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 ‘17번 양보’ 이태양에 명품시계 선물…‘전폭 지원’ 다짐 신세계, 선수단에 쓱 배송 선물
SK 와이번스를 인수한 신세계그룹은 야구단 새 이름을 ‘SSG 랜더스’로 확정해 지난 5일 공식 발표했다. 임시 유니폼 양팔에는 이마트와 신세계그룹 로고가 부착됐다. 사진=연합뉴스
신세계는 이어 “인천은 비행기나 배를 타고 대한민국에 첫발을 내디딜(landing) 때 처음 마주하게 되는 관문 도시다. 또 대한민국에 야구가 처음 상륙한(landing) 상징적 도시이기도 하다. ‘랜더스’라는 이름에는 앞으로 신세계가 선보이는 새로운 야구 문화를 인천에 상륙(landing)시키겠다는 의지도 담겨 있다”고 설명했다. 야구단 인수를 진두지휘했던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은 팀명 발표 일주일 전인 지난 2월 27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그동안 웨일스, 마린스, 부스터스, 팬서스 등 동물 관련 이름도 검토했지만, 결국 인천과 공항을 상징하는 이름을 쓰기로 했다”고 귀띔했다.
#SK가 신세계에 야구단을 판다고?
신세계 야구단이 SSG 랜더스라는 이름을 얻기까지, 숨가쁜 40일이 흘러갔다. 신세계그룹은 지난 1월 26일 처음으로 야구단 인수를 공식화했다.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인천 SK 와이번스 프로야구단을 인수하는 방식으로 KBO리그 신규 회원 가입을 추진한다. SK텔레콤이 소유한 SK 와이번스의 지분 100%를 인수하기로 하고 양해각서(MOU)를 교환했다”고 밝혔다. 매각 대금은 약 1353억 원. 주식 1000억 원과 야구 훈련장을 포함한 토지·건물 평가액 352억 8000만 원이 포함됐다. 연고지 인천과 선수단 및 프런트 구성은 그대로 유지하겠다고 일찌감치 못박았다. “SK 와이번스가 쌓아온 인천 야구의 전통을 이어가기 위해서”다.
신세계그룹의 야구단 인수는 KBO리그 40년 역사에서 기업들끼리 야구단을 양수·양도한 역대 여섯 번째 사례다. 2001년 기아자동차가 해태 타이거즈를 인수한 이후 20년 만의 ‘사건’이기도 하다. 이 소식이 발표된 뒤 야구계는 한동안 술렁거렸다. 신세계가 KBO리그에 뛰어들어서가 아니다. 이전부터 “신세계가 야구단 운영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얘기는 파다했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인 신세계가 프로스포츠팀을 단 하나도 운영하지 않고 있다는 점도 소문에 불을 붙였다.
다만 신세계가 인수하게 될 1순위 후보는 늘 재정난에 시달리는 서울 히어로즈 야구단이 될 것으로 여겨졌다. 신세계가 ‘사들인’ 야구단이 SK라는 게 더 큰 충격과 파장을 낳았다. 삼미 슈퍼스타즈, 청보 핀토스, 태평양 돌핀스, 쌍방울 레이더스, 해태 타이거즈 등 과거 사라진 야구단은 대부분 모기업 재정난으로 어려움을 겪다 매각되거나 해체됐기에 더 그랬다. 재계 3위를 지키고 있는 대기업 SK가 불과 3년 전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한 명문구단을 포기했다는 소식은 다른 구단에도 불안감을 안기기에 충분했다.
수도권 한 구단 고위 관계자는 “야구단이 산업으로서, 마케팅 수단으로서 가치를 잃어가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현상이 아닌가 싶다. 다른 기업 오너들이 어떤 시선으로 봤을지 걱정”이라고 토로했다. 한 야구 해설위원도 “SK 구단이 신세계그룹으로 넘어간 건 20년 만에 처음 나온 일이지만, 앞으로는 더 빨리, 더 자주 이런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그동안 기업들이 사업을 정리할 때 야구단을 후순위로 놓았다면, 이번 일을 기점으로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고 점쳤다.
야구계의 우려와 별개로 신세계 야구단의 KBO리그 진입은 일사천리로 이뤄졌다. KBO 이사회는 지난 2일 SK와 신세계의 구단 회원자격 양수도 신청을 심의한 뒤 구단주 총회에 올렸다. 이어 “신세계의 시범경기 및 정규시즌 정상 참여를 위해 긴급한 결정이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라 사흘 뒤인 5일 서면으로 구단주 총회를 열었다. 총회는 양사의 회원자격 양수도를 만장일치 승인해 신세계를 KBO리그의 새 동반자로 맞아들였다.
신세계의 KBO리그 가입금은 60억 원으로 의결됐다. KBO 관계자는 “가입금 역시 KBO 규약 제9조에 따라 이사회에서 심의한 뒤 총회에 상정됐다. 과거 사례는 물론이고 구단 가치 변화, 리그 확장 및 관중 수 변화 등을 꼼꼼하게 살핀 후 종합적으로 판단해 결정된 금액”이라고 설명했다.
창단이 아니라 양수 형식을 통해 가입하는 구단이 가입금을 낸 사례는 2001년 KIA 타이거즈(30억 원)가 역대 유일한 사례였다. 신세계가 20년 만에 2배의 금액을 내고 두 번째 사례를 남긴 셈. 구단을 양도하고 KBO를 떠나는 SK도 “한국 야구의 발전에 힘을 보태고 싶다”는 의미에서 야구발전기금 25억 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구단을 양도하면서 야구 지원금을 낸 기업은 SK가 유일하다.
#전폭 지원으로 선수단 마음 얻은 신세계
걱정은 오래가지 않았다. SK 대신 KBO리그에 합류한 신세계가 초반부터 적극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아서다. 실제로 신세계는 “기존의 우리 고객과 야구팬들의 교차점과 공유 경험이 커서 상호간 시너지가 클 것 같다. 또 프로야구가 800만 관중 시대를 맞이하면서 확대되는 팬과 신세계그룹의 고객을 접목하면 다양한 ‘고객 경험의 확장’도 가능할 것으로 판단했다”며 큰 기대감을 표현했다. 처음엔 SK의 야구단 매각 소식에 서운해 하던 프런트와 선수단도 새 모기업의 열정과 정성에 미소를 되찾기 시작했다.
SK가 창단할 때 프로에 입단해 ‘원클럽맨’으로 몸담았던 베테랑 외야수 김강민은 “SK라는 이름에 남다른 애착이 있는 만큼 충격이 컸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코로나19 여파로 기업들 재정난이 심각한 상황에서 신세계가 프로야구단을 인수했다는 건 대단한 일 같다. 그만큼 야구단 운영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게 아니겠나”라고 말했다.
SSG 랜더스의 초대 주장이 된 이재원도 “처음 매각이 발표된 뒤 심적으로 힘들고 혼란스럽긴 했지만, 이제는 선수들도 새로운 명문구단으로 도약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SK에서 지켜오던 좋은 분위기를 새로운 팀에서도 이어가고 싶다”고 했다.
이뿐 아니다. 그동안 비인기 구단으로 분류됐던 팀이 스프링캠프 첫날부터 비상한 주목을 받는 효과도 누렸다. 10개 구단이 국내 캠프를 시작하던 2월 1일, 야구계의 관심이 집중된 곳은 단연 제주 서귀포시 강창학 야구장이었다. 아직 팀 이름도 정해지지 않았고, 새 유니폼도 지급되기 전이지만, ‘SK’의 이름으로 치르는 마지막 캠프 현장을 담기 위해 수많은 취재진이 몰렸다.
신세계는 이에 화답하듯 그룹 계열사인 스타벅스코리아의 커피를 SK 선수단에 아낌없이 제공하는 이벤트를 펼쳤다. 캠프 이틀째인 2월 2일부터 스타벅스의 아이스 아메리카노 벤티 사이즈 100잔이 매일 강창학 야구장에 도착했다. 커피 외에 일부 선수의 취향에 맞춘 음료도 함께 준비됐다. 구단 관계자는 “휴식일에도 빼놓지 않고 모기업이 보낸 커피가 제공됐다. 한 달 동안 캠프지에서 지출한 커피값만 2000만 원에 육박할 것”이라고 귀띔했다.
캠프가 끝난 뒤에도 ‘특별한 배달’은 이어졌다. 새로 개설된 SSG 랜더스 공식 인스타그램에는 3월 7일 “인천으로 돌아온 랜더스 선수단과 퓨처스(2군) 선수단, 입대 선수들, 프런트 등 새 가족 모두에게 깜짝 선물과 편지가 ‘쓱배송’으로 도착했다”는 글이 올라왔다. ‘쓱배송’은 신세계그룹 통합 온라인몰 SSG닷컴이 내세우는 주력 서비스다. 모기업 계열사인 이마트가 1군 선수들이 제주 스프링캠프를 마치고 인천으로 올라온 시점에 맞춰 ‘새 시즌 출정 이벤트’를 준비한 것이다.
SSG 구단은 이 글과 함께 최주환, 박종훈, 윌머 폰트, 아트 르위키, 김상수 등 주요 선수들이 ‘쓱배송’ 가방에 담겨 배달된 푸짐한 식료품을 보고 기뻐하는 사진을 함께 올렸다. 프리에이전트(FA)로 이적해 새 시즌을 맞는 최주환이 배달로 받은 재료로 직접 요리하는 모습도 담았다. 모기업은 식료품에 동봉한 편지 속에 “야구단을 성실하게 지원하겠다”는 다짐까지 적었다. 갑작스러운 팀 이름 변경으로 혼란스러웠을 선수단의 마음을 사로잡으면서 자사 특화 서비스도 확실히 홍보하는 일거양득 이벤트였다. SSG 구단은 “이벤트 특화 구단과 ‘이벤트에 진심인’ 모기업의 만남이라니, 앞으로 많이 기대해 달라”고 썼다.
SK가 쥐고 있던 해외파 특별지명권으로 SSG는 추신수를 영입했다. 추신수는 입국 이후 자가격리를 마치고 팀에 합류했다. 사진=최준필 기자
#추신수도 인천에 상륙했다
그러나 구단이 준비한 진짜 깜짝 이벤트는 따로 있었다. ‘추추 트레인’의 ‘인천 상륙 작전’이다. 신세계그룹은 SK가 14년 전 뽑아둔 해외파 특별지명권을 사용해 메이저리그(MLB) 16년 경력의 외야수 추신수(39)를 깜짝 영입했다. SK 야구단 인수 직후 구단 프런트의 제안을 받아들여 추신수에게 “함께 뛰고 싶다”는 의사를 전달한 게 시작이었다. 미국에서만 프로 생활을 한 추신수가 쉽게 결정하지 못하고 망설이자 “선수 생활의 마지막을 한국에서 한국 팬들과 함께했으면 좋겠다”고 끈질기게 설득했다는 후문이다.
결국 계약은 무사히 성사됐고, 구단은 2월 23일 추신수와 KBO리그 역대 최고액인 연봉 27억 원에 1년 계약한 사실을 공개했다. 추신수가 SSG 야구단의 ‘영입 1호 선수’라는 상징적 의미를 갖게 된 셈이다.
추신수는 이틀 뒤인 25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한국 땅을 밟았다. 공항 인터뷰에서 “SK는 최고의 구단이었고, 한국시리즈 우승도 여러 번 했던 좋은 팀으로 알고 있다. 이제는 신세계 야구단으로서 그 전통을 이어갔으면 좋겠다”며 “KBO리그도 예전보다 수준이 많이 올라왔다는 걸 잘 안다. 팬들 앞에서 열정을 쏟아붓고 싶다. 올해 신세계 야구단이 좋은 성적을 내도록 힘을 보태겠다”고 다짐했다.
당시 팀명 발표 전이었던 신세계는 추신수를 환영하는 의미로 연고지 ‘인천’의 영문명과 등번호 ‘17’이 새겨진 흰색 유니폼을 미리 준비했다. 이 임시 유니폼을 입고 한국 야구팬에게 인사하는 추신수의 사진은 여러 언론사와 포털사이트를 큼직하게 장식했다. 백마디 말보다 확실한 새 출발 홍보 효과였다.
추신수의 한국행은 물론 SSG 랜더스뿐 아니라 KBO리그에도 호재다. 그는 김광현(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양현종(텍사스 레인저스), 김하성(샌디에이고 파드리스) 등이 MLB로 떠난 뒤 한국에 왔다. 스타 기근에 시달리던 KBO리그가 흥행의 천군만마를 얻었다.
#SSG가 몰고 온 ‘추신수 훈풍’
실제로 추신수가 2주 자가격리를 마치고 처음 SSG에 합류한 3월 11일 부산 사직구장은 취재진과 팬들의 열기로 뜨겁게 달아올랐다. 사인을 받으려는 팬들은 추신수의 도착 장소로 예상되는 선수단 주차장과 경기장 출입구 등에 삼삼오오 모여 ‘MLB 스타’의 등장을 기다렸다. 주인공 추신수가 오후 3시 선수단 출입구 앞에 도착하자 팬들이 외치는 “파이팅” 소리는 더 커졌다. 40개 매체 70여 명의 취재진도 사직구장에 모여 추신수의 일거수일투족에 관심을 쏟았다. 연습경기 도중 교체돼 경기를 일찍 마친 내야수 최주환은 입구 앞까지 직접 나와 추신수를 마중했다. 추신수의 존재감을 여실히 보여준 장면이다.
이미 흥미로운 스토리도 탄생했다. 추신수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사용한 등번호 17번에 애착이 크다. MLB에서도 내내 이 번호를 달고 뛰었다. 다만 새 팀에서도 이 번호를 쓰기 위해선 원래 주인인 투수 이태양의 양보가 필요했다. 지난해 중반 트레이드를 통해 이적했던 이태양은 추신수가 한국에 온다는 소식을 듣고 흔쾌히 17번을 내놓겠다고 나섰다. 이 얘기를 들은 추신수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감사를 표현하기 위해 미리 선물을 준비했다. 수천만 원을 호가하는 명품 브랜드 시계다.
추신수는 “내게는 17번이 의미 있는 번호다. SSG에 오기로 한 뒤 가장 먼저 ‘누가 17번을 쓰고 있느냐’는 질문을 했을 정도다. 이런 건 내가 먼저 얘기하기 어려운 부분인데, 이태양이 선뜻 먼저 번호를 주겠다고 해 고마웠다”고 인사했다. 이어 “미국에서 시계를 준비해왔다. 세상에 당연한 건 없다. 받으면 항상 고맙다고 표현하는 게 맞다. 내가 빨간색을 좋아해서 선택했다”고 설명했다. 작은 선의를 큰 선물로 돌려받게 된 이태양은 “감사하고 좋은데, (너무 좋은 선물이라) 부담도 된다”며 쑥스러워했다.
물론 SSG 구단 내에서 가장 추신수를 반긴 사람은 김원형 감독이다. 추신수가 도착하기 전부터 “마침내 만난다니 설렌다”며 기대했던 김 감독은 “올 시즌 추신수를 2번이나 3번에 배치하려고 한다. 미국에서 출루율이 높았기에 (그 타순에 들어가면) 4~6번에 찬스가 많이 갈 것 같다”고 설명했다. 포지션은 좌익수가 유력하다.
배영은 중앙일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