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정대로라면 초과분은 본인이 부담해야 한다. 원칙적으로는 먹어선 안 된다. 열정과 꿈을 가지고 열심히 일하는 젊은 스태프들이 영화를 준비하다보면 동료들과 맥주잔을 기울이게도 된다. 모듬전에 막걸리 한잔하는 것이 나름 낭만이고 활력을 불어넣는다.
원동연 리얼라이즈픽쳐스 대표
같은 꿈을 꾸는 사람들과 일과 후 마시는 맥주, 막걸리 한잔이 얼마나 소중하고 행복한지 말해 무엇하랴. 하지만 초라한 주머니로는 그 비용을 감당하기가 만만치 않다. 열정 넘치는 대화를 하다보면 지하철과 버스는 끊기기 일쑤다. 감히 서울에서 살 수 없는 젊은 스태프들은 경기도까지 택시를 타고 갈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
대화가 한창 무르익었는데 막차 시간에 맞춰서 아쉬운 표정으로 귀가하는 후배들을 볼 때마다 뭔가 아쉬웠다. 마음이 짠했다. 그래서 결단을 내렸다. 일주일에 두 번은 책정된 식대를 초과하는 식사를 해도 괜찮다. 그 차액은 회사가 부담한다.
일주일에 한 번은 일과 후 마시는 맥주 값, 막걸리 값과 귀가비까지 회사가 부담한다고 결정했다. 젊은 스태프들은 환호성을 지르고 박수를 치고 환영해줬다. 그러나 실무를 책임지는 프로듀서가 며칠 뒤 소식을 듣고 나를 찾아왔다. 피디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대표님의 결정을 존중하지만 실무를 책임지는 제 입장에서는 그로 인해 초과되는 비용이 수천만 원에 이르기에 좀 더 면밀히 검토하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피디에게 답했다.
“식대 8000원이 결코 적은 금액이 아니라는 것을 나도 안다. 하지만 혈기왕성하고 열정 가득한 우리 후배들이 사무실에서 코앞에 있는 맛집 냉면, 갈비탕, 파스타를 못 먹는다는 건 나에게 별로 유쾌한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여러 영화를 동시에 진행하는 투자사에게 요구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래서 초과분은 회사가 부담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그래도 실무를 책임지는 당신이 나름 걱정하는 것이 오히려 고맙고 든든하다.”
피디는 그래도 걱정이 많았다. 쉽게 내 이야기에 동의해주지 않았다. 원칙을 지키고 책정된 것 이상 비용을 사용하면 전적으로 개인이 부담해야 한다는 생각을 굽히지 않았다. 나는 피디의 그런 태도를 존중하면서도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우리 동료들이 먹고 싶은 걸 먹여주고, 회식비를 제공하고, 귀가비를 지급하면서 생기는 비용이 5000만 원이라고 하자. 그런데 우리가 영화를 찍으면서 다 촬영해 두었다가 마지막에 편집하면서 삭제되는 시간이 평균 30분이 넘는다. 만약 우리가 좀 더 면밀히 검토하고 세세히 연구해서 안 찍어도 되는 분량을 10분만 찾아낸다면 절약하는 비용이 수억에 달한다. 그러면 제작을 책임지는 우리가 우선순위를 두어야 할 일이 뭘까.”
물론 원칙을 지키고 규정을 지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런데 그런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하고 비용도 많이 드는 일이 있다. 촬영의 합리적인 운영과 삭제될 수밖에 장면을 판단하는 일이다.
코로나19로 대다수 국민이 고통 받고 있다. 정부는 수차례에 걸쳐서 재난지원금을 지급하고 있다. 그때마다 항상 선별 지원이냐 전면 지원이냐를 갖고 갑론을박이 벌어진다. 게다가 당·청과 기재부 담당자들은 국민지원과 재정안정을 이유로 의견 일치를 보기 어렵다. 난 선별 지원이든 전면 지원이든 다 나름의 논리와 명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지원도 지원이지만 불요불급한 예산이나 새어나가는 예산이 없는지 좀 더 면밀히 검토하고 연구하면 엄청난 재원을 마련할 수 있다. 그런 노력은 말하지 않아도 당연히 해야 한다. 관행적으로 사용한 그 용처가 불분명하고 시급한지도 모르는 예산들이 엄청나게 많을 것이다. 연말이면 시행되는 ‘보도블록성 예산’은 국민들 불만을 자아내는 대표적인 예다. 그런 예산을 선별해내는 것이 지원만큼이나 중요하다.
공적인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원칙과 규정을 지키는 것만큼 국민의 피땀 어린 세금이 정당하고 올바르고 합리적으로 사용되고 있는지를 더 면밀히 들여다봐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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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동연 영화제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