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업계 “창업자 경영권 안정 위해 필요” vs 시민단체 “재벌 세습 악용 여지 커”
쿠팡발 차등의결권제 도입 논쟁 활발하다. 서울 서초구의 한 주차장에 주차된 쿠팡 배송 차량들. 사진=연합뉴스
차등의결권은 창업주나 경영자가 자신이 보유한 지분율 이상의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 제도다. 확보한 주식 수보다 더 많은 의결권을 부여하면서 경영권을 방어하는 방식이다. 중소벤처기업부는 제한적 차등의결권주 도입을 내용으로 한 ‘벤처기업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 개정안을 정부입법으로 지난해 12월 국회에 제출한 상태다. 더불어민주당이 2월 23일 전체회의에 상정하고 3월 내 처리를 목표로 설정했다. 국민의힘도 같은 내용의 법안을 발의했기에 큰 이견 없이 통과될 전망이다.
차등의결권이 최근 주목을 받는 이유는 쿠팡의 상장 때문이다. 쿠팡이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한 신고서에서 창업자인 김범석 이사회 의장에게 차등의결권을 부여하면서, 김 의장 보유 주식(클래스B)의 1주당 의결권은 일반 주식(클래스A)의 29배에 이를 전망이다. 한국은 상법 규정에 따라 허용하지 않는 제도다.
중기부가 제출한 법안은 1주당 1의결권만 부여하는 현행 상법에서 비상장 벤처기업에 한해 예외를 인정하는 것이 뼈대다. 1주당 최대 10개 이하의 의결권을 허용하는 내용으로, 대규모 투자 유치로 창업주의 보유 지분이 30%를 밑도는 경우 최대 10년까지 복수의결권 주식을 발행할 수 있도록 했다. 상장 이후에는 남용을 방지하기 위해 3년간 유예기간을 두고 보통주로 전환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벤처·스타트업계는 환영하는 분위기다. 스타트업은 대개 사업 초기 단계에서 사업 자금이 부족해 지분투자 방식으로 외부 자금을 끌어온다. 자연스럽게 창업주 지분율이 희석되는 경우가 많다. 반면 외부 투자자 주주들의 지분율은 늘면서 창업주 의사결정에 반대하는 등 경영권을 위협할 수 있다. 이를 막고자 미국과 영국 등 일부 국가에서는 차등의결권제를 시행하고 있다.
정미나 코리아스타트업포럼 정책실장은 “창업자는 투자금 회수 및 마련을 위해 쿠팡처럼 기업공개(IPO·상장)를 하거나 우아한형제들처럼 인수합병(M&A)를 하는데, 그 과정에서 창업주 지분율은 희석돼 10% 미만으로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며 “지분 투자한 주주들의 이해관계는 다양한데 창업자의 결정권이 약해지면 여러 투자자들에게 휘둘리거나, 계속된 논쟁으로 사업이 진척되지 않을 수 있다”며 제도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등 시민사회단체는 이 제도가 벤처기업 성장과 무관하고 오히려 재벌 세습에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를 내놓는다. 경실련은 지난 2월 17일 성명서를 내고 “재벌 대기업이 존재하는 한국적 특수상황에서 비상장 벤처기업에 대한 복수의결권 허용은 재벌 세습에 악용돼 재벌왕국을 허용하는 제도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창업자 이 외에 다른 주주들의 권익 침해 우려도 나온다. 무능한 창업자가 독단 경영으로 사업에 실패해도 주주들이 견제하거나 교체하기 어렵고, 창업자가 사적 이익만 쫓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1주당 1의결권이 원칙으로 주주는 보유 주식 수만큼 권리를 가져야 한다. 창업주한테 의결권을 더 주면 창업주가 경영에서 실수해도 주주들이 권리를 제대로 발현할 수 없다”며 “지분율 희석이 싫다면 창업자가 지분 투자를 덜 받거나 자사에 대한 보유 지분율을 늘려야지, 낮은 지분율로 사업을 무리하게 확장하는 건 문제”라고 말했다.
김예린 기자 yeap1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