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이 뜨는 강’ ‘디어엠’ ‘컴백홈’ 편성 차질…모델 계약서에 ‘학폭’ 조항 추가하기도
한 광고 에이전시 관계자의 말이다. 연예인을 모델로 발탁해 보통 수억 원, 많게는 수십억 원을 지급하는 광고계에서는 최근 아이돌 스타와 20대 청춘스타들을 중심으로 우후죽순 제기되는 ‘학교폭력’(학폭)에 기민하게 반응하고 있다. 워낙 거액이 오가는 계약인 데다, 광고모델은 해당 기업이나 제품 이미지를 상징하는 위치인 만큼 최근 최대 이슈로 떠오른 ‘학폭’ 관련 항목을 첨부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겠다는 의지다.
‘피해자 연대모임’까지 결성돼 공식 사과를 요구받고 있는 연기자 박혜수의 논란도 KBS로서는 곤혹스러운 부분이다. 계획대로라면 2월 26일 KBS 2TV를 통해 첫 방송 예정이었던 드라마 ‘디어엠’의 주인공이 다름 아닌 박혜수이기 때문이다. 사진=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홍보 스틸 컷
비단 광고계뿐만이 아니다. 한 드라마 제작사 관계자는 “방송사 편성을 확정한 드라마의 출연진에 대한 자체 ‘조사’를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 과거 학창시절 학폭 사건에 연루됐을지 모르니 이를 사전에 점검하겠다는 뜻이다. 이 관계자는 “제작사 입장에서 일일이 찾아내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지만, 최대한 각 배우의 소속사와 상의해 검증하고 있다”며 “혹시라도 방송이 시작되고 이런 문제가 불거지는 최악의 사태만큼은 방지하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연예계에 그야말로 ‘학폭 쓰나미’가 일어나고 있다. 20대 라이징스타로 주목받는 연기자 박혜수, 조병규에 이어 지수까지 과거 중·고등학생 시절 동급생을 괴롭힌 과거사가 폭로돼 논란에 휘말렸다. 아이돌 그룹 에이프릴의 이나은, (여자)아이들의 수진도 학창시절 학폭 가해자로 지목되면서 활동을 전면 중단했다.
학폭 논란은 연예인 개인의 문제로만 그치지 않는다. 사회적인 공분을 일으킨 연예인들로 인해 제2, 제3의 피해가 걷잡을 수 없이 증폭되고 있다. 제작비 100억 원대 드라마는 침몰할 위기에 처했고, 함께 출연한 배우들과 스태프들도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을 수 있는 상황에 놓였다.
#KBS, 학폭 논란 속 ‘진퇴양난’
연예인들의 잇단 학폭 논란으로 직격탄을 입은 곳은 KBS다. 시청률 10%를 돌파한 미니시리즈의 주인공부터 방송을 앞둔 또 다른 드라마의 주인공, 새롭게 시작하는 예능 프로그램의 진행자가 연이어 학폭 의혹에 휘말린 탓이다. 더욱이 피해 수위가 높은 사례로 지목되는 논란의 장본인들도 공교롭게 KBS와 연결돼 있다.
고구려를 배경으로 온달과 평강의 이야기를 다룬 KBS 2TV 월화드라마 ‘달이 뜨는 강’의 주인공 지수는 지난 2일 중학교 재학 시절 동창생으로부터 학폭 피해 폭로에 휘말렸다. 글쓴이는 재학 시절 지수로부터 학교 급식실에서, 교실에서, 복도에서, 숱한 괴롭힘을 당했다고 상세히 밝혔다. 이 글이 공개된 이후 지수와 학교생활을 같이 했다는 또 다른 이들의 ‘피해 증언’까지 잇따랐다.
불똥은 곧장 KBS로 향했다. 지수가 주연한 ‘달이 뜨는 강’은 총 20부작으로 기획돼 현재 18, 19부 촬영분의 촬영만 남겨둔 상태다. 작품에서 지수가 연기한 주인공 온달이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이고 이미 촬영해 놓은 분량도 많아 KBS의 고심은 깊어졌다.
‘피해자 연대모임’까지 결성돼 공식 사과를 요구받고 있는 연기자 박혜수의 논란도 KBS로서는 곤혹스러운 부분이다. 계획대로라면 2월 26일 KBS 2TV를 통해 첫 방송 예정이었던 드라마 ‘디어엠’의 주인공이 다름 아닌 박혜수이기 때문이다. 학폭 논란이 제기된 직후 박혜수 측은 “사실무근”이라는 입장과 함께 법적 대응을 불사할 뜻을 밝혀 피해를 주장하는 이들을 자극했고, 이들의 응집을 초래했다.
박혜수 측과 피해를 주장하는 이들의 갈등이 격화되면서 KBS는 ‘디어엠’ 편성을 연기했다. 언제 방송될지도 지금으로서는 예측하기 어렵다. 공들여 사전제작으로 작품을 완성한 제작사는 물론 함께 출연한 채현, 노정의 등 연기자들도 느닷없이 공백기를 보내야 하는 피해에 직면했다.
고구려를 배경으로 온달과 평강의 이야기를 다룬 KBS 2TV 월화드라마 ‘달이 뜨는 강’의 주인공 지수는 지난 2일 중학교 재학 시절 동창생으로부터 학교폭력 피해 폭로에 휘말렸다. 사진=KBS 제공
현재 KBS는 최근 수신료 인상안을 둘러싸고 이슈에 중심에 있다. 지수, 박혜수 등 학폭 연기자들이 주연한 드라마를 수신료까지 내고 봐야 하느냐는 질타와 비판이 온라인 게시판에 쏟아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특히 ‘달이 뜨는 강’ 시청자 게시판에는 지수의 하차를 요구하는 시청자 청원이 4일까지 5500여 개 게재됐다. 여론 악화로 인해 KBS와 ‘달이 뜨는 강’ 제작진은 지수를 드라마에서 제외하고, 기존 촬영 분량에 대한 재편집과 추가 배우 캐스팅 등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깊어지는 ‘캐스팅 고민’, 광고계 빠른 ‘손절’
학폭 폭로의 시작은 배구스타 이재영·이다영 쌍둥이 자매 선수로부터 시작됐지만 지금은 연예계로 옮겨붙어 20대 스타들을 대상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특정 온라인 게시판이 폭로의 장으로 떠올랐고, 피해를 주장하는 이들은 신빙성을 더하기 위해 학교 졸업사진이나 앨범, 졸업증명서까지 첨부하는 등 증언을 구체화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현재 배우 캐스팅을 진행 중이거나, 이미 캐스팅을 마무리하고 촬영을 시작하려는 영화나 드라마 제작사들도 고민에 빠졌다. 혹시 모를 학폭 연루를 걱정하면서도 현실적으로는 이를 밝혀낼 방법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연기자나 소속사의 설명에 기댈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몇몇 제작사들은 바이럴 마케팅 등 온라인 전문 홍보마케팅 업체들의 도움을 받아 각종 게시판과 댓글 점검에 나서기도 했다.
실제로 한 투자배급사 관계자는 “라인업 가운데 20, 30대 배우들이 주인공인 영화들이 있어서 해당 배우들에 대한 일종의 온라인 평판 조회를 진행 중이다”고 귀띔했다. 혹시 모를 피해를 최대한 대비하려는 차원이다.
발 빠른 ‘손절’도 있다. 한 브랜드는 에이프릴 이나은에 대한 학폭 증언이 나온 직후 그가 출연한 광고 송출을 중단했다. (여자)아이들의 수진이 모델을 맡고 있던 한 화장품 브랜드도 그의 사진을 전부 삭제했다. 소비자들에게 미칠 수 있는 부정적인 여론을 차단하려는 조치다.
이호연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