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단 산재로 자진 사퇴 압력 거세…전임 회장들 중도 사임 전례 다시 거론
최정우 포스코 회장이 12일 연임에 성공했다. 오는 2024년 3월까지 회장직을 이어간다. 사진은 지난 2월 22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산업재해 청문회’에 참석한 최정우 회장. 사진=국회사진취재단
포스코는 12일 서울 강남구 포스코센터에서 제53기 정기주주총회를 열고 최정우 회장의 연임을 결정했다. 최 회장은 오는 2024년 3월까지 포스코그룹 회장직을 이어간다. 최 회장은 1983년 포스코에 입사해 재무실장, 정도경영실장, 가치경영실장을 거쳐 2017년 대표이사 사장을 지냈고 2018년엔 포스코켐텍 대표이사 사장을 역임했다. 이후 2018년 7월부터 중도 하차한 권오준 전 회장 후임으로 포스코를 이끌어왔다.
이번 주총을 앞두고 정치권과 금속노조, 민변과 참여연대 등 시민사회단체가 최정우 회장의 연임을 반대해왔다. 최 회장이 안전을 최우선으로 한다는 경영방침을 내세운 지 불과 닷새 만인 지난 2월 8일 30대 사내 하청 근로자가 사망하면서 반대 여론이 거세졌다.
정치권에선 더욱 강하게 사퇴를 압박했다.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2월 15일 중대재해 사고 책임에 대해 “포스코 최대 주주인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코드(기관투자자의 의결권 행사 지침)를 제대로 실행해 달라”고 요구했고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같은달 22일 산업재해 청문회를 열고 최정우 회장을 불러 근로자 사망사고 책임을 추궁했다. 이 과정에서 최 회장이 ‘허리가 아프다’며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했다가 이를 철회하는 해프닝이 발생하기도 했다. 지난 3일에는 노웅래·윤미향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강은미 정의당 의원 주최로 ‘최정우 회장 3년, 포스코가 위험하다’란 제목의 토론회를 열고 최 회장을 비판했다.
참여연대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금속노조도 공동으로 최정우 회장을 향한 공세에 나섰다. 이들은 최 회장과 포스코 임원 64명이 2020년 3월 12~27일 포스코 주식 총 1만 9209주를 취득한 것과 관련,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자본시장법)을 위반한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최 회장과 임원들의 주식 취득이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인 2020년 4월 10일 자사주 매입이 공시된 사실로 미뤄볼 때 이들이 주가 상승 호재 정보를 사전에 인지하고 주식을 사들여 자본시장법을 위반했다는 취지다.
그러나 포스코 최대주주 국민연금은 주총을 사흘 앞둔 지난 3월 9일 최 회장 연임에 ‘중립’ 의견을 냈다. 산업재해에 대해 최고경영자의 책임을 강화하는 관련 법 제정 등 경영자의 책임이 강화되고 있다는 점을 고려했다는 게 국민연금의 입장이다. 상장회사협의회 부설 독립기구 지배구조자문위원회는 찬성한다고 밝혔고, 글로벌 의결권 자문사 글래스루이스와 ISS는 최 회장 연임에 찬성을 권고하면서 사실상 연임이 확정됐다.
재계와 정치권 등은 최정우 회장이 연임에 성공했지만 최근 분위기상 정치권과 시민단체, 노조 등의 사퇴 압력은 지속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특히 논란의 핵심인 사업장 내 산업재해를 제대로 개선하지 못하거나 약속한 경영성과를 내지 못하면 임기 내내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관측한다. 실제 이번 주총이 열린 포스코센터 주변에는 시민단체와 노조가 합동 기자회견을 열고 최 회장 사퇴를 요구했다.
반면 포스코가 정치권의 입김에서 여전히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도 거론되고 있다. 포스코는 초대 회장인 고(故) 박태준 회장 이후 황경로, 정명식, 김만제, 이구택, 정준양 등 전직 회장들이 연임에 성공해도 임기를 마치지 못하고 중도 퇴임했다. 특히 민영화 이후에도 정권 교체기와 맞물려 포스코 회장이 함께 교체되는 현상이 이어졌다. 포스코는 회장 선임 과정에서 더 이상 정치권의 외풍에 휘둘리지 않겠다는 의지로 ‘CEO 후보추천위원회’를 구성하고 이번 정부와 큰 연결지점이 없는 최 회장을 선임했지만, 최근 여당을 중심으로 한 사퇴 압력이 거세지면서 최 회장도 전임 회장들 같은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최정우 회장은 이날 주총에서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자 공정거래와 지역사회 상생뿐 아니라 무재해 작업장 구현에도 최선을 다하겠다”며 “이와 더불어 투명하고 건전한 지배구조를 더욱 발전시키고 기업시민 경영 이념을 실천하겠다”고 말했다.
포스코는 주총에서 최정우 회장을 포함한 사내이사 선임 외에 사외이사 및 감사위원회 위원 선임, 이사 보수한도 승인, 정관변경 등 6개 안건을 상정해 모두 원안대로 의결했다. 사내이사에는 최 회장과 김학동 사장(철강부문장), 전중선 부사장(글로벌인프라부문장), 정탁 부사장(마케팅본부장)이 재선임됐고, 정창화 부사장(경영지원본부장)이 신규 선임됐다. 사외이사에는 유영숙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책임연구원과 권태균 법무법인 율촌 비상근고문이 새로 선임됐다.
정관변경을 통해 이사회 산하에 ‘EGS(환경·사회·지배구조)위원회’를 신설했다. 이사회 산하에 새로 신설된 ‘ESG위원회’는 포스코 사내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이사회에서 ESG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ESG 활동의 주요 정책 및 이행 사항 등을 꾸준히 관리하고 모니터링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