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수장 홍명보 K리그 복귀로 화룡점정…김민우 윤빛가람 등 당시 낙마 선수도 관심
홍명보 감독과 18명의 선수가 만들어낸 올림픽 동메달은 대한민국 축구 역사상 최초이자 현재까지 마지막 기록이다. 당시 선수들 중 다수가 해외 생활 이후 K리그로 돌아와 맹활약을 펼치고 있다. 홍명보 감독도 행정가에서 감독으로 복귀했다. 사진=연합뉴스
우리나라 축구 국가대표팀은 역대 24회 올림픽 중 본선 무대에 9회 참가했고 도쿄올림픽에서 10회 참가를 앞두고 있다. 그 중 최근 8회는 연속으로 본선 진출했다. 이번 대표팀의 목표 역시 메달 획득이다.
대한민국 축구의 올림픽 도전사 중 가장 강렬한 기억을 남긴 대회는 2012 런던올림픽이다. 당시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대표팀은 강력한 전력을 자랑하며 사상 최초로 동메달을 땄다. 당시 선수들은 어느덧 저마다 축구스타로 급부상했다. 이들은 반짝 스타에 그치지 않고 ‘런던세대’로 불리며 대부분 A대표팀에도 이름을 올렸고 성공적인 선수 생활을 보냈다. 특히 이번 시즌 K리그에서는 런던세대 선수들이 각 팀 핵심선수로 활약하며 관심을 받고 있다. 10여 년이 흐른 현재 런던세대 선수들의 현재를 살펴봤다.
기성용은 올림픽 이후 A대표팀에서도 주장과 핵심 자리를 10여 년간 지켰다. 사진=대한축구협회
#동메달리스트들의 성장
축구선수로서 연령별 대표팀에서 성공했다 해서 성인 선수로도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U-20세 대표, U-23세 대표로 활약했지만 성인 무대에서는 자리를 잡지 못한 선수가 부지기수다. 올림픽, 아시안게임에서 활약으로 많은 기대를 받았지만 이후 프로 아래 단계 하부리그에서 활약하거나 축구화를 벗으며 ‘잊힌 천재’로 불리는 선수도 많았다.
하지만 2012 런던올림픽에 참가했던 선수들은 그 이후로도 승승장구했다. 이미 A대표급 선수들이었던 와일드카드 3인방 박주영, 김창수, 정성룡을 제외하고 팀의 대다수였던 1989~1991년생들은 현재 한국 축구를 대표하는 선수로 성장했다.
올림픽 동메달을 목에 건 이들에게 일어난 변화는 적지 않았다. 체육요원으로 병역혜택을 받으며 해외 진출이 자유로워졌다. 이미 해외에서 활약하고 있던 선수들은 커리어를 이어나갈 수 있게 됐으며 국내에서 뛰던 선수들도 해외 무대에 도전할 수 있게 됐다. 당시 18명의 엔트리 중 이미 10명이 유럽, 중동, 중국, 일본 등지에서 활약하던 선수들이었다. 올림픽 이후에는 국내파 8명도 전원 해외 무대를 경험했다.
축구스타로서 인기도 높았다. 대회 종료와 동시에 박주영, 구자철, 기성용 등 A대표 경험이 있고 유럽에서 활약하던 기존 스타들 외에도 박종우, 오재석, 윤석영 등 K리그에서 활약하던 선수들도 국내에서 ‘아이돌급 인기’를 누렸다. 이들의 도전 과정을 담은 TV 다큐멘터리 ‘공간과 압박’은 이들의 인기에 더 힘을 붙이는 기폭제가 되기도 했다. 이외에도 동메달 획득 이후 다양한 매체에 얼굴을 비쳤고 이들이 나서는 경기장마다 ‘오빠부대’가 줄을 이었다. 같은 해 겨울, 런던세대가 주축으로 나선 홍명보자선축구경기는 이들의 인기를 가늠할 수 있는 절정의 무대였다. 잠실실내체육관은 소녀팬들의 함성으로 콘서트 장을 방불케 했다.
올림픽 이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까지 진출했던 김보경은 해외 생활을 청산하고 K리그로 돌아와 MVP를 수상하며 기량을 과시했다.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30대 베테랑 된 런던세대
1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지금 동메달을 목에 걸었던 선수들은 전부 30대로 접어들었다. 한때 모두 해외에서 활약을 했지만 2021시즌 현재 대부분 선수를 K리그에서 볼 수 있다. 지난 시즌을 마지막으로 은퇴를 선언한 당시 와일드카드 김창수를 제외하면 대부분 각 팀의 핵심전력으로 활약해 반가움을 더한다. 올림픽 최종명단 18명 중 10명이 현재 K리그에 소속돼 있다.
이번 시즌 K리그의 이슈 중 하나는 런던세대의 수장 홍명보 감독의 현장 복귀다. 은퇴 직후 지도자의 길을 걸은 홍 감독은 각급 대표팀 코치와 감독을 거쳐 올림픽 대표팀을 이끌며 커리어 하이라이트를 만들었다. 선수 시절 대한민국 최고 스타로 이름을 날린 인물이 감독으로서도 성과를 내자 폭발적 반응이 이어졌다. 하지만 이후 내리막을 걸었고 대한축구협회 행정직을 맡으며 그라운드와 거리를 두기도 했지만 이번 시즌을 앞두고 울산 현대 감독으로 전격 복귀했다.
홍명보 감독은 K리그1 3라운드가 진행된 현재까지 화려한 시즌을 치르고 있다. 시즌 첫 참가 대회였던 FIFA 클럽 월드컵에서 2연패를 기록하며 우려를 낳았지만 뒤이어 개막한 K리그에서 3연승을 내달렸다. 결과뿐 아니라 9득점 1실점이라는 과정까지 챙기며 찬사를 받고 있다. 울산 지휘봉을 잡으며 런던 올림픽 당시 ‘3분 출전 병역 혜택’으로 화제를 낳았던 수비수 김기희와 인연이 재조명되기도 했다. 김기희는 올림픽 이후 카타르, 중국, 미국 무대에서 활약하다 지난해 울산에 입단했다.
런던올림픽을 계기로 국내 최고 스타 반열에 오른 기성용은 지난 시즌 중반부터 친정팀 FC 서울로 돌아와 활약하고 있다. 복귀 첫 해였던 지난 시즌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이적과 코로나19 등 문제로 오랫동안 실전을 소화하지 못해 컨디션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번 시즌 주장 선임과 동시에 컨디션을 끌어올린 기성용은 개막전부터 선발로 출격했다. 최근 구설에 올라 난조를 보였지만 최근 3라운드 경기에서 여전한 감각을 자랑했다. 동메달 획득에 결정적 역할을 했던 공격수 박주영도 기성용과 함께 서울에서 호흡을 맞추고 있다.
올림픽 이듬해 일본으로 떠나 지난해까지 활약한 오재석은 10시즌 만에 K리그 인천 유나이티드로 돌아왔다. 인천은 영입과 동시에 오재석에게 부주장 직책을 맡기며 믿음을 표했다. 매년 하위권을 전전하던 인천은 오재석의 가세로 홈 개막전에서 승리하며 올 시즌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기성용과 오재석에 앞서 K리그에 발을 들인 김보경은 K리그를 대표하는 미드필더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 2019시즌에는 울산 소속으로 K리그 MVP를 수상했고 2020시즌에는 전북 유니폼을 입고 리그 우승을 이끌었다. 이번 시즌 역시 팀의 주축으로 활약하며 ‘은사’ 홍명보 감독의 울산과 우승 경쟁을 예고하고 있다.
K리그2 무대에서도 런던 세대들은 각 팀 핵심 자원으로 활용되는 중이다. 동메달이 확정된 이후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기쁨을 표하다 ‘독도남’이라는 별칭이 생겼던 박종우는 해외 생활을 거쳐 자신이 프로생활을 시작한 부산 아이파크에서 주장을 맡았다. 올림픽 당시 1991년생 막내였던 백성동도 경남 FC에서 부주장으로 활약 중이다. 박종우와 백성동의 소속팀 부산과 경남은 모두 이번 시즌 승격 후보 중 하나로 꼽히는 팀들이기에 더욱 주목을 받고 있다.
윤빛가람은 2012년 런던올림픽 엔트리에서 낙마했지만 현재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울산의 핵심 미드필더로 활약하고 있다.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올림픽은 낙마했지만
올림픽 엔트리는 18명이다. 23명으로 팀을 꾸리는 월드컵에 비해 숫자가 적다. 이 때문에 올림픽 대표팀을 맡은 감독은 엔트리 작성에 고민이 깊다. 2012년 홍명보 감독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엔트리에서 탈락한 선수들에 대한 아쉬움의 목소리도 컸다.
18명의 동메달 리스트들 못지않은 성장세를 보인 선수들도 많다. 올림픽 이전부터 ‘홍명보호 황태자’로 불리던 김민우가 그 중 한 명이다. 김민우는 2012년 1월까지 올림픽 대표팀 소집 명단에 이름을 올리며 홍 감독을 고민에 빠지게 한 선수다.
결국 최종 엔트리 발표에서 고배를 마셨지만 김민우는 이후 열리는 아시안컵, 월드컵 등에 출전하며 성장했다. 현재는 수원 삼성에서 가장 사랑받는 선수 중 한 명이다. 올림픽에 다녀온 또래 선수들이 병역혜택을 받은 반면 상무에서 군복무를 마친 이후에도 수원에 복귀해 활약을 이어가고 있다. 이번 시즌엔 팀의 새로운 주장으로 임명됐다.
현재 K리그에서 가장 뜨거운 플레이어인 윤빛가람도 올림픽 엔트리 탈락의 아쉬움을 경험한 선수다. 윤빛가람은 대회를 준비하던 대표팀에 소집될 때면 영국 국기가 새겨진 가방을 챙겨갈 정도로 올림픽에 대한 열망을 표현했다. 염원하던 올림픽 무대를 밟지는 못했지만 이번 시즌 K리그에서 가장 각광받는 선수 중 한 명이 됐다. 홍명보 감독 부임 이후 팀에서 더욱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는 점이 흥미를 돋운다. 윤빛가람과 함께 엔트리 탈락의 아픔을 겪었던 홍철 또한 홍명보 감독 지도 아래 울산에서 활약하고 있다.
2012년 불의의 부상으로 대회에 나서지 못한 이들도 K리그 대표 스타로 활약 중이다. 홍명보호의 핵심 수비수였던 홍정호는 대회를 앞두고 K리그 경기에 나섰다가 상대의 태클에 큰 부상을 당했다. 이를 대신해 김기희가 대회에 나서는 행운을 잡기도 했다. 시련을 겪은 홍정호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수비수로 성장했다. 이후 2014 브라질 월드컵에 나서기도 했으며 현재 K리그 디펜딩 챔피언 전북 현대의 주장 완장을 찼다.
강원 FC 부주장 한국영도 올림픽 직전 부상으로 눈물을 흘린 선수다. 한국영은 엔트리에 포함돼 런던까지 당도했지만 끝내 부상이 완화되지 않아 돌아와야만 했다. 10여 년이 흐른 현재 국내 무대 최고 미드필더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 지난겨울 이적 시장에서는 국내외 약 15개의 러브콜을 뿌리치고 강원과 재계약을 맺었다. 한국영의 재계약 소식을 구단 유튜브 채널에서 함께 알린 팀 동료 윤석영도 런던세대 일원이다. 올림픽에서 활약을 인정받고 잉글랜드 등 해외에서 활약하다 국내로 돌아왔다.
‘런던세대’는 ‘2002 한일월드컵 세대’ 이후 한국 축구를 10여 년간 이끌어왔다. 올림픽 무대에 나선 20대 초반 청년들은 어느덧 각자 팀을 이끄는 베테랑으로 성장했다. 그 누구도 하지 못한 경험을 했던 이들이기에 각 팀에서 맡은 역할이 막중하다. 이들의 활약에 리그 흥행도 좌우될 수 있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