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집 줄이는 텍사스 캠프 58명 명단에 ‘생존’…송재우 위원 “속구 비율 높여야”
양현종의 메이저리그 도전기가 계속되고 있다. 최근 캠프에서 14명의 선수가 마이너로 이동한 가운데 양현종은 ‘살아 남은’ 58명에 포함됐다. 그의 최종 목표는 개막 26인 로스터 진입이다. 사진=이영미 기자
#양현종의 빅리그 로스터 진입 가능성은?
19일 LA 다저스와 원정 경기에서 시범경기 세 번째 등판을 갖는 양현종은 앞선 두 차례 시범경기에서는 좋은 평가를 받았다. 8일 LA 다저스전 시범경기 첫 등판에서는 1이닝 2안타(1홈런) 1탈삼진 1실점을, 14일 밀워키 브루어스와의 두 번째 경기에서는 2이닝 1안타 3탈삼진 무실점으로 호투한 바 있다.
현지 언론에서는 양현종의 빅리그 로스터 진입 여부를 놓고 상반된 반응을 보인다. 14일 밀워키전에서 양현종의 등판을 지켜본 ‘댈러스 모닝뉴스’의 에반 그랜트 기자와 기자실에서 잠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그랜트 기자에게 양현종의 빅리그 로스터 진입 가능성에 대해 묻자 그는 회의적인 시각을 나타냈다. 그는 양현종이 개막전 로스터 26인 명단에 오르진 못하고 마이너리그에서 시즌을 시작하겠지만 시즌 중 팀 상황에 따라 빅리그 콜업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이후 그랜트 기자는 ‘댈러스 모닝뉴스’에 개막전에 들어갈 26인 예상 명단을 공개했는데 양현종의 이름은 포함시키지 않았다.
에반트 기자가 꼽은 선발 투수진은 카일 깁슨, 마이크 폴티네비치, 아리하라 고헤이, 카일 코디, 웨스 벤자민, 테일러 헌, 한국계 투수 데인 더닝 등 7명이고, 불펜투수는 호세 르클럭, 맷 부시, 조던 라일스, 브렛 마틴, 조시 스보츠, 헌터 우드다.
양현종으로선 선발보다 불펜 한 자리를 놓고 선수들과 경쟁을 벌이는 게 로스터 진입에 조금 더 유리한 편인데 불펜투수로 이름을 올린 선수들 중에서 양현종이 쉽게 자리를 넘볼 만한 투수가 없다는 것도 문제다.
MLB 공식 홈페이지인 MLB닷컴과 디애슬레틱은 텍사스 시즌 개막전 로스터를 예상하면서 양현종을 불펜에 포함시킨 반면 스포츠일러스트레이티드(SI)는 불확실하다고 평가했다.
그렇다면 텍사스 크리스 우드워드 감독은 양현종에 대해 어떤 구상을 갖고 있을까. 지난 밀워키전을 마치고 이어진 화상 인터뷰에서 우드워드 감독은 비교적 자세히 양현종 관련 이야기를 풀어냈다. 당시 그가 말한 내용을 옮기면 다음과 같다.
“양현종이 지금까지 아주 잘 던지고 있다. 앞으로 더욱 경쟁력 있는 모습을 보고 싶다. 양현종은 선발 투수가 오래 던지지 못하는 경기에 두 번째 투수로 등판해 많은 이닝을 맡아주는 역할이 적합한 것 같다. 지난해 그가 (KBO리그에서) 많이 던지긴 했지만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그는 어떤 역할이든 해낼 수 있는 선수다.”
미국인 특유의 ‘립서비스’가 가미됐다 해도 우드워드 감독은 빅리그 경험이 있는 투수에게 선발 자리를 맡기는 대신 양현종은 긴 이닝을 소화할 수 있는 불펜투수로 활용하고 싶다고 분명히 밝혔다. 만약 시즌 구상에 양현종이란 이름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쉽게 꺼낼 수 있는 내용이 아니었다.
양현종은 국내에서 애용하지 않았던 커브를 자주 던지고 있다. 현지에서 양현종을 돕고 있는 손혁 전 감독은 “양현종의 커브가 아주 좋다”고 평가한 반면 송재우 해설위원은 “속구 비율을 높여야 커브도 빛을 발한다”고 분석했다. 사진=이영미 기자
#커브 장착한 양현종의 진화
14일 밀워키전 세 번째 투수로 마운드에 오른 양현종은 2이닝 1피안타 3탈삼진 무실점으로 호투를 펼쳤는데 이날 투구 내용 중 눈에 띄었던 건 커브 비중을 늘려 타자들을 효과적으로 상대한 부분이었다. 이날 양현종은 왼손 타자들을 상대로 낙차 큰 커브를 이용해 삼진 3개를 빼앗았다. 경기 후 화상 인터뷰에서 양현종은 “구속에 변화를 줘 (타자들이) 한 구종을 노리지 않게 커브를 자주 던질 것”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커브는 양현종이 KBO리그에서 잘 사용하지 않았던 구종이다. 커브 구사율이 2018년 3.5%, 2019년 1.8%, 2020시즌에는 4.5%에 불과했다(스탯티즈 참조). 생존 경쟁을 이어가는 양현종은 힘 있는 강타자들이 즐비한 메이저리그에서 살아남으려면 구속 변화와 낙차 폭이 큰 커브가 효과적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애리조나에서 양현종의 도우미 역할을 자처하고 있는 손혁 전 감독은 18일 서프라이즈 훈련장에서 기자와 만나 양현종의 커브 장착 관련 설명을 이어갔다.
“현재 양현종의 커브가 아주 좋다. 전력 분석에서 나온 수치를 봐도 좋아 보인다. 지금의 커브는 양현종의 주무기인 슬라이더, 체인지업보다 더 효과적이다. 단, 시합 때 많이 안 던져본 구종이라 자칫 실투라도 하면 크게 맞을 수 있다는 위험 부담도 존재한다. 아마 양현종도 그 부분을 크게 고민하고 있을 것이다.”
송재우 메이저리그 해설위원은 시범경기에서는 커브가 잘 먹힐지 몰라도 정규시즌 들어가면 득보다 실이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현재 양현종은 왼손 타자를 상대할 때 커브 구사율이 높은 편이다. 그러나 시범 경기에서는 상대 타자들이 투수에 대한 전력 분석을 거의 하지 않고 나온다. 특히 양현종처럼 처음 접하는 투수거나 정보가 없는 선수에 대해선 타석에서 감으로 승부하기 때문에 커브에 헛스윙을 하기 마련이다. 지금까지의 양현종은 생존을 위해 변화구 위주의 승부를 펼쳤다. 타자들이 생소한 투수한테 적응하지 못하는 부분을 잘 활용했고,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 중요한 건 시범경기가 아니라 정규시즌에서도 커브 구사율을 높일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결국은 속구 비율을 높여야 커브도 빛을 발한다. 남은 시범경기에서 양현종이 속구를 어느 정도까지 끌어올리는지 지켜봐야 할 것 같다.”
송재우 위원은 양현종의 개막전 26인 로스터 진입 가능성이 높은 편이라고 예상했다. 우드워드 감독의 양현종 관련 인터뷰 내용을 떠올린 송 위원은 “텍사스 선발 투수들의 실력을 가늠해보면 선발이 제 역할을 못하고 빨리 교체됐을 때 남은 이닝을 길게 던져줄 선수가 분명 필요해 보인다”면서 “이전에는 차베스 선수가 그 역할을 담당했는데 지금 팀 내 투수들 중 그 역할을 해줄 마땅한 선수가 안 보인다. 그런 점에서 양현종 만한 대안은 없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송 위원은 양현종이 시즌 초반에는 불펜에서 긴 이닝을 맡는 역할을 하다 성적이 좋으면 시즌 중반에 선발 기회가 주어질 것 같다는 전망도 덧붙였다.
현지 언론에서도 양현종이 KIA 타이거즈 에이스로 활약하며 7년 연속 170이닝을 던진 내구성과 꾸준함을 높게 평가하고 있다. 메이저리그 경험이 없다는 게 가장 큰 단점으로 꼽히지만 텍사스 구단에서 그걸 고려하지 않았다면 굳이 스플릿 계약을 맺고 메이저리그 스프링캠프 초청 선수로 불러들이지 않았을 것이다.
18일, 텍사스 레인저스의 서프라이즈 훈련장에서 양현종은 20개의 불펜피칭을 소화하고 곧장 클럽하우스로 들어가는 대신 필드에 남아 한참 동안 다른 투수들의 라이브 BP(타격훈련 하는 타자 앞에서의 투구)를 지켜봤다. 그한테는 다른 선수들의 훈련을 지켜보는 것도 공부가 되는 터라 불펜피칭을 일찍 마친 날이면 항상 훈련장에 남아 있던 모습이 오버랩됐다. 개막전 26인 로스터가 정해지기 전까지 양현종의 시범경기 등판은 계속 테스트 무대가 될 수밖에 없다.
미국 애리조나=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