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괘씸죄’에 탈탈 털린 최정우 포스코 회장…사과하면서도 여전히 책임 회피한 쿠팡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공포된 이후 중대재해 사망 사건이 발생한 9개 기업을 상대로 2월 22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산업재해 청문회’가 열렸다. 9개 기업 대표이사가 참석해 각자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겠다며 약속한 뒤 머리를 숙였다. 사진=박은숙 기자
#허리 아프다던 최정우 포스코 회장 결국 출석
9개 기업 대표이사 가운데 최정우 포스코 회장은 집중포화를 맞았다. 허리가 아프다는 핑계로 청문회 불출석하려고 했던 최 회장에게 괘씸죄가 적용된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왔다. 최 회장은 청문회 증인으로 채택된 후 2월 18일 ‘요추의 염좌 및 긴장으로 인해 진단일로부터 2주간의 안정가료가 필요하다’는 진단서를 제출하며 불출석 의사를 밝혔다. 이를 두고 거센 비판이 일자 결국 입장을 바꿔 청문회에 참석했다.
최정우 포스코 회장이 2월 22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산업재해 청문회’에서 답변을 하고 있다. 사진=박은숙 기자
환노위 위원들은 지속해서 최 회장을 증인석으로 불러세웠다. 청문회 첫 심문을 맡은 김웅 국민의힘 의원은 최 회장에게 “회장님, 허리는 괜찮으십니까”라는 말로 뼈있는 인사를 던진 뒤 “허리는 많이 아픈 걸로 알고 있다”며 최 회장 안부를 묻는 듯했다. 최 회장이 “평소에 디스크가 있어서 무리하면 허리가 아프다”고 답하자 “허리 아픈 것도 괴로운데, 기계에 압착돼서 죽으면 얼마나 괴롭겠습니까”라고 꼬집었다.
김 의원은 “(최 회장에게) 그 진단서 내라고 한 사람은 친구가 아니라 적이다. ‘요추의 염좌 및 긴장’ 진단서는 보험 사기꾼들이나 내는 진단서다. 포스코 대표이사가 낼 진단서는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임이자 국민의힘 의원은 한술 더 떴다. 임 의원은 최 회장을 향해 “대국민 사과 뒤 국회 불참 통보 어이가 없었다. 국민의 땀과 눈물, 피로 만들어진 포스코 대표로서 무한한 책임을 가지고 억울한 노동자에게 정중히 사과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꾸짖었다. 최 회장이 “생각이 짧았다. 죄송하다”고 답하자 임 의원은 “(회장님) 생각이 짧은 게 아니라 인성이 그런 것”이라고 지적했다.
노웅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최 회장을 보고 “지금 멀쩡한데 2주 진단서 낯부끄럽지 않나”며 “사고 발생 이틀 후 사고 현장에 갔다. 철제 계단이 낡아서 한 사람밖에 올라갈 수 없을 정도였다”고 지적했다.
최정우 포스코 회장은 청문회 오전에만 총 6명의 위원들에게 질의를 받으면서 곤욕을 치렀다. 최 회장은 연신 죄송하다고 머리를 숙였다. 사진=국회사진취재단
이어 노 의원은 “주유할 때 시동 끄시냐?”고 물었고 최 회장이 “그렇다”고 답하자 노 의원은 “자기 목숨 아끼려고 시동 끄면서 돈 몇 푼 아끼려고 그러나. 양심이 있는 거냐. 취임할 때 1조 1000억 원을 들여 안전에 만전을 기울이겠다더니 철제 계단 하나 안 고치느냐”고 꼬집었다.
최 회장은 오전에만 총 6명의 위원들에게 질의를 받으면서 곤욕을 치렀다. 최 회장은 연신 죄송하다고 머리를 숙였다. 2월 8일 포스코 사내하청업체 소속 35세 노동자가 포항제철소 원료부두에서 컨베이어롤러 교체 작업을 하던 가운데 기계에 끼여 사망했다. 최 회장은 2월 16일 포항제철소 원료부두를 방문해 안전관리 상황을 점검하고 유족과 국민들에게 사과했다.
#쿠팡, 물류센터 사망에 고개 숙였지만…
이날 증인 가운데 유일한 외국인이었던 노트먼 조셉 네이든 쿠팡풀필먼트서비스 대표이사는 통역사와 함께 청문회에 나섰다. 조셉 대표는 칠곡물류센터에서 일하다가 2020년 10월 과로사로 사망한 고 장덕준 씨 유가족에게 “고인과 유족께 깊이 사과한다. 이 상황이 끔찍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트먼 조셉 네이든 쿠팡풀필먼트서비스 대표가 2월 22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산업재해 청문회’에 참석해 답변하고 있다. 사진=박은숙 기자
강은미 정의당 의원이 조셉 대표를 향해 “쿠팡은 장덕준 씨가 일한 물류센터 7층의 업무 강도가 가장 낮다고 주장해왔다. 아직도 그렇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조셉 대표는 “물량에 따라 다를 수 있다. 제품이 어느 층으로 이동하느냐에 따라 다르다”고 선을 그었다. 강 의원은 “그 주장은 장 씨의 업무가 힘들지 않다고 말하는 것”이라며 “산재판정서에 27세 젊은 노동자가 근육이 파괴됐다고 나온다. 그럼 다른 층 노동자의 업무 강도는 얼마나 세다는 거냐”고 반문했다.
조셉 대표는 올해 1월 동탄물류센터에서 발생한 사망 사건을 두고선 고인의 개인 질환으로 발생한 사고라고 말했다. 윤준병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월 발생한 사망 사건을 두고 쿠팡의 입장을 묻자 조셉 대표는 “우리가 이해하기론 해당 사고는 개인 질환과 연관돼 있다. 의료 전문가가 아니라서 면밀한 검사 과정이 필요하다. 사고 경위를 파악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답했다. (관련 기사 [단독] 쿠팡 물류센터 사망자, 영하 10도에 핫팩 하나로 버텨야 했다)
고 장덕준 씨 어머니 박미숙 씨는 청문회에 앞서 노트먼 조셉 네이든 쿠팡풀필먼트서비스 대표에게 편지를 보냈다. 사진=연합뉴스
하지만 고 장덕준 씨 어머니 박미숙 씨는 일요신문과 통화에서 “2월 9일 산재 인정 판정이 난 뒤에 연락 와서 청문회에서 한 말과 똑같이 말했지만 지금까지 아무런 조치가 없다. 그때도 사과를 하지도 않았다”며 “사과와 보상, 지원하겠다는 쿠팡의 말이 신뢰가지 않을뿐더러 참 공허하게 다가온다”고 말했다.
#한영석 현대중공업 사장 부적절 발언 뭇매
한영석 현대중공업 대표이사는 산업재해 원인을 노동자의 불완전한 행동 탓으로 돌리는 발언을 하는 바람에 위원들의 질의 세례를 받았다. 한 대표는 현대중공업이 1년 동안 특별근로감독을 5차례나 받았다는 박덕흠 의원 지적에 “국민께 대단히 죄송하다. 고인께 심심한 유감을 표한다”면서도 “사고가 일어나는 유형을 보니까 실질적으로 작업자의 행동에 의해서 많이 일어난다. 불완전한 행동을 하는 작업자가 많다. 그런 부분을 세심하게 행동하도록 만들어 안전한 작업장을 만들겠다”고 답했다.
한영석 현대중공업 대표이사는 산업재해의 원인을 노동자의 불완전한 행동 탓으로 돌리는 발언을 하는 바람에 위원들의 질의 세례를 받았다. 사진=박은숙 기자
이에 발끈한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장철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한 대표에게 질의를 이어갔다. 이수진 의원은 “작업자가 잘못해서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산업재해를 피해가지 못한다”며 “이번 사건(2월 5일 중대재해 사망 사고) 때 철판이 흘러내려 사망했다. 이전에도 사망 사고가 아닐 뿐이지 철판이 흘러내린 사고가 빈번했다. 조치를 취했나. 안 했지 않나”라고 지적했다.
장철민 의원 또한 “현대중공업에 질의할 생각 원래 없었지만 대표님께서 말씀하신 부분에 굉장히 심각한 우려가 생겼다”며 “근로자의 불완전 행동만으로는 산재가 나지 않는다. 관리 감독 부실, 시설 장비 문제 세 가지가 맞아떨어져야 발생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사태가 커지자 한영석 대표는 오전 청문회가 끝나고 오후 청문회가 시작된 뒤 “비정형화된 작업장이 많고, 표준화된 절차가 있어도 지켜지지 않는 작업장 특성이 있다. 그것을 정형화·표준화할 수 있도록 유도하겠다는 말이었다”며 “오해가 생길 수 있도록 말씀드린 점 사과드린다”고 해명했다.
오전 10시에 시작한 환노위 산재 청문회는 오후 7시 30분쯤 끝났다. 이원우 현대건설 대표이사가 오후 2차 질의를 마치고 귀가한 것을 빼곤 8개 기업(쿠팡·현대중공업·포스코·GS건설·포스코건설·롯데글로벌로지스·CJ대한통운·LG디스플레이)의 대표이사가 모두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박현광 기자 mua12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