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기회라는 생각이 든 일을 그냥 지나가도록 두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니 ‘사치’라 할 만하다. 그런데 사치인가. 좋은 일은 ‘나’를 표현하게 하고 드러내주고 키워주면서 나도 몰랐던 ‘나’를 만나게 한다. 그래야 하는 일을 하기 싫은 사람과 함께해야 한다면 갈등을 감수하느라 행복하게 일할 수 없다.
이주향 수원대 교수
윤 선생이 말한 또 하나의 사치가 있다. 이제는 돈과 상관없이 일하겠다는 것이었다. 돈이 그를 드러내는 가치인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과 상관없이 일하겠다는 그 말도 근사하다. 자본주의를 살면서 자본주의를 뛰어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행태는 꼭 돈이 많기 때문에 가능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보다는 돈으로부터 자유로워졌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어떤 형태로든 돈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평화롭게 먹고 잘 수가 없다. 어쩌면 돈을 버는 이유가 돈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서여야 하지 않을까. 그런 그녀가 상까지 휩쓸었으니 기분 좋게 박수해주게 된다.
모양은 다르지만 돈으로부터의 자유를 배운 또 한 사람이 시선을 끈다. 바로 카카오의 김범수 의장이다. 살아가는 동안 재산의 절반 이상이 사회문제의 해결을 위해 쓰이도록 기부하겠단다. 그가 기부하겠다는 재산의 규모가 너무나 커서 뉴스가 되는 것이겠지만, 그 액수보다는 우리가 다른 사회에서만 보던 모범을 우리 사회에서도 보는 것 같아 고맙고 반가웠다.
그러던 차에 또 한 ‘아름다운 부자’가 나타났다. 우아한 형제들의 김봉진 의장이다. 기부클럽 ‘더 기빙 플레지’에 가입하며 재산의 절반 이상을 사회에 환원하다는 서약서에 서명했다. 그가 말했다. 그것은 자식들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유산이라고. 그럴 것이다. 생각해 보면 돈이라는 권력을 넘겨주는 부모보다 가족을 넘어 함께 사는 세상을 실천하는 부모가 자랑스럽지 않겠는가.
많은 돈은 그 자체로 엄청난 권력이다. 절대반지가 그렇듯이 그것은 가진 자를 드러내지만 또 다른 한편에선 가진 자의 부담이 아닐까. 평생 돈을 지키고, 불리고, 돈 관리만 하면서 어떻게 자유롭게 살겠는가. 그러다가 일생을 다하는 것이라면?
그래도 그것이 추구의 대상일 때가 있다. 열심히 모으고 관리할 때 나눠야 하지 않느냐며 내 의지를 무시하고 가져가려 들면 그것은 나누는 것이 아니라 빼앗기는 것이다. 나눠주는 것과 빼앗기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누구는 그들이 그렇게 귀감이 될 만한 ‘아름다운 부자’가 된 이유를 어린 시절 어려웠던 가정사에서 찾기도 한다. 그럴 수도 있겠다. 그러나 부자도 많고, 어려웠다가 성공한 사람도 많지만, 나눈다는 것, 되돌려 준다는 것은 아무나, 아무 때나 되는 일은 아니다.
내려놓을 수 있는 마음, 나눠주고자 하는 마음, 주변을 보살피고자 하는 마음은 그 자체로 복이다. 그 복은 자기 자리를 찾아가는 힘이기도 하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은 모든 것이 제 자리를 찾아 돌아가는 풍경이라고 하지 않는가. 크면 큰 대로, 작으면 작은 대로 자기 자리를 찾아가는 것, 그것이 존재이유가 아닐까.
그렇게 찾아가다 보면 알게 되는 것 같다. 큰 것이 크지 않고, 작은 것이 작은 것이 아님을. 크다고 일컬어지는 것과 작다고 일컬어지는 것이 사실은 차별이 없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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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향 수원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