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두막 무단침입 신고에 출동한 경찰 총 탈취 후 도주…팬페이지 개설 기현상도, 과거 절도·상해 전과 재조명
하지만 놀랍게도 그를 응원하는 누리꾼들도 제법 있었다. 페이스북에는 그의 도주를 지지하고 응원하는 팬페이지가 개설됐는가 하면, 많은 누리꾼이 그를 가리켜 ‘람보’ 혹은 ‘현대판 로빈후드’라고 부르면서 추종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현재 처벌을 면하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무엇보다 과거에도 여러 차례 절도 및 상해를 저질렀기 때문이다. 과연 그는 어떤 이유에서 숲으로 들어갔으며, 왜 세상을 등지고 떠돌이처럼 지냈을까.
지난 여름 독일을 긴장으로 몰아넣은 ‘포레스트 람보’ 사건의 장본인 입스 에티엔 라우쉬.
지난해 7월, 독일 경찰에 한 건의 무단침입 신고가 접수됐다. 활과 화살로 무장한 수상한 남자가 슈바르츠발트(검은 숲)에 있는 오두막에 불법으로 침입했다는 신고였다. 당시 그를 처음 발견한 사람은 오두막 주인이었다. 놀라서 경찰에 전화를 건 그는 “활, 화살, 창, 칼, 도끼 등이 있었다”고 신고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 네 명이 오두막 안을 급습했을 때 침입자는 탁자 옆에 얌전히 앉아 있었다. 그리고는 경찰의 요구에 따라 순순히 활과 화살, 도끼 그리고 창을 건넸다. 거기까지는 모든 게 순조로워 보였다. 하지만 문제는 그 다음 벌어졌다. 경찰이 그의 몸을 수색하려 하자 갑자기 돌변한 그는 탁자 아래 숨겨두었던 권총을 꺼내들고는 경찰을 위협했다. 그리고 경찰에게 총기를 모두 내놓으라고 위협한 후 반자동 권총 네 자루를 탈취해 도주했다.
그렇게 숲 속으로 들어간 그는 체포되기까지 6일 동안 종적을 감췄다. SEK(특수작전사령부)와 MEK(기동작전특공대), 그리고 폭발물 제거반과 수색견을 포함해 역대 최대 규모인 무려 2500명가량의 경찰 병력이 투입돼 수색 작전을 펼쳤지만 숲으로 들어간 그를 찾아내기란 쉽지 않았다. 프랑스 국경 부근 독일 남부의 1600개 마을 주변에는 경찰 병력이 대거 배치됐고, 오펜하우 전 지역은 마치 군사 요새를 방불케 할 정도로 삼엄한 경비가 이뤄졌다. 도로는 봉쇄됐고, 어린이집과 학교에는 임시 휴교령이 내려졌다. 언론들은 그를 가리켜 ‘포레스트 람보’라고 부르면서 그가 왜 세상을 등지고 도주했는지 각종 추측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독일 당국이 독일 전역 및 유럽연합국 전체에 체포영장을 발부했지만 수색 작업은 난항을 겪었다. 고도로 훈련된 경찰이었지만 숲 속에서 생존 능력을 갖춘 그를 찾아내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라인하르트 렌터 오펜버그 경찰서장은 기자회견에서 “숲은 그에게는 안방과도 같은 곳이다. 때문에 그를 찾아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결국 마을 주민의 신고로 도주 행각은 6일 만에 막을 내렸다. 숲 속에서 잡초를 뽑던 한 주민이 수상한 차림으로 숲을 배회하는 한 남성을 보고 경찰에 신고했고, 결국 그는 체포됐다. 이 기간 동안 사회적으로는 기이한 현상도 벌어졌다. 생면부지인 그를 무작정 옹호하는 누리꾼들이 등장한 것이다. 그를 ‘현대판 로빈후드’라고 부르면서 영웅처럼 추켜세웠던 누리꾼들은 팬페이지를 개설해 응원 메시지를 주고받기도 했다.
지난해 7월 17일 독일 오펜하우 지역에서 숲으로 들어간 ‘포레스트 람보’ 체포작전을 벌이는 경찰병력. 사진=DPA/연합뉴스
라우쉬의 어머니는 팬페이지에서 아들의 억울함을 호소하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어머니는 경찰들이 마치 맹수를 사냥하듯이 아들을 뒤쫓고 있다고 분노하면서 “내 아들은 괴짜일지는 몰라도 위험하진 않다”고 호소했다. 그러면서 그가 동정심 많고, 예민하며, 자연을 사랑하는 평범한 사람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경찰에게서 도망친 이유는 다시 감옥에 갈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어머니는 “경찰은 당장 모든 병력을 숲에서 철수시켜야 한다. 하루나 이틀이 지나면 아들은 자진해서 숲에서 나올 것이다”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런 옹호에도 불구하고 체포 후 현재 재판에 넘겨진 그가 무죄를 선고받기란 사실 쉽지 않아 보인다. 이미 몇 차례 범죄를 저질렀기 때문이다. 과거 그에게 공격을 당했던 페트라 B.라는 여성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내향적인 성격에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않는 외톨이였던 그는 “나는 사람을 잘 믿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그는 라우쉬와 한때 친구처럼 가깝게 지냈다.
그가 라우쉬를 처음 알게 된 것은 2009년이었다. 당시 백수였던 라우쉬는 갈 곳 없이 방황하는 신세였다. 이를 딱하게 여겼던 페트라는 “갈 곳이 없으면 나한테 와서 지내도 좋다”라고 제안했고, 그렇게 둘은 원룸에서 함께 지냈다. 다만 성적인 관계를 맺는 사이는 아니었다.
당시 그의 배낭에서 이상한 물건들을 봤다고 말한 페트라는 “배낭 안에서 철모, 방독면, 칼, 단도, 석궁, 화살 등이 나왔다”라고 회상했다. 당시 백수였던 둘은 집 밖을 나가는 일이 거의 없었기에 하루종일 붙어 지냈다. 외출이라고는 가끔씩 라우쉬가 석궁을 쏘기 위해 인근 숲으로 들어가는 게 전부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라우쉬는 점차 무례해졌다. 고마움이라고는 모르는 듯 제멋대로 구는 그에게 페트라는 점점 질려갔다. 그러던 어느 날 늦잠을 자던 라우쉬에게 페트라는 주변을 정리하지 않는다고 잔소리를 했고, 이제 지쳤으니 당장 집을 나가달라고 요구했다. 라우쉬가 석궁을 들고 위협적인 행동을 보이기 시작한 것은 그때였다. 평소 아끼는 석궁을 옆구리에 낀 채 그는 페트라를 향해 조준했고, 불과 몇 미터 떨어진 침대에 걸터앉아 있던 페트라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화살은 페트라의 가슴 한가운데에 꽂혔다. 다행히 심장은 비껴갔지만 심낭, 간, 십이지장, 췌장, 방광 등은 손상을 입었다.
비명을 지르면서 바닥에 쓰러진 페트라는 가슴에서 피를 흘렸고, 놀란 라우쉬는 행주로 상처 부위를 지혈하기 시작했다. 응급 구조대가 와서 페트라는 다행히 목숨을 건졌지만, 라우쉬는 현장에서 즉시 체포됐다. 경찰 조사에서 라우쉬는 “실수로 방아쇠가 당겨졌다”고 변명했다. 하지만 결국 그는 법정에서 징역 3년 6개월을 선고받고 복역했다.
만기 출소 후에도 그는 무기 소지를 금지하는 법원의 명령을 어기고 계속해서 석궁을 지니고 다녔다. 이에 결국 그는 불법무기 소지 혐의로 다시 집행유예 9개월을 선고받았다.
현재 재판을 받고 있는 그가 왜 도주했는지 동기는 분명하지 않은 상태다. 평소 지역 주민들은 그가 괴상하긴 했어도 공격적이진 않았다고 증언했다. 실제 그는 찌는 듯이 무더운 날씨에도 검은색 두꺼운 외투를 입고 다니는 등 이상한 행동을 하긴 했지만 지역 주민들은 그를 가리켜 “예의 바르고, 친절하고, 유쾌한 사람이었다”고 회상했다. 한 친구는 지역 라디오 방송국인 ‘빅FM’과의 인터뷰에서 “라우쉬는 다정하고 예의바르고 친절한 사람”이라며 “아마도 감옥에 다시 가고 싶지 않아서 그랬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경찰 역시 라우쉬가 정치적 동기를 갖고 행동했는지는 아직 알 수 없다고 밝혔다. 현재 재판의 쟁점은 ‘그가 얼마나 위험한 인물인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으며, 오펜부르커 지방검사는 그를 인질 감금 및 상해죄로 기소한 상태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