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년여 식당 종업원 등 노동자 절반 송환, 외화벌이 전선 ‘비상’…중국인이 식당 운영케 하고 북한인 취업 시켜
북한 주요 외화벌이 수단이었던 ‘해외 노동자 파견’은 이중고로 사실상 명맥이 끊어진 상태로 알려졌다. 사진=연합뉴스
강력한 대북제재의 파도가 북한 외화벌이 현장을 덮친 건 2019년 12월 22일이다. 유엔 대북 제재에 따라 북한 노동자를 송환해야 하는 데드라인이었다. 유엔은 2017년 안보리 결의를 통해 정해진 데드라인까지 해외 북한 노동자들을 모두 송환하도록 조치했다. 중국 내 북한 식당들의 선택지는 없었다. 북한 여성 종업원을 중국 국적 종업원으로 교체하거나 혹은 문을 닫거나 두 가지뿐이었다.
중국 소식통은 “2019년 12월 22일 이후엔 북한이 운영하는 사업체에서 일하는 북한 노동자들의 비자가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면서 “기존 방식대로 식당을 합법적으로 운영할 방식이 사실상 사라졌다”고 귀띔했다. 소식통은 “그러나 여기서 포기하는 건 북한 스타일이 아니”라면서 “북한은 새로운 모델을 바탕으로 외화벌이에 돌입했다”고 했다.
그 방법은 중국인이 북한 식당을 운영하고 그 식당에 종업원으로 북한 여성들을 취업시키는 방식이었다. 명목상으로 보면 중국 기업에서 일하는 북한 종업원들이 받는 임금이 북한 외화벌이 수단이 된 셈이었다.
주인을 바꾼 뒤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는 중국 랴오닝성 단둥에 위치한 북한 음식점 류경식당. 사진=연합뉴스
대북 소식통은 “중국인이 운영하게 된 북한 식당에 북한 국적 종업원들이 취업을 한 다음 골머리를 앓는 건 현지 중국 경영자들이었다”고 했다. 그는 “북한 종업원들이 20명 1개조로 취업을 하면 북한에서 ‘관리원’이 따라 붙는다”면서 “관리원은 한국으로 치면 국정원 요원 같은 당국자라고 보면 된다”고 했다. 그는 “관리원이 따라붙어 종업원 관리뿐 아니라 식당까지 감시하니 북한 식당을 운영하는 중국 기업인은 상당히 불편한 입장이 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자연스레 중국 내 북한 식당의 개체 수나 규모는 2019년 전과 비교해 확연히 줄었다. 이런 현상은 비단 중국에 국한되지 않는다. 동남아를 비롯해 세계 각국에 위치한 북한 식당 대부분이 비슷한 처지에 놓인 것으로 알려졌다.
식당뿐 아니라 다른 업종에도 경고등이 켜졌다. 북한 ‘외화벌이 전선’은 걷잡을 수 없이 후퇴했다. 북한은 2019년 기준 약 10만 명의 노동자를 해외에 파견해 1년 5000억 원 정도를 벌어들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유엔 소속 국가들이 제출한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 노동자 절반 이상이 2019년 12월 22일 전후로 북한에 송환된 것으로 알려졌다.
데드라인 이후 상황은 계속해서 악화했다. 송환 릴레이가 펼쳐지는 가운데 2020년 2월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대유행)이 선언됐다. 이에 앞서 북한은 1월 육로와 해로, 항공로까지 국경을 폐쇄조치했다. 외화를 벌러 나가는 길을 자진해서 막아버린 셈이 됐다.
2019년 10월 한국으로 망명한 것으로 알려진 류현우 전 쿠웨이트 주재 북한대사관 대사대리. 사진=CNN 캡처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 이후로 줄을 잇는 ‘외교관 망명 사례’도 북한의 열악해진 외화벌이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북한 소식통에 따르면 외국에 주재하는 북한 대사관 외교관들은 사실상 해당 국가에서 외화벌이를 비공식적으로 관리하는 ‘총책’이다. 외화벌이 환경이 열악해지면서 외국에 주재한 북한 대사관 외교관들은 북한 당국으로부터 점점 강한 압박을 받았다는 후문이다.
2020년 10월 망명 사실이 알려진 조성길 전 주 이탈리아 북한 대사관 대사대리는 ‘모종의 이유’로 망명을 결심한 것으로 전해진다. 조 전 대사대리는 2019년 북한 전문가들은 ‘모종의 이유’가 북한 외화벌이 현장 상황과 연관이 있지 않겠느냐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조 전 대사대리가 망명한 시기는 2019년 7월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21년 1월엔 류현우 전 주 쿠웨이트 북한 대사관 대사대리의 망명 사실(관련기사 김정은 금고지기의 사위? 류현우 북한 대사대리 망명 비화)이 화제를 모았다. 류 전 대사대리는 조 전 대사대리보다 두 달 늦은 2019년 9월 한국에 입국해 정착한 것으로 전해진다. 류 전 대사대리 망명 사유로는 쿠웨이트 현지 북한 노동자 추방 사태로 인한 심리적 압박이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유엔에 따르면 2019년 12월까지 쿠웨이트에서 일하다 본국으로 송환된 북한 노동자 규모는 1000여 명 정도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사진=연합뉴스
북한 소식통은 “북한 최고 엘리트인 외교관들이 줄줄이 망명하는 현상에 대해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소식통은 “조성길-류현우 케이스엔 흥미로운 공식이 있다. 대북 제재 이후 대사관이 추방당하고 대사대리를 맡다가 망명했다는 점”이라면서 “갑자기 대사대리라는 막중한 책임을 졌는데, 자신이 담당하는 국가에서 북한 노동자들이 추방당하다보니 심리적 압박감을 견디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했다. 소식통은 “혹여나 실적이 좋지 않아 본국으로 소환된다면 가시밭길이 펼쳐질 것이 뻔한 상황에서 그들이 선택할 수 있는 답안은 매를 맞든지 도망가든지 둘 중 하나”라고 덧붙였다.
북한 소식통들은 ‘엘리트 외교관’들의 연쇄적인 망명의 근본적 배경으로 해외에서의 외화벌이 사정 악화를 꼽았다. 특히 2019년 대북 제재 이후 코로나19 확산세가 걷잡을 수 없어지면서 북한의 대외 사업은 치명타를 입었다고 알려졌다. 중국 거주 북한 소식통은 “외국에서 성행하는 북한 외화벌이 수단은 보통 문화 사업을 겸비한 요식업”이라면서 “코로나19 이후로는 이런 사업장에 발길이 뚝 끊겨 기존 명맥을 유지하던 곳도 사면초가에 놓인 상황”이라고 전했다.
이탈리아 프로축구리그에서 활약했던 ‘이북 호날두’ 한광성 역시 2021년 귀국을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연합뉴스
스포츠를 통한 외화벌이에도 제동이 걸렸다. ‘이북 호날두’라 불리던 북한 출신 축구선수 한광성은 최근 귀국을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탈리아 프로축구 명문 구단인 유벤투스 FC 소속으로 뛰다가 2020년 1월 카타르 프로축구단 알두하일로 이적했다. 한광성은 연봉이 20억 원이 넘을 당시에도 생활비 200만 원을 제외한 돈을 북한으로 송금한 것으로 알려져 화제가 되기도 했다.
앞서의 북한 소식통은 “연초부터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경제 정책과 관련해 심각하게 무게를 잡았다”면서 “결국 이 말은 ‘돈이 없다’는 뜻인데, ‘제재+코로나19’ 겹악재로 인한 외화벌이 시장 축소가 치명타를 날린 모양이 됐다”고 했다. 소식통은 “이런 외화벌이 감소에 따라 ‘김정은 금고’라 불리는 노동당 39호실이 바빠질 것”이라면서 “최근 중국 현지 소문에 따르면 39호실이 위안화 위조지폐 제작, 마약 밀매, 담배 밀매 등 불법 활동에 손을 대고 있다는 말도 나온다”고 전했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