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정부 대립각-현 정부와 마찰’ 스토리, 윤석열과 이회창 사이 묘한 교집합 보이네
윤석열 전 검찰총장. 사진=박은숙 기자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사의를 표명하는 입장 발표에서 “검찰에서 내 역할은 여기까지”라면서 “오늘 총장 직을 사직하겠다”고 했다. 윤 전 총장은 “헌법 정신과 법치 시스템이 파괴되고 있다”면서 “우리 사회가 오랫동안 쌓아올린 상식 정의가 무너지는 것을 더 이상 지켜보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현 정부를 향해 직접적인 대립각을 세운 셈이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정권 심장부를 수사하며 좌천되기도 했던 윤 전 총장은 문재인 정부 들어서 승승장구했다. 윤 전 총장은 서울중앙지검장을 거쳐 검찰총장 자리에 올랐다. 그러나 2019년 조국 전 법무부장관 일가 수사를 기점으로 정부와 갈등이 빚어지기 시작했다. 2020년엔 추미애 전 법무부장관과 갈등을 빚으며 존재감을 과시했다. 정치권 진출 의사를 밝히지도 않은 상황에서 차기 대권 주자 선호도 조사 ‘3강’ 중 한 명으로 거듭났다.
야권 원로 인사 일각에선 윤 전 총장 행보가 마치 이회창 전 국무총리를 떠오르게 한다는 이야기가 돈다. 이 전 총리는 대법관 시절 전두환 정부, 노태우 정부와 대립각을 세우며 ‘대쪽’이란 별명을 얻었다. 그리고 김영삼 전 대통령의 ‘문민정부’가 들어선 뒤 국무총리로 입각했다. 이 전 총리는 ‘대통령 방탄’ 이미지를 가진 국무총리 이미지를 탈피하려 했다. 김 전 대통령과 마찰이 잦아졌다.
그러다 국가안전보장회의에서 총리가 제외되자 회의 구성원이 총리 직할이라는 법적 근거를 들어 정부에 반기를 들었다. 회의 자체가 무효라는 게 이 전 총리 주장이었다. 이 전 총리는 “법적 권한도 행사하지 못하는 허수아비 총리는 안 한다”며 사퇴했다.
이회창 전 국무총리. 사진=박정훈 기자
이 전 총리는 사퇴한 뒤 신한국당에 입당해 일약 대권 주자로 떠올랐다. 이 전 총리는 세 차례 대권에 도전했지만, 김대중 전 대통령, 노무현 전 대통령,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번번히 패했다. 그의 대권 도전 스토리는 해피엔딩이 아니었지만,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정치권을 대표하는 인물 중 하나가 됐다.
한 야권 인사는 “윤 전 총장과 이 전 총리 사이 공통분모가 확연히 눈에 띈다”면서 “전 정부에서 소신 있는 사법 처리를 하다 고초를 겪고, 현 정부 핵심으로 등극했다 권력 심장부와 마찰을 빚어 사퇴한 스토리는 비슷한 흐름을 띄고 있다”고 했다.
이 전 총리가 정치를 하던 시절 측근으로 활동했던 한 인사는 “이회창 전 총리나 고건 전 총리, 반기문 전 UN 사무총장 등 ‘호감 이미지’를 안고 정치를 시작한 인사들 가운데 대권을 거머쥔 사람은 없다”면서 “윤 전 총장의 정치권 입문이 기정 사실로 굳어지는 상황에서 분명한 과제가 주어진 셈”이라고 했다.
이 인사는 “윤 전 총장은 이미 ‘버티기 능력’은 입증한 상태”라면서 “지금부터 행보 하나하나가 윤 전 총장을 둘러싼 ‘대망론’을 현실로 만들지 지나가는 에피소드 중 하나로 만들지를 결정할 것”이라고 했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