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 대사 탓 ‘외국어영화상’ 그쳐…미국 영화로 인정한 아카데미선 여우조연상·작품상 유력
‘미나리’는 9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각본상, 감독상, 여우조연상 등 여러 부문에서 후보작이 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윤여정이 한국 배우 최초로 오스카상을 품에 안을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사진=영화 ‘미나리’ 홍보 스틸 컷
#강력한 ‘노매드랜드’에 맞서 작품상 수상 가능할까
제78회 골든글로브 작품상은 중국 출신 클로이 자오 감독이 연출을 맡은 ‘노매드랜드’에게 돌아갔다. 감독상까지 2관왕을 차지한 ‘노매드랜드’는 아카데미에서도 유력한 작품상 후보다. ‘노매드랜드’는 제77회 베니스 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을 비롯해 무려 170관왕에 이르는 수상 퍼레이드를 이어온 강력한 작품상 후보작이다. 중국 출신 클로이 자오 감독은 마동석이 히어로 길가메시로 출연한 마블 영화 ‘이터널스’의 연출을 맡기도 했다.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군은 대부분 골든글로브 작품상 후보로 선정됐다. ‘노매드랜드’와 함께 가장 유력한 후보인 ‘트라이얼 오브 더 시카고7’을 비롯해 ‘더 파더’ ‘맹크’ ‘프라미싱 영 우먼’ 등 쟁쟁한 영화들이 대기하고 있다. 여기에 ‘미나리’ 역시 강력한 수상 후보군에 이름을 올렸다.
사실 ‘미나리’는 양강 구도를 형성한 ‘노매드랜드’와 ‘트라이얼 오브 더 시카고7’에는 살짝 밀리는 분위기였다. 그렇지만 골든글로브가 ‘미나리’를 작품상이 아닌 외국어영화상 후보로 선정하면서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 AP통신은 ‘미나리’를 “올해 골든글로브 시상식을 빛낸 사실상의 우승작 가운데 하나”라고 밝혔고, 뉴욕타임스는 “‘미나리’는 미국 감독이 연출해서 미국에서 촬영됐고 미국업체 투자를 받았지만 외국어영화상 후보에만 올라 작품상 부문에선 경쟁할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이런 골든글로브에 대한 연이은 지적이 최근 백인주의에서 탈피해 글로벌한 변화를 추진하고 있는 아카데미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미 지난해 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한국 영화 ‘기생충’이 작품상 등 4관왕을 수상해 2년 연속 한국계 영화의 작품상 수상은 쉽지 않다는 시선도 있다. 이런 까닭에 중국계 클로이 자오 감독의 ‘노매드랜드’가 유력한 작품상과 감독상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외국어영화상에서 국제장편영화상으로 이름이 바뀐 뒤 첫 수상작이 된 ‘기생충’에 이어 ‘미나리’가 또 국제장편영화상을 수상할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 골든글로브와 달리 아카데미는 ‘미나리’를 자국인 미국 영화로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카데미는 이미 2월 9일 작품상, 감독상, 연기상 등 주요 부문을 제외한 9개 부문의 예비후보(숏리스트)를 발표했고 15편의 국제장편영화상 숏리스트도 발표됐는데 ‘미나리’는 후보에 없었다.
한국 영화계가 출품한 ‘남산의 부장들’은 숏리스트에 오르지 못했다. 사실 ‘기생충’ 한 편으로 기대치가 너무 높아져서 그렇지 2018년까지만 해도 정식 후보가 아닌 숏리스트 선정도 기대하기 어려웠었다. 2019년 이창동 감독의 ‘버닝’이 최초로 숏리스트에 오른 것도 엄청난 성과였다.
제78회 골든 글로브에서 ‘모리타니안’으로 여우조연상을 받은 조디 포스터는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는 할리우드 최고의 여배우 가운데 한 명이다. 윤여정이 아카데미에서 오스카상을 가져오려면 조디 포스트를 이겨야만 하는 상황이다. 사진=‘모리타니안’ 홍보 스틸 컷
#윤여정, 조디 포스터 넘어설까
9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미나리’의 수상이 가장 유력한 부문은 단연 여우조연상이다. ‘미나리’의 윤여정은 미국배우조합상(SAG) 여우조연상을 비롯해 미국에서 무려 26개의 여우조연상을 휩쓸었다. ‘버라이어티’가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예측 1위로 윤여정을 선정하는 등 미국 현지 매체에서도 가장 유력한 후보로 윤여정을 언급하고 있다.
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4관왕에 오르며 가장 주목받은 영화 ‘기생충’은 배우 부문 수상에까지 이르지 못했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배우 송강호가 주연으로 출연했지만. 윤여정이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상한다면 또 다시 한국 영화계에는 ‘최초’라는 타이틀이 붙는다. 비록 ‘미나리’가 한국 영화는 아니지만 윤여정은 한국 배우이기 때문이다.
역시 가장 유력한 경쟁 상대는 골든글로브 여우조연상 수상자다. ‘모리타니안’으로 여우조연상을 받은 조디 포스터는 수상이 발표되자 “장난 아니냐? 정말 예상하지 못했다”는 반응을 보였다. ‘피고인’(1988)과 ‘양들의 침묵’(1991)으로 2번이나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조디 포스트는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는 할리우드 최고의 여배우 가운데 한 명이다. 윤여정이 아카데미에서 오스카상을 가져오려면 조디 포스터를 이겨야 한다.
앞서 언급했듯이 현지 언론은 조디 포스터를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유력 후보로 예상하지 않고 있다. 윤여정이 가장 앞서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 외에도 ‘힐빌리의 노래’의 글렌 클로즈, ‘더 파더’의 올리비아 콜맨, ‘맹크’의 아만다 사이프리드, ‘뉴스 오브 더 월드’의 헬레나 젱겔 등 골든글로브 여우조연상 후보들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후보로 선정될 가능성이 크다.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가장 유력한 감독상 후보는 ‘노매드랜드’의 클로이 자오 감독이다. 사진=‘노매드랜드’ 홍보 스틸 컷
#그래서 ‘미나리’는 한국 영화? 미국 영화?
일부 네티즌들은 ‘그래봐야 미나리는 미국 영화’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한국 배우들이 대거 출연했고 대사의 절반 이상이 한국어다. 감독 역시 한국계 미국인이다. 그렇지만 분명 ‘미나리’는 미국 영화다. 뉴욕타임스의 설명처럼 ‘미나리’는 미국 감독이 연출해서 미국에서 촬영됐고 미국업체 투자를 받아 제작된 영화다. 제작사는 브래드 피트가 설립한 ‘플랜B’이며 투자는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한 ‘문라이트’를 제작한 A24가 담당했다. 이처럼 A24는 제작사이기도 하지만 미국에선 투자배급사로 더 유명하다. 따라서 ‘미나리’는 두 말이 필요 없는 미국 영화다.
그럼에도 한국 배우가 출연해 한국어 대사를 하는 영화이며 희망을 찾아 낯선 미국으로 떠나온 한국 가족의 특별한 여정을 다룬 내용이라 한국에서도 관심이 높다. 실제로 윤여정이 아카데미 여우조연상까지 수상한다면 한국 영화계와 더 깊은 인연을 맺게 될 수도 있다.
그런데 골든글로브가 자국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전체 대사의 절반 이상이 영어가 아니라는 이유로 외국어영화상 후보로 제한하면서 미국 영화가 아닌 게 돼 버렸다. 이제 ‘미나리’는 한국 영화도 아니고 미국 영화도 아닌 셈이다. 이런 시각은 백인주의의 틀에 갇힌 골든글로브의 협소함에서 비롯된 것에 불과하다. 그러나 시각을 뒤집어 보면 ‘미나리’는 미국 영화이자 한국 영화라는 결론에 다다를 수도 있다.
조재진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