마지원직으로 입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마지원직은 경마개최·운영 업무를 보조하기 위한 근로자로 주 1~3일 근무한다.
한국마사회 직원 A 씨가 직원들을 상대로 성추행을 저지른 것이 확인돼 논란이 되고 있다. 경기도 과천시 렛츠런파크 서울 본관. 사진=한국마사회 제공
한 피해자는 A 씨의 행동에 대해 거부 의사를 밝혔지만 이후에도 A 씨는 다른 여성 직원에게 다가가 같은 행동을 했다고 진술했다. 일부 피해자들은 A 씨가 나이가 많아 거부 의사를 직접적으로 표현하기 어려웠고, 피해사실을 공론화하면 조직 분위기 저해가 우려돼 신고 시기도 늦어졌다고 진술했다.
A 씨는 한국마사회 성희롱 고충상담원 조사에서 신체적 접촉 사실을 일부 인정했지만 이후 감사실 조사에서는 문제가 된 모든 행위를 부인했다. 그러나 감사실은 A 씨의 주장을 신뢰할 수 없다고 판단해 피해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감사실은 특정감사 결과서에서 “성희롱 고충상담원의 조사 과정에서 A 씨가 스스로 팔짱을 끼는 행동을 취하면서 진술한 것으로 확인했다”며 “이는 감사실 진술에 비해 구체적인 표현이며 A 씨의 진술 번복에 대해 납득할 만한 설명이 없으므로 A 씨의 번복 진술은 믿기 어렵다”고 전했다.
이 밖에 감사실은 △피해자 진술의 주요 내용이 일관된 점 △진술 자체의 모순되는 부분이 없는 점 △피해자가 허위 신고로 A 씨에게 불리한 진술을 할 동기나 이유가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는 점 △다수의 피해자가 유사 피해사실을 공통적으로 진술한 점 등을 근거로 A 씨가 성추행을 했다고 판단했다.
#2차 가해 논란…한국마사회의 책임은?
A 씨는 2차 가해까지 저지른 것으로 나타났다. 감사실에 따르면 A 씨는 성희롱 고충상담원의 조사를 받은 후 메신저 단체 대화방에 조사 사실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해당 대화방에는 성추행 피해자도 입장해 있었다. 뿐만 아니라 A 씨는 피해자가 근무하는 부서에 방문해 동료에게 탄원서 서명을 받으려고까지 시도했다.
여성가족부가 2018년 6월 발표한 ‘직장 내 성희롱·성폭력 사건 관련 처리 매뉴얼’에 따르면 △조직 구성원들에게 피해자 신원이나 사건 내용을 유포하는 행위 △조직 내 지지자 그룹을 형성하는 행위 등은 2차 가해에 해당한다.
실제 A 씨의 이 같은 행동으로 인해 일부 피해자들은 다른 동료들로부터 사건의 신고인이라는 의심을 받아야 했다. 피해자들은 감사실 조사에서 A 씨의 행동으로 인해 신고사실을 후회하거나 두려움을 느낀다고 진술했다.
A 씨의 2차 가해로 인해 일부 피해자들은 다른 동료들로부터 사건의 신고인이라는 의심을 받아야 했다. 연출된 이미지로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계없다. 그래픽=백소연 디자이너
한국마사회는 조직 차원에서 이 과정에서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했다. 여성가족부 매뉴얼에는 “성추행 사건 발생 시 기관장은 피해자가 2차 피해를 당하는 일이 없도록 기관 내 여론을 모니터링하고,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이에 대해 한국마사회 관계자는 “조사 직후 A 씨를 인사부 대기발령 조치했으며 추가 면담 시에도 2차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A 씨에게 주의했고, 해당 부서에도 유의하도록 전달했다”며 “그럼에도 2차 피해가 발생해 내부 규정을 근거로 징계 판단에 가중 요소로 적용했다”고 전했다.
#근절되지 않는 성비위와 경징계 논란
한국마사회는 과거에도 성비위와 관련해 수차례 지적을 받았다. 2018년 10월, 김현권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한국마사회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8년에만 간부급 임직원 4명이 성비위 사건으로 징계 처분을 받았다. 당시 김 전 의원은 “입사 1년차가 상급자의 제안을 거절하기 어려웠다는 진술을 보았을 때 한국마사회의 권위주의적 조직문화와 직장 내 권력 관계를 볼 수 있는 어두운 단면이 드러난 것”이라고 비판했다.
손금주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019년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최근 5년간 88명의 한국마사회 직원이 성희롱, 직장 내 괴롭힘, 음주운전 등의 비위로 징계를 받았다”며 “83%에 해당하는 73명이 근신·견책·감봉 등 경징계에 그쳤다”고 비판한 바 있다. 당시 김낙순 한국마사회장은 “복무기강을 강화하기 위해서 원 스트라이크 아웃제 등 상당히 강한 징계를 하고 있다”고 답했다.
결국 한국마사회는 2020년 10월 ‘직장 내 성비위 근절대책’을 발표하며 내부 단속 강화에 나섰다. 주요 내용은 성비위 징계를 전문적으로 심의하는 특별인사위원회를 설치하고, 징계처분을 받은 사람에 대해서는 근무평가 최하위 등급 부여, 교육·훈련기회 배제, 급여 감액 확대 등 불이익을 강화한다는 것이다. 다만 경마지원직은 별도의 인사 규정을 적용 받기에 특별인사위원회가 아닌 일반인사위원회에서 A 씨를 심의했다.
감사실은 A 씨에게 감봉 이상의 징계를 조치할 것을 한국마사회에 요구했고, 한국마사회는 A 씨에게 정직 처분을 내렸다. 한국마사회는 A 씨의 정직 기간을 외부에 밝히지 않았지만 한국마사회 경마지원직 인사관리규정에 따르면 정직 기간은 1~3개월 내에서 가능하기에 A 씨는 늦어도 3개월 이후 한국마사회 복귀가 가능하다.
성추행을 저지른 직원에게 정직은 상대적으로 가벼운 징계라는 지적도 나온다. 2020년 10월, 노웅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한국수자원공사의 성추행 사건을 지적하면서 “감봉이나 정직 정도로는 직장 내 성범죄를 근절할 수 없다”고 했다. 이에 대해 한국마사회 관계자는 “감사규정에 따르면 견책과 감봉은 경징계의 범위에, 정직과 면직은 중징계의 범위에 속한다”며 “감사처분요구서와 A 씨의 소명, 비위의 유형, 비위의 정도 등을 종합적으로 심의한 결과 중징계인 정직을 처분했다”고 설명했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