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 ‘댓글 모음 영상’으로 시작된 입소문…해체 위기서 기사회생, 4년 만에 무대 ‘소환’
2011년 브레이브걸스 1기로 데뷔 후 몇 차례 멤버 교체를 거쳐 4인조 걸그룹으로 재편성된 브레이브걸스의 2017년 곡 ‘롤린’이 4년 만에 빛을 보게 됐다. 사진=브레이브 엔터테인먼트 제공
최근 유튜브와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를 타고 새로운 역주행 신화를 쓰고 있는 브레이브걸스의 ‘롤린’이 4년의 세월을 넘어 재조명받게 된 데에는 2월 24일 발굴된 유튜브 채널 ‘비디터’의 ‘브레이브걸스 롤린 댓글 모음 영상’이 큰 역할을 했다. ‘댓글 모음 영상’은 이미 올라온 가요 무대의 유튜브 영상에서 재미있는 댓글을 모아 해당 영상과 함께 올리는 방식의 콘텐츠다. 브레이브걸스 외에도 다양한 아이돌 그룹의 댓글 모음 영상이 이미 온라인 커뮤니티나 페이스북 등 SNS를 통해 일반 대중들에게 알음알음 알려져 왔다.
앞서 ‘비디터’가 올린 다른 댓글 모음 영상과 달리 브레이브걸스의 ‘롤린’이 특히 주목 받게 된 이유는 해당 콘텐츠에 주로 사용된 그들의 영상이 ‘위문 열차’ 등 군대 공연 무대인 덕이 컸다. ‘롤린’의 포인트 안무인 가오리춤과 허수아비 춤이 나오는 순간 관객석에 앉아 있던 군인들이 전원 기립해 똑같은 춤을 추는 모습이 코믹한 포인트로 주목 받으면서 노래와는 또 다른 재미로 어필된 것이다. 대부분 8만에서 30만 회 정도의 조회수에 머물던 ‘비디터’의 영상 가운데 브레이브걸스의 ‘롤린’은 이 같은 입소문을 타고 순식간에 500만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했다.
상승세는 단순히 유튜브 인기로만 끝난 것이 아니었다. 영상이 발굴된 2월 24일 음원사이트 멜론 차트에 918위(일간 순위)로 진입한 ‘롤린’은 불과 나흘 만인 2월 28일 80위까지 급상승하더니 3월 3일 4위까지 올랐다. 3월 4일과 5일 사이에는 실시간 차트 2~4위 사이를 맴도는 등 여전히 최상위권을 유지 중이다. 벅스 차트에서도 2월 28일 기준으로 나흘 이상 1위를 지키고 있고 지니뮤직은 3월 2일부터 1위를 유지 중이며 플로와 바이브, 애플뮤직, 유튜브 뮤직 등 다양한 음원 사이트에서도 ‘롤린’은 실시간 음원차트 상위권에 안착해 있다.
‘롤린’을 재조명받게 한 유튜브 채널 ‘디비터’의 ‘롤린-댓글 모음 영상’ 속 군인들의 호응 장면.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이 장면이 코믹한 포인트로 소비되면서 노래와는 또 다른 인기를 끌기도 했다. 사진=‘비디터’ 영상 캡처
이 같은 상위권 차트 진입은 ‘역주행의 교과서 사례’로 꼽히는 2014년 EXID의 곡 ‘위아래’와 비교해도 매우 빠른 속도다. ‘위아래’의 경우 2014년 11월부터 직캠(가수의 팬이 공연 무대를 직접 촬영해 올린 영상) 영상이 입소문을 타면서 상위권 차트에 올랐지만 그 기간이 2개월가량 걸렸다. 반면 ‘롤린’은 2월 28일 영상 재조명 후 일주일이 채 되지 않은 시간 안에 급속도로 상승세를 탄 가요계 최초의 사례다. 대중들 사이에서는 이 기세를 몰아 ‘롤린’으로 다시 한 번 활동해 줄 것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높다.
‘물 들어온 김에 노 젓는다’고, 브레이브걸스 소속사 브레이브 엔터테인먼트 측도 이 호응에 곧바로 화답했다. 3월 5일 브레이브 엔터테인먼트는 “팬들의 요청에 부응해 본격적으로 음악 방송 무대에 서기 위해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역주행을 통해 같은 곡으로 수년 만에 다시 활동하게 된 것도 브레이브걸스의 사례가 최초다.
소속사는 여기에 더해 ‘롤린’의 가장 큰 단점으로 꼽혔던 콘셉트에 대해서도 대중들의 의견을 적극 반영하는 모습을 보였다. ‘롤린’의 경우 상큼하고 발랄한 노래 가사나 분위기와는 어울리지 않는 섹시 콘셉트와 부상의 위험이 커 보인다는 우려가 나왔던 ‘의자 댄스’로 음원 공개 당시 팬들로부터 불만의 목소리가 높았다.
이번 역주행의 계기가 된 유튜브 영상에도 다수의 네티즌들이 “섹시 콘셉트만 삭제해서 나온다면 음악방송 1위도 기대해 볼 만하다” “모른 척해줄 테니까 선정적인 앨범 커버 사진을 바꿔서 다시 활동해 달라”는 댓글을 달았다. 이런 의견을 십분 반영해 브레이브 엔터테인먼트는 네티즌이 직접 만든 ‘롤린’의 새로운 앨범 커버를 채택하고 기존에 공개된 앨범 커버도 전면 수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활동 당시에도 섹시 콘셉트와 곡의 분위기가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있었다. 브레이브 엔터테인먼트는 이 같은 지적을 반영해 앨범 커버를 네티즌이 제작한 새로운 커버로 변경했다. 사진=브레이브 엔터테인먼트 제공
이처럼 ‘롤린’의 역주행에 대중들이 열광하고 있는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롤린’이 2018년부터 꾸준히 문제돼 온 ‘음원 사재기’ 논란과 대비되는 ‘진정한 대중 픽’으로 꼽히고 있다는 점이다. 이제까지 뚜렷한 인기의 이유가 확인되지 않은 곡들이 ‘음원 강자’로 꼽히는 가수들을 제치고 각종 차트에서 1위를 차지하는 것을 두고 불만의 목소리가 높아지던 차였다. 이런 가수들 가운데 판매나 홍보라는 사실을 드러내지 않고 ‘대중 픽’을 받은 것처럼 교묘하게 꾸미는 ‘스텔스 마케팅’으로 홍보해 온 케이스도 드러나면서 이들이 상위권을 꿰찬 음원 차트에 대한 불신도 높아져 왔다.
그만큼 대중들이 그 상승세를 직접 목격하게 된 ‘롤린’의 성공에 호응의 목소리가 높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특히 ‘롤린’의 영상이 발굴된 계기도 외부 세력의 개입이나 조작 가능성이 적은 유튜브의 ‘추천 알고리즘’(이용자들의 검색 내역을 기반으로 가장 관심사가 높은 분야의 영상을 추천하는 시스템)으로 인한 것이라는 점도 호응에 한몫하고 있다.
여기에 브레이브걸스의 역주행 직전 상황도 재조명됐다. 2월 16일 멤버 유나가 팬들을 위한 인스타그램 라이브 방송을 진행하며 “현재 컴백 계획이 없다. 아마도 컴백을 하지 않을 것 같다. 두 번째 직업을 생각 중인데 바리스타 자격을 딸까 한다”며 사실상 그룹 해체나 멤버들의 계약 해지 등을 암시하는 이야기를 털어놨던 것이다.
브레이브걸스는 2011년 1기 데뷔 후 몇 차례 멤버 교체를 거쳐 2016년부터 2기 체제로 활동해 왔지만 큰 반응을 얻진 못했다. 멤버 교체가 잦은 중소규모 연예기획사의 아이돌들이 대부분 그렇듯, 이런 상황이 지속될 경우 소속사는 활동 지원을 하지 않거나 아예 그룹 해체를 결정하는 일이 자주 있었기에 팬덤도 브레이브걸스의 활동에 큰 기대를 걸지 않고 있었다. 그런 가운데 상상도 하지 못했던 역주행에 성공하면서 그야말로 그룹과 소속사가 모두 기사회생하게 된 ‘역전 스토리’가 대중들에게 크게 어필됐다.
브레이브 엔터테인먼트는 이에 대해 “갑작스럽게 큰 관심을 받게 돼 어안이 벙벙하면서도 너무나 감사하다”며 “늘 역주행을 꿈꿔왔던 멤버들을 비롯해 회사 전체가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대중들의 많은 관심과 호응에 보답하기 위해 앞으로도 꾸준한 활동과 피드백에 힘쓸 것”이라고 밝혔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