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람페’ 판매량 급등, 우라칸 등 6개월 넘게 대기…소비양극화 심화와 사실상 탈세 부작용
슈퍼카 브랜드 페라리가 자사의 최초 양산형 하이브리드 모델 ‘SF90 스트라달레’를 2019년 국내에 첫 공개했다. 사진은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없음. 사진=연합뉴스
#슈퍼카 판매량 고공행진…“돈 주고도 못 사”
슈퍼카는 일반적으로 최고속력 시속 300km 이상, 제로백(시속 100km에 도달하는 시간) 3초대 이하, 최고출력 400마력 이상에 해당하는 고성능 자동차를 말한다. 포르쉐, 람보르기니, 페라리 등의 고성능 슈퍼카와 롤스로이스, 벤틀리 등의 슈퍼 럭셔리카로 나뉜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지난해 1억 원 이상의 고가 수입차 신규 등록대수는 4만 3158대다. 이중 1억~1억 5000만 원 상당의 수입차는 3만 2341대로 전년 대비 54% 이상 늘었다. 1억 5000만 원 이상의 초고가 수입차 판매량은 1만 817대로 전년 대비 77% 정도 증가했다. 특히 지난해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경기침체가 이어졌음에도 불구하고 판매량이 대부분 늘었다.
쾌속질주는 올해도 이어졌다. 지난 2월 한 달간 ‘포람페’ 판매량은 대체적으로 상승 곡선을 보였다. KAIDA에 따르면 포르쉐는 지난 한 달간 912대가 판매됐다. 이는 전년 동기 대비 103.6% 증가한 수준. 올해 1만 대 이상의 판매량을 기록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포르쉐는 911, 파나메라, 카이엔, 마칸 등이 인기 모델로 떠오르며 한국 시장에서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람보르기니도 지난 2월 31대가 팔렸다. 판매량은 전년 동기 대비 72.2% 늘어났다. 페라리는 판매량을 공식적으로 공개하지 않지만 자동차업계 관계자들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판매량이 증가했다고 전했다.
슈퍼카를 찾는 이들이 늘면서 계약부터 출고까지 대기하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 즉, 돈 주고 못 사는 상황이 온 것. 서울의 한 수입차 매장 직원은 “람보르기니만 봐도 우라칸이나 우루스의 경우 차량 구매 후 6개월 이상 기다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코로나19로 해외 생산라인도 줄어 (슈퍼카 구매가) 전보다 대기가 좀 더 길어진 상황”이라고 말했다. 슈퍼카는 대체로 주문이 들어간 후 만들어지는 ‘주문형 한정생산’ 방식으로 판매되는 것으로 전해졌다.
중고차 시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신차처럼 대기하는 일은 없지만 최근 몇 년 전보다 매매가 활발해진 상황이다. 전인권 서울오토갤러리 수입차 딜러(28)는 “A 슈퍼카의 경우 중고차 매매 홈페이지에 판매글을 올리면 최소 이틀 안으로 구매 연락이 온다”라며 “현금으로 한 번에 구입하기 어려워도 리스(일정 비율의 선납금, 보험금 등 선수금을 지불한 뒤 남은 금액을 나눠 지불하는 방법)를 통해 차를 타려는 사람들이 많다”라고 말했다.
#유지비만 수백만 원…샀다고 ‘끝’ 아니다
1억 원 이상을 웃도는 슈퍼카는 차체 가격뿐 아니라 유지비도 만만찮다. 실제로 람보르기니를 소유한 김 아무개 씨(33)는 “유지비, 자동차세, 디퍼런셜 기어오일·부품 교체 등만 해도 1년에 1000만 원이 넘는다”며 “슈퍼카를 구매한다고 해서 끝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라고 말했다. 업계 관계자는 “람보르기니의 경우 대체로 한 달 기준 유지비는 200만~300만 원 정도”라고 말했다.
보험사 측도 자동차 보험 가입을 선호하지 않는다. 슈퍼카는 차체가 낮아 사고 확률이 높고 수리 비용이 고액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람보르기니의 한 부품이 경차 한 대 값인 경우도 있다. 실제로 얼마 전 한 유튜버는 영상을 통해 람보르기니의 엔진 가격은 2억 원이며 범퍼 6000만 원, 헤드라이트 1300만 원 정도라고 공개한 바 있다.
전문가들은 희소가치가 있어 슈퍼카 시장이 앞으로 더 확대될 것이라고 말한다. 1세대 수입차인 ‘독일 3사’(메르세데스 벤츠-BMW-아우디)가 국내 시장에서 판을 키우며 익숙한 수입차 브랜드로 자리잡자 구매자들의 인식도 변화했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슈퍼카 특성으로 제일 먼저 꼽을 수 있는 것은 희소가치”라며 “이는 슈퍼카 선호 현상을 뒷받침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베블런 효과’도 있다. 베블런 효과란 가격이 오름에도 불구하고 수요가 증가하는 현상을 뜻한다. 업계에선 슈퍼카 판매량 증가가 코로나19 확산으로 움츠렀던 소비 심리가 폭발하는 보복성 소비와 부를 과시하기 위한 플렉스 문화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은하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보복소비는 소비양극화의 방증”이라면서 “소비시장의 전반적 회복이 필요한 상황에서 소비심리가 부유층이나 고가 제품에 국한돼 살아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국세청이 슈퍼카를 타는 젊은 재력가들을 대상으로 세무조사를 벌인다는 보도에 대해 자동차 카페 회원들은 대책을 논의하고 나섰다. 사진=온라인 자동차 카페
#탈세 ‘경고등’…“불법 걸릴까 걱정”
수입차 업계 한 관계자는 슈퍼카 판매량이 늘면서 애로사항이 많아졌다고 털어놨다. 법인카드로 슈퍼카를 구입해 개인 차량으로 이용하는 건 비일비재한데, 문제는 되팔면서 개인 통장으로 슈퍼카 대금을 입금해달라는 요청이 증가했다는 것. 이 관계자는 “최근 중소기업의 한 회장이 법인카드로 구매한 자신의 슈퍼카를 판매하는 과정에서 비서를 통해 회장 명의의 통장으로 판매금을 입금해달라고 전했다”며 “불법을 행하다가 나까지 위험해질까봐 걱정”이라고 토로했다.
업계에 따르면 1억 원 이상의 슈퍼카는 개인보다 법인 판매 비중이 훨씬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KAIDA가 발표한 보고서에서 롤스로이스는 지난해 판매 171대 중 157대가 법인명의였으며 람보르기니는 지난해 판매 303대 중 법인명의가 275대였다. 벤틀리는 지난해 판매한 296대 중 216대가 법인명의로 파악됐다.
전문가들은 법인명의의 차량등록부터 진행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김필수 교수는 “페라리, 람보르기니 등 슈퍼카를 사업용 차로 구매한다는 것 자체가 보편타당성에 맞지 않는다”며 “국내 모든 슈퍼카의 출처를 다 밝힐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슈퍼카 시장이 확대되면 법인차량을 가장한 탈세는 비일비재할 것”이라며 “정부와 국회가 차량 전수조사와 관련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국내에서 회사 돈으로 구입한 차량을 개인용도로 마음껏 사용해도 처벌받는 사례는 거의 없다. 국세청 세무조사로 이슈만 됐다가 사라질 뿐이다. 이는 선진국과 차이를 보인다. 미국과 싱가포르 등에선 회사 돈으로 구입한 법인차량을 사업용 차로 등록할 수 없다. 1억 원 이상의 슈퍼카는 더욱 그렇다. 국내에서 법인차량을 개인용 차량으로 이용하며 세제 혜택을 받는 사례와 비교하면 대책이 시급하다.
정부는 2016년 법인차량을 규제하기 위해 1년에 최대 800만 원만 회사 비용으로 처리하고 구입비와 유지비를 포함한 1000만 원 이상의 비용을 인정받으려면 별도의 운행일지를 작성하도록 세법을 개정했다. 하지만 이 같은 대안도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자동차 업계 한 관계자는 “현재 운행일지에 대한 명확히 검증을 누가 할 것이냐”며 “고가 수입차를 법인용으로 타는 꼼수를 세법이 규제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소영 기자 upjs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