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 대비 영입 구단 보상금 부담 낮추기…손아섭·민병헌·황재균·김현수도 차등 계약 ‘대세’
20억 원으로 지난해 KBO리그 전체 연봉 1위에 올랐던 양의지는 이번 시즌 연봉이 15억 원으로 하락했다. 다음 FA 자격 획득을 염두에 둔 행보다. 사진=연합뉴스
롯데 자이언츠 손아섭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2018년 롯데와 4년 98억 원에 사인한 손아섭은 계약서에 ‘계단식 연봉 지급’ 조항을 넣었다. 그 결과 지난해 20억 원이었던 연봉이 계약 마지막 해인 올해 5억 원으로 뚝 떨어졌다. 손아섭은 올 시즌이 끝나면 FA 자격을 재취득하는데, 올해 연봉이 낮아지면 그를 영입하려는 타 구단이 보상금 부담을 줄일 수 있어서다.
같은 해 롯데와 4년 80억 원에 계약한 롯데 민병헌도 마찬가지다. 그는 지난해 12억 5000만 원을 받았지만, 올해 손아섭과 같은 5억 원을 받게 된다. 계약 마지막 해에 지난해보다 연봉이 7억 5000만 원 줄어든 것. 그 결과 지난해 외야수 연봉 2위 손아섭과 4위 민병헌은 나란히 해당 포지션 연봉 공동 8위로 내려갔다.
지난해 연봉 총액의 36%를 점유했던 두 외야수가 합계 22억 5000만 원을 덜 받게 되면서 롯데의 팀 연봉에도 큰 변화가 생겼다. 2019년 연봉 총액 1위 팀이었던 롯데는 2년 만인 올해 최하위권인 8위로 내려앉았다. 손아섭과 민병헌 외에도 4년 계약이 끝난 이대호의 연봉이 지난해 25억 원에서 올해 8억 원으로 줄어든 영향도 있다. 얼핏 보면 세대교체에 박차를 가한 결과로 보이지만, 더 큰 원인은 따로 있었던 셈이다.
과거에는 FA 4년 계약을 할 때 계약금을 뺀 금액을 균일하게 나눠 받는 게 일반적이었다. 오히려 1~2년 간격으로 조금씩 연봉을 올리는 ‘계단식 계약’을 하는 선수도 많았다. 그러나 요즘 FA 시장에선 계단을 거꾸로 내려오는 차등 계약이 유행하고 있다. 일부 대어급 선수들의 가치가 높아지면서 선수에게 더 유리한 방향으로 계약이 이뤄지고 있다는 의미다.
FA 계약 선수가 1~3위에 오른 포수 연봉 순위에서 특히 이런 현상이 두드러진다. 2019년 계약한 1위 NC 다이노스 양의지는 지난해보다 올해 연봉이 5억 원 낮다. 2위 신세계 야구단 SSG 랜더스 이재원 역시 순위는 그대로지만, 연봉 자체는 13억 원에서 11억 원으로 줄었다. 올해를 끝으로 세 번째 FA 자격을 얻는 3위 삼성 라이온즈 강민호도 계약 마지막 해인 올해 연봉(5억 원)이 지난해(12억 5000억 원)의 절반도 안 된다.
이들 외에도 kt 위즈 황재균이 ‘12억→8억 원’, LG 김현수가 ‘13억→10억 원’으로 각각 지난해보다 삭감된 연봉을 받는다. 두 선수 모두 올해가 4년 FA 계약의 마지막 시즌이다. 꼭 FA 계약 선수에게만 국한되는 얘기도 아니다. 올해를 끝으로 FA 자격을 얻는 키움 히어로즈 박병호 역시 지난해 20억 원에서 5억 원 줄어든 15억 원에 사인했다.
박병호의 팀 동료인 서건창은 아예 구단에 자진 삭감을 요청해 화제를 모았다. 올해 그는 지난해 3억 5000만 원에서 1억 2500만 원 깎인 2억 2500만 원을 받는다. 구단이 고과에 따라 3000만 원 삭감을 제시했는데, 선수 스스로 “더 깎아달라”고 요청했다. 서건창도 올 시즌 뒤 FA가 된다. 구단 사정상 내부 FA에게 큰돈을 쓰지 못하는 점을 고려해 선수가 스스로 운신의 폭을 넓힌 특수 사례다.
배영은 중앙일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