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한 정했지만 여론조사 문항·토론 횟수 갈등…불발된 후 한 후보 사퇴 땐 효과 반감
3월 8일 서울 영등포구 공군호텔에서 한국여성단체협의회 주최로 열린 3·8 세계 여성의날 행사에 참석해 악수를 나누고 있는 오세훈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왼쪽)와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 사진=국회사진취재단
당초 범여권에선 박영선 민주당 후보와 김진애 열린민주당 후보 사이에 단일화 방식에 대한 이견을 보이며 난항이 예상됐다. 김진애 후보가 의원직 사퇴를 선언하며 완주 가능성까지 거론됐다. 하지만 양측이 협상을 거듭하며 지난 3월 9일 단일화 방안에 합의해냈다. 두 차례 토론회를 진행한 뒤 3월 16~17일 이틀간 서울시민과 양당 권리·의결당원 6만 명을 대상으로 전화조사를 실시, 17일에 최종후보를 선출한다는 것.
민주당 사정을 잘 아는 정치권 관계자는 “박영선 후보와 김진애 후보는 현재 지지율 격차가 커서 어떤 단일화 방식을 채택해도 결과가 어느 정도 예상되는 게 사실이다. 그런데 최근 LH 사태 등으로 선거 양상이 야권에 유리하게 가고 있다. 단일화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적으로 해야 하는 상황에서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서도 단일화에 서두른 것”라고 설명했다.
범야권은 제3지대 경선에서 안철수 후보가, 국민의힘 경선에서 오세훈 후보가 각각 후보로 결정된 뒤 ‘아름다운 단일화’를 공언했다. 양측이 서둘러 만나 단일화에 합의할 것으로 보였다. 당초에는 안철수 오세훈 후보 간 담판에 의한 단일화 가능성도 점쳐졌다. 하지만 실무협상단이 꾸려지며 이 경우의 수는 사라졌다.
국민의힘 한 중진 의원은 “두 후보 모두 사실상 대선을 포기하고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뛰어든 것이다. 이번에 물러나면 정계복귀가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에 양보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당초 공언과 달리 단일화 방식을 두고 두 후보 측에서는 줄다리기가 이어졌다. 국민의힘과 오세훈 후보 측이 일부러 시간을 지연할 수 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오 후보가 나경원 후보를 당내 경선에서 꺾는 ‘이변’을 연출한 뒤 각종 여론조사에서 상승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
실제 여론조사업체 한국리서치가 KBS 의뢰로 3월 8~9일 이틀간 서울시민 8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해 11일 발표한 여론조사에서 ‘야권 단일후보 선호도’를 묻는 질문에 오세훈 후보가 38.4%, 안철수 후보 38.3%를 기록했다. 격차가 0.1%포인트(p)로 사실상 동률이지만, 오세훈 후보가 안철수 후보에 앞선 결과가 나온 것이 눈길을 끈다(이하 한국리서치의 자세한 조사개요와 결과는 여론조사업체 홈페이지 및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고).
단일화 시점을 최대한 늦춰 오 후보가 이 같은 추세 속에 안 후보를 앞지를 시간적 여유를 확보한다는 계산이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오세훈 후보가 당내 경선에서 최종 승리하면서 다른 국민의힘 후보들의 지지층을 흡수해 최근 상승세를 타고 있는 것”이라며 “중도 이미지가 강한 오 후보인 만큼 안철수 후보로 간 국민의힘 지지율도 일정 부분 차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국민의당은 국민의힘이 협상테이블에 나오도록 압박했다. 국민의당 실무협상단을 이끄는 이태규 의원은 3월 9일 오전 국회 소통관에서 예정에 없던 기자회견을 열고 “자신들도 받지 못할 안을 상대방에 요구하는 일이 결코 있어서는 안 된다. 국민적 여망에 부응해 신속히 협상에 나서 주시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결국 이날 오후 양당의 첫 실무협상단 회동이 성사됐고, 이어 3월 11일 2차 실무협의 자리에서 단일화 일정에 합의했다. 3월 17일과 18일 이틀간 여론조사를 통해 후보등록 마감일인 19일에 단일후보를 확정하기로 시한을 정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토론회 횟수와 방식, 여론조사 문구 등 세부사항은 이견이 남아 협상이 마무리되지 않았다. 단일화 과정 내내 쟁점이었던 사안들이다. 여론조사 방식과 문구가 최대 걸림돌로 거론된다. 안 후보 측은 ‘어느 후보가 여권 후보를 상대로 경쟁력이 있느냐’를, 오세훈 후보 측은 ‘어느 후보가 야권 단일후보로 적합하다고 생각하느냐’는 문항을 선호하고 있다.
실제 앞서 한국리서치 여론조사에서도 박영선 후보와 오세훈 후보 간 양자대결은 박 후보가 39.5%, 오 후보 44.3%였다. 이어 박 후보와 안 후보 양자대결은 박 후보와 안 후보가 각각 37.0%, 44.9%를 기록했다. 박영선-오세훈 격차는 4.8%p로 오차범위 내였지만, 박영선-안철수의 격차는 7.9%p 오차범위 밖이었다.
정당 조직이 열세인 안철수 후보는 설문 문항에 당명도 빼자고 주장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양측은 3월 12일 다시 만나 세부사항을 추가로 논의했지만, 결국 합의안을 도출하지 못하고 결정을 연기했다. 특히 이날 4시간 동안 열린 비공개 회의에서 양측이 의견 충돌이 벌어지면서 내부에서 “이건 양보가 아니다” “토론회 몇 차례가 답이냐” 등 거친 언사의 고성이 오가기도 했다. 두 후보 협상단에서 다음 회담 일정 등도 확정 짓지 않으면서 단일화 협상에 먹구름이 끼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고진동 정치평론가는 “보수진영 단일화는 지금까지 행태가 늘 안 좋았다. 마지막에 가서는 진보진영에 반사이익을 가져다 줬다. 보수진영은 단일화에 대한 경험이나 역량이 부족하다. 이번에도 재발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정양석 국민의힘 사무총장과 이태규 국민의당 사무총장 등 양당 실무협상단이 3월 9일 서울 여의도 한 카페에서 오세훈·안철수 서울시장 후보 단일화 실무협상과 관련해 상견례를 하고 있다. 사진=국회사진취재단
그럼에도 정치권에서는 오세훈 안철수 후보의 야권 단일화는 결국 이뤄질 것으로 보고 있다. 야권 단일화가 실패해 3자 대결로 선거가 치러지면 범야권의 필패 가능성이 높기 때문. 앞서 한국리서치 여론조사에서도 3자 대결의 결과는 박영선 후보가 35.0%로 가장 높았다. 안 후보와 오 후보는 각각 25.4%와 24.0%로 지지율을 거의 양분해 가져갔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단일화에 실패하면 국민의힘과 국민의당 양쪽이 공멸한다. 이에 단일화를 할 수밖에 없다”며 “단일화 협상은 언제나 삐걱대며 해왔다. 이렇게 진행돼야 국민적 관심이 모이고 극적 효과가 올라간다”고 말했다.
당초 양 후보 측이 치열한 신경전을 벌이다 급격히 협상 속도를 낸 배경에는 지지율 이탈 우려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단일화 과정이 지지부진해져 지지율이 이탈하면 야권 전체에 손해가 될 수 있다는 판단이다. 단일화가 최종적으로 불발될 수 있다는 정치권의 전망도 한몫을 차지한 것으로 보인다.
앞서 국민의힘 관계자는 “LH 사태로 현재 야당에 유리한 상황이 펼쳐졌지만 결국 특수본 수사 결과가 나와야 한다. 수사는 한 달이 넘게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결국 보궐선거까지 이 이슈가 계속 간다는 보장이 없다”며 “야당은 이 기세를 몰아 빨리 단일화 방안에 합의하고 승기를 잡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야권 단일화를 이루지 못할 것이란 관측도 적지 않다. 고진동 정치평론가는 “안철수 오세훈 후보 단일화가 어려운 것은 누가 나서도 여권 후보에 이길 수 있기 때문이다. 명분보다 이익을 양보해야 하는 문제기 때문에 서로 양보하기 어렵다”며 “단일화를 하려면 지금쯤 합의가 돼야 한다. 결국 단일화 깨질 수 있다. 그럼 중간에 한 후보가 압박을 받고 사퇴를 할 수도 있다. 그럼 단일화 효과는 사라지고 지지율이 떨어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